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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31
    살인자들, 용서는 없다
    redbrigade
  2. 2009/12/26
    '나'를 설명한다는 것
    redbrigade
  3. 2009/12/21
    위대한 침묵, Epiphany의 함성
    redbrigade
  4. 2009/12/17
    200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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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9/12/14
    끝 그리고 Salsa!(2)
    redbrigade
  6. 2009/12/03
    [마르크스주의와 해체], 자크 데리다 외
    redbrigade

살인자들, 용서는 없다

  • 등록일
    2009/12/31 18:57
  • 수정일
    2009/12/31 18:57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용산 참사 타협 소식이 나오는 티비를 망연자실 바라보며 “아, 이렇게 끝나는 구나” 했다. 아니 몇몇이 기뻐했을 것이다. 정운찬 총리, 오세훈 시장, 이명박 대통령, 아마도 김석기 전 경찰청장. 그들은 용산 참사 ‘타협’을 ‘해결’이라고 했다. 많은 노력을 했으며, 서로가 공을 세웠노라고 추어주기 바빴다. 하긴 총리는 그러라고 기용했고, 시장은 대권을 잡고 싶은 것이며, 대통령은 삽질을 계속해야 하니까. 그러나 무엇이 해결되었는가? 보상을 해 줄 것이라고? 살인을 했는데? 유감이라고? 사람을 생짜로 태워 죽여 놓고? 이제 장례를 치러도 좋다고? 죽인 것도 모자라 그나마 산목숨을 드잡이하고, 겁박하고, 기어이 감옥엘 보내 놓고? 한 마디만 하자. 지랄이다. 아주 생지랄이다.

 

그러니 누구도 기뻐할 수 없는 것이다. 신부님이 유족들을 껴안고 그저 서러워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자회견 내내 영정을 바라보고 끌어안고, 또 쓸어 보며, 이젠 말라 비틀어져 나올 것 같지 않던 눈물이 쏟아졌던 것이다.

 

그동안 남일당 건물은 해방구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또 나갔다. 이렇게 용산은 시퍼런 새벽, 한 국가의 수도 한 가운데에서 권력이 저지른 살인행각을 만천하에 증명하는 장소가 되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순이다. 빈소이면서 또 해방구라니. 동시에 이것이 현실이다. 여기 이 땅에서는 죽음으로써만 비로소 해방된다는 그 섬뜩한 현실 말이다. 또한 그것은 상처와 같았다. 자본이 생살을 뜯어 먹고 간 자리. 그리고 그 자리는 고스란히 그곳을 지나가는 시민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외면하든 또는 슬퍼하든, 그 장소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것이다. 죽고 나서야 해방이 허용되는, 그래서 늘 슬픔 속에서 쓰린 가슴을 한 뭉치씩 부여안고서야 비로소 저들 권력의 부라퀴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시민들은 인정해야만 했다. 용산을 잊은 시민들은 그들처럼 자신들이 죽어갈 수 있다는 그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신부님들과 유족들 그리고 용산의 동지들은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용산은 고립되었고, 엄동설한이 온 것이다.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그 대부분의 책임은 방관자들에게 있다. 끝까지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우리들, 운동 주체들, 지식인들이 잘못한 것이다. 그러니 왜 그들이 울어야 하나? 우리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어야 하지 않나? 그들의 울음을 보면서 ‘그나마 이것이 절반의 승리다’라고 입바른 소리나 해야 하는가? 그래서? 수고했다고? 살인자들이 희희낙락하고 있는데? 장례라도 치룰 수 있어 잘 되었다고? 아들이 제 아비를 죽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있는데? 웃기는 소리다. 지금 똑같이 지랄하잔 건가?

 

이제 남일당이 헐리고 그 선명하던 모순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망각이 찾아올 것이고, 희번덕거리는 건물이 들어서고, 돈 없는 민중들은 쫓기듯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 철거가 시작되고, 거래를 하고, 사람이 죽을 것이다.

 

살인자들. 우리는 알고 있다. 용서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너희가 똑같이 죽을 때까지, 우리 자신도 남일당을 방치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 redbrig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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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설명한다는 것

  • 등록일
    2009/12/26 16:49
  • 수정일
    2009/12/26 16:49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내게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개인이력이 타인들에게는 낯설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서양철학, 그 중에서도 프랑스 철학을 전공으로( 이 말은 아마 '벌어먹고'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하고 있지만, 내 학부 전공은 불교학, 그 중에서도 원시불교 쪽이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사람들은 꽤나 신기하게 생각한다.

