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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3

  • 등록일
    2009/04/03 13:26
  • 수정일
    2009/04/03 13:26

서울, 서강대 로욜라 도서관, 오후 1시 13분. 사랑니를 뽑았다. 왼쪽 뺨 절반 가량이 썩,둑., 잘려 나간 것처럼 감각이 없다.  솜을 이빨 사이에 물고 있다. 솜틈으로 간간히 스며 나오는 피맛 섞인 침을 목구멍으로 삼킨다. 요 몇 시간이 지나면, 이 불편함이나 아픈 감각을 보상해 줄 만한 시원함이 생겨날 거다. 오른쪽에 하나 남은 사랑니도 조만간 처분해야 할 것 같다.

 

수술이 끝나고, 서서 수술대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사랑니를 봤다. 그동안 얼마나 앙 다물고 있었으면, 붉은 피가 녀석의 살점 사이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뭐가 그리 미련스러운지. 쓸모 없는 죽은 피 따위에 집착을 보이다니 말이다. 혼자 마음으로 말한다. '너도 이제 살이 썩어 가는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저리로, 저 먼 곳으로 버려질 것이다. 지옥보다 나은 곳으로 말이다. 내가 이제껏 살아 남기 위해, 음식을 먹기 위해, 네게 기생했구나. 잘 가라.'

 

교정의 봄은 여전하다. 이 독재의 시절에도 말이다. 좀 움직여 주었으면 좋겠다. 어제 밤 중앙대 교정을 거쳐 집으로 오는 길, 대자보를 봤다. [반독재 투쟁 위원회]를 결성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명박이의 실정이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기도 했다. 여러 학교들이 서명했더라. 서강은 없었다. 학교 일에 간섭할 시기는 지났지만, 어째, 마음이 좀 씁쓸했다.

 

만나는 후배가 있으면 그렇게 말하고 싶다. '좀 움직이지 그러냐? 취직 걱정 좀 접고 말이야, 날씨도 조~오찮아?' 그러면서 그냥, 한 번 스윽 웃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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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30분. 마취가 풀리면서 고통이 엄청나다. 휴 - , 저번에는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아랫니는 좀 달라요"라고 했던 게 이런 거였나보다.

 

감각이 돌아 오니 고통을 느끼는 거다. 감각이 없다면 고통도 없다. 고마워해야 할 것인가? 감각이 있음을, 다시 말해, 살아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이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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