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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 정치양식의 소멸과 정치의 새로운 장소

  • 등록일
    2008/09/10 15:59
  • 수정일
    2008/09/10 15:59

김원 외 지음,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 천 권의 책, 2008

 

노동현장이 자본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현장에 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소문의 출처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면서도, 때로는 그럴 줄 알았다고, 또 때로는 아무리 그래도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가 있는데 그럴리는 없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편이었지 싶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참, 허탈한 절망을 안겨 준 책이다. 김원을 비롯한 '문화연구 시월'의 동인들은 명시적으로 '민주노조 정치양식의 시효소멸'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 선언의 타당함을 입증하는 철저하고, 실증적인 연구결과가 바로 이 한 권의 책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은 이런 심상한 말을 화두처럼 던져 놓고 사람들에게 불콰한 현실을 목도하게 하는가? 이를테면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현실에 대한 우리들, 꼴좌파들의 현장에 대한 로맨스 따위가 아니다. 그런 건 공산당 선언이 곧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고, 중요한 건 현장의 질곡을 '먼저' 똑바로 보라는 게다. 아니, 사실 두 눈 꼭 감고 운동의 대의니 뭐니 지껄인다고 사정이 더 나아지겠는가.

 

이 책에서 이들은 현장, 특히 현대자동차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하긴 현자야말로 (지금은 완전 어중이떠중이 된) 현중과 더불어 남한사회 노동운동의 현황을 콕콕 짚어 주는 바로메타가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현장 조사, 탐문, 인터뷰 등, 사회과학의 기본 소스를 직접 발로 뛰고, 문서를 뒤지면서 탐색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선언에 그치는 요란한 논문 무더기가 아니라는 것.

 

책을 덮으면, 현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족주의, 군사주의, 가부장주의. 그리고 공장 밖으로 확산되지 못한 '총회민주주의' 의 전락한 모습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완전 절망 구덩이에 독자를 묻어 버리는 애살찬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주문했듯이 현장의 문제를 푸는 것은 바로 현장의 동력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즉 '공장 밖으로' 확산시키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여기서 비정규직, 여성 노동의 문제가 놓여 있다.

 

섣불리 해결책을 제시하는 하루걸이 정치문건이 아닌 이상 독자는 한 번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과연 현재 노동현장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도대체 지금/여기(hic et nunc) 프롤레타리아트란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프롤레타리아로 호명되는 그곳에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가 설 자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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