 

여기다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조기졸업 했다는 사실까지 보태면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엄청 혼란스러워한다. 게다가 대학은 또 1년 늦게 간 거다. 하긴 이게 뭐 상식적으로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경로는 분명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정리되는 내 이력은 그래서 대충,  "검정고시->1년 잠적->대학입학(불교학)->대학원석박사(프랑스철학)", 이렇게 된다. 아 하나 더 빠졌다. 대학 10년 수학. 입학년도와 졸업년도를 계산해 보면 딱 10년동안 대학이라는 곳에 있었던 게 된다. 이런 제길!

 

요즘에는 나이도 들고 이런 걸 꼬치꼬치 캐 묻는 '면접관'을 만날 일도 없고 해서 괜찮지만, 예전에는 이런 이상이력의 구멍들을 설명하기 위해 꽤나 심난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이란 '상식'에 대한 무의식적인 종속심리가 있어서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죄다 '어둠의 세계'에 속한 것으로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검정고시'로 조기졸업했다는 것까지는 그나마 괜찮지만, 대학 입학 전 1년을 뭐했는지(혹시 조폭의 세계? 혹은 어떤 종류의 음침한 오타쿠의 세계?), 또는 어째서 대학을 10년씩이나 다녔는지(학생운동 수배? 아니면 불우한 가정형편?)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갑자기 좌중이 숙연해지곤 했던 거다. 설명 안 하면 나란 물질이 온갖 의혹에 휩싸이게 되고, 설명하자니 도통 재미없고(왜냐면 사람들이 바라던 그런 '활극'은 없으니까)  그런 것이었다. 

 

또 사실대로 설명을 해도 반신반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보다 시립도서관 인문과학실과 문학자료실에서 살았다는 둥,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를 읽고서 고승은 아니라도, 땡중이라도 되려 했다는 둥 ... 이런 식으로 말하면, 사람들은 당췌 '감'이 안 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인생이 그들에게는 없었으니까.

 

결국에는 자기들 편한 대로 나를 야쿠자 세계에 접수시키거나(실제로 난 이런 분을 봤다. 그전에 실컷 위와 같은 설명을 해 드렸는데도 말이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공부하는 학자로 보거나(대체로 이렇게 본다. 하긴 집이 좀 가난하긴 했다. 서울 상경때 딱 5만원이 내 주머니에 있었으니까),  아니면 고맙게도 독학으로 상당한 경지에 이른 철학자로 보거나, 그래 주신다. 이 모든 소위 '파악'들이 공교롭게도 '내'가 아니다. 편하신대로들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나로서는 난감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나'를 설명해야될 상황이 되면 그냥 귀찮다. 그렇다고 맘대로들 상상하시게 놔두자니 짜증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괜히 애먼 사람들한테 화도 내게 되고 말이다. 

 

난 내 이런 상황이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국사회의 사회적 의식의 '보수성'을 가늠할 만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타자에 대한 시선이 관습화되어 있고, 일생의 타임라인이 대체로 유사하고 고만고만한 삶만이 인지되는 사회에 우린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메인스트림이라는 것이 너무나 확고해서 거기 속하지 못한 모든 것들이 주변화되거나 소수화되기 쉽다. 

 

문제는 이런 주변화되거나 소수화되는 이력이나 삶이 매우 자주 사회적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이미 사회적 '인정투쟁'의 장에서 애초부터 애매모호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메인스트림과 그에 가까운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거슬리는 이물감을 안겨다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서와 같이 이럴 경우 사람들은 스스로의 방어기제라는 것을 동원해서 이 이물감을 애써 없애 버리려고 하거나(기억의 왜곡), 제거하려고(차별화와 억압)한다. 왜냐하면 이것을 인정하기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손쉽기 때문이다. 말보다 주먹이 더 가깝기도 하고 말이다. 

 

어찌 보면 나란 물질이 어째서 평소에는 사람좋게 보이다가 문득문득 성격이 더러워지는지 그 원인을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여간 이 자본주의하고도 천박한 한국 사회에 살자니 편협한 시선들이 귀찮다 못해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 멍청한 시선으로 나를 훓어 보는 걸 견디지 못해서 쌍욕이 나오는 게다. 세상의 모든 마이너에게 느끼는 연민도 여기서 나오는 것일 게고 말이다.

 

하여간 메인스트림에서 비껴서 있는 마이너의 스탠스가 더 익숙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짜증이 밀려오지 않고도 슬슬 웃어가며 능구렁이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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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침묵, Epiphany의 함성

  • 등록일
    2009/12/21 02:21
  • 수정일
    2009/12/21 02:21

 

 

위대한 침묵, Epiphany의 함성

- 《위대한 침묵》, 필립 그로닝, 2009

 

오프닝은 눈보라와 불빛이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진다. 외삽 되는 검은 화면에 말씀(logos)들이 새겨진다.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부터 온다.” 장면 전환. 카메라가 수도원 건물들을 잡아낸다. 견고한 저 건물들. 문득 화면이 블로우 업으로 돌아간다. 작게 울리다가 이내 높아지는 수도원의 종소리. 그리고 옷자락 스치는 소리, 수사들의 오래된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그리고 다시 침묵. 말씀들. “가진 것을 모두 버리지 않은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2시간 42분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 긴 러닝타임 동안, 눈이 먼 늙은 수사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약 5분여의 대사와 산책과 눈썰매 타는 동안의 수사들의 몇 마디 말, 그리고 미사를 하는 동안의 기도 소리 외에 어떤 ‘인간의 소리’도 이 영화에는 없다. 잠깐 잠깐씩 화면을 블로우 업 시키는 것 외에 별다른 편집 기술도 동원되지 않는다. 대신 무엇이 있는가? 감독은 분명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들, 무슨 소리를 듣는가?’

 

인간의 목소리 대신 여기에는 무심한 수도원 건물들이 있고, 알프스 협곡을 통해 불어오는 세찬 눈보라가 있으며, 긴 주랑과 그곳을 들락거리는 짐승들이 있다. 무엇보다 여기에는 카메라의 표면성이 잡아 내지 못하는 어떤 것, 이것(aliquid)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영화를 보는 내내 보고, 듣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름 붙이자마자 존재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 신성하고 언설 불가능한 것이 이 영화의 모든 부분, 심지어 가장 하찮아 보이는 오브제들 속에서 들끓고 있다. 그것을 느끼지 못하면 곤란하다. 감독이 원하는 건 그런 것이니까. 이를테면 이 질릴 정도의 롱 테이크 속에서 삶에 속하지만 삶과는 다른 어떤 것, 인간의 신체를 하고 있지만 신의 말씀인 어떤 것이 편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들끓는 것을 보거나, 느끼기 위해서 모든 인간의 음성을 거두어야 한다. 그 음성이 사라진 자리에 관객에게 요구되는 것은 일상적인 지각체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미세지각들이다.

 

저 멈춰진 화면 속의 건물들, 회백색의 계단들, 그리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수사들의 내부로부터 표면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흔들리는 원자들의 클리나멘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 2시간 42분의 명상이 제대로 된 경지에 이를 것이다.

 

영화 후반부. “여기 내가 있다”라고 말씀은 전한다. 그리고 수사들의 모습들이 하나하나씩 비춰진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구체적으로 말을, 아니 더 선명해진 침묵을 건넨다. 말씀이 저들 수사들 하나하나 속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늙은 수사의 벗은 몸을 차분히 쓸어내리는 화면. 그러니까 ‘나’는 늙어 쪼그라든 신체 안에 있다는 것이다. 또 비춘다. 수도원의 오래된 노동자들. 또한 그들에게 말씀은 “내가 있다”고 한다. 침묵은 선명해진다. 점점 더 선명해져서, 빛이 되기도 하고, 쟁여진 장작들 사이 검은 틈으로 스며들기도 하며, 젊은 수사의 미소 안에 머물다 가기도 한다.

 

침묵이 선명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화가 필름의 표면 아래에 숨겨 왔던 어떤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는 뜻이다. 작가의 관점에서 그러한 폭발은 주로 수사들과 노동자들을 거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숨겨져 있던 그것을 수사들과 노동자들, 심지어 감독이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다. 숨겨진 그것이 이들을 매개로 스스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존재는 오직 생성하는 것이므로, 제 차례에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은 운 좋게도 발을 담근 자에게 그 차가운 느낌을 ‘단 한 번’ 전해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미사를 집전하고 성서 주해서를 낭독하는 거룩한 천상의 장면(초반부)에서부터 수사들의 면면과 노동자들의 투박한 모습이 미디엄 숏으로 흘러가는 지상의 장면(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에피파니를 따라 명상해 온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말씀이 ‘여기 있다’고 한 것은 분명 지상에 이르러서이지만 결국 그는 언제나 거기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강이 그런 것처럼, 침묵의 강도 발을 담그든 말든 언제나 흐를 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에피파니의 함성을 들을 수 있는 자는 운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린 양들은 운이 나쁜 나머지, 명상의 경지가 아니라 잠의 밑바닥에서 두 시간 동안 편히 쉴 수도 있을 터. - redbrig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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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7

  • 등록일
    2009/12/17 20:10
  • 수정일
    2009/12/17 20:10

오랜만에 집에서 늦잠을 자고, 오랜만에 하루 종일 집에서 이것 저것 공상도 하고, 정말,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있을 것 같았다. 하긴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늘 따라다니는 그늘이 난 있으니 말이다. 아니 이제는 한 가지가 아닌 것 같다.

 

난 사람들이 "때로는 슬프고, 기쁘고 한 게 인생이다" 는 식으로 말하는 걸 들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때로는'이라는 식으로 기쁘고 슬프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삶에서 언제나 슬프다. 그 슬픔을 벗어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스피노자도 고귀한 삶이 힘들고 드물다고 했던 것이고 말이다.

 

삶은 늘 슬픔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웃는 낯에 숨어 있기 때문에 슬프고, 하나의 기쁨이 잠시 머물고 있는 순간에도 그 기쁨이 물러났을 때의 지독한 낯설음 때문에 또 슬프고, 그 슬픔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슬프다.

 

이 슬픔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죽음을 선택하거나, 세상을 버리고, 절대적인 어떤 것에 의지하면서 수도원이나 산사로 가는 길 밖에 없다. 난 감히 이 꿈을 꾸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잘하게나마 살아 가려고 하는 것이고, 작은 성취나마 고마워하는 것이고, 단 한 뼘의 진보나마 들뜨는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은 많이 슬프다. 좀 더 늘어지게 쉴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어서 심통이 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언제나 '불안'을 짊어지고 사는 이 허튼 육체가 측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그녀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슬프고, 그것을 듣는 나도 슬프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해결하듯이 단칼에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나 스스로에게 살의 같은 것을 느낀다. 그 살의는 이상하게도 건조하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저 세상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왜 이 나이쯤 스스로 죽어간 사람들이 유언장을 쓰지 않고도 족했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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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그리고 Salsa!

  • 등록일
    2009/12/14 12:11
  • 수정일
    2009/12/14 12:11

 

끝 그리고 Salsa!

- 《시간의 춤》, 송일곤, 2009
 
“시간만이 불멸하는 삶은 아름답다”(중국인 이민자 남편의 말) 하나의 거대한 비극. 그게 쿠바 한인들의 강제 이주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위대한 것은 이런 긍정이다. 왜냐하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불멸하는 것은 오직 죽음 뿐”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찬사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멸하는 것이고, 매우 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경이로운 것이라고 확인한다. 이와 같다. 조선인 쿠바 이민자 세대들은 죽음을 반추하면서 삶을 긍정하는 사람들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들은 말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산다!
 
감독이 발견한 것도 그런 것이다. 애국주의적 향수를 카메라에 담는 일 따위는 너무 지겹기 때문에 아예 그러한 감상을 농담처럼 웃어넘기는 이 사람들이 작가에겐 더 친숙한 것일지도 모른다. 쿠바와 한국이 야구경기를 한다면 그들은 쿠바를 응원할 것이라고 정말 진지하게 말한다. 그들에게 조국은 쿠바며, ‘꼬레’는 아득한 세대의 기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기 때문에 혁명도 그들의 삶에 대한 긍정을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절이 아름다웠던 것은 혁명의 시간에 그(녀)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밖의 것은 혁명이 아니다. 하긴 혁명이 대수겠는가? 더 극적인 것은 ‘혁명의 시간’이 아니라 ‘살사(salsa)의 시간’이다. 세상을 바꾸었는데도 불구하고 춤을 추지 못한다면 옳지 않다. 그래서 쿠바 한인들, 아니 한국계 쿠바인들은 즐거운 소수자들이다.
 
우리는 이념의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너무 자주 슬프고, 너무 자주 분노하고, 너무 자주 좌절하기 때문에 냉소에 익숙하다. 냉소에 익숙하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처연한가? 처연함은 슬픔의 독을 삶의 여린 살에 꽂아 넣는 주사바늘과 같다. 과연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또는 민족주의든, 하나의 이념이 앞서 이들을 규정했다면 이 쾌활함이 가능했을 것인가? 물론 혁명은 위대하다. 하지만 춤이 더 즐거운 것도 명백하다. 그러니 사실 더 위대한 것은 죽음과 혁명의 기억을 껴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냉소에 찌들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도, 혁명도, 죽음도 끝나지 않는다. 춤을 춰야 하니까! “Fin y Salsa!"(영화 마지막 자막) - redbrig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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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해체], 자크 데리다 외

  • 등록일
    2009/12/03 00:29
  • 수정일
    2009/12/03 00:29

어떻게 보면 환영할만한 시도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도대체 데리다의 언어가 맑스주의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할 듯 싶다. 마르크스가 '아'라고 하는 곳에서 데리다는 '어'라고 하고 있으니 두 진영 모두에서 답답할 노릇이다.

 

일단 데리다가 맑스 옆에 서자마자 참으로 왜소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맑스와 대면하는 그 순간부터 그는 장인 앞에 선 도제처럼 횡설수설을 멈추지 않는다. 당황스러운 것이다.

 

어쩌면 '해체'는 '해석' 앞에서 저렇듯 영원히 초라할지도 모른다. 다만 해석으로부터 멀찌감치 있으면서 아카데미의 풍족한 만찬을 즐길 때만 의기양양할 것이다. 데리다는 말년의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다. 그도 대가임에는 틀림없고 또 고독할 뿐이지만,  맑스는 이미 역사이며, 하나의 연대기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불가능한 만남?』, 자크 데리다 외 지음, 진태원, 한형석 옮김, 도서출판 길, 2009
 
해제 : 마르크스주의와 해체의 불가능한 만남? 5
 
제1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대한 비판
제1장 유령의 미소 ― 안토니오 네그리 27
제2장 탈물질화된 마르크스 또는 데리다의 정신 ― 피에르 마슈레 51
제3장 데리다를 화해시키기.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해체적인 정치 ― 아이자즈 아마드 71
 
제2부 마르크스와 아들들
서론 ― 티리 브리오 119
마르크스와 아들들 ― 자크 데리다 123
 
찾아보기 249
 
[아이자즈 아마드]
(78)(죽은 아버지의 유령은 명백히 데리다의 책의 제목-“마르크스의 유령들”-만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죽음의 종말성이라는 주제를 가리키고 있으며, 또 마르크스, 죽은 아버지의 진정한 상속인들은 공산주의자들 및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진 이들이 아니라 바로 와 그의 해체라는 그의 주장을 가리키고 있다.)
 
[81]하지만 데리다 텍스트의 딜레마는 그가 애도하는 있는 것이 무엇이며, 왜 지금 그것을 애도하고 있는가에 대해 이 텍스트가 전혀 불분명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왜 소련의 몰락이 그로 하여금 애도하게 만들었는가? 왜 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마르크스주의의 사망 사이의 이러한 동일시, 데리다가 이 텍스트의 다른 부분에서 대립하고 있는 자유시장론자들이 그처럼 애호하는 이러한 동일시가 이루어지는가? 과거 어느 순간에 그가 소련과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를 동일시했기 때문에, 그중 하나의 종말이 다른 것의 사망을 애도하게 만드는 기회가 된 것인가? 적어도 이 한 가지 측면에서 본다면, 이 텍스트의 의미를 구조 짓고 있는 애도의 모티프는 애도의 순간에 대한 어떤 오인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83]나는 이러한 애도의 은유는 매우 명확하고 한정된 적용대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데리다 자신의 철학적인 상상으로, 그는 햄릿을 연기하기를 원하고, 마르크스주의(그의 견해에 따르면 이제 마르크스주의는 유령과 마찬가지로 죽은 것이다)를 상속하기를 원하며, 이음내가 어긋난 시간을 바로 세울 수 있을 만큼 공정한 왕자-덴마크의 왕자, 해체의 왕자-가 되기를 원한다. 요컨대 그는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이 신자유주의적인 우익의 승리가 아니라, 적어도 해체의 철학적, 학문적 승리와 합치하게 되기를 희망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가 애도 중에 있는 이유는 아버지의 죽음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죽음의 성격 때문이며, 왕국이 해체의 왕자가 아니라 우익 찬탈자들에게 상속되었기 때문이다. ... [84]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애도의 실제 대상인 셈이다. 곧 죽음이 아니라 찬탈이 애도되고 있는 것이다.
 
[92]내가 “자기도 모르게 기여했다”고 말한 것은 진심으로 한 말이다. 내가 “자기도 모르게”라고 말한 이유는, 데리다의 작업과 영향력에 대해 유보적인 견해를 갖고 있긴 하지만(사실은 데리다 자신보다는 데리다주의자들에 대해 더 그렇다), 나는 결코 그가 우파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히 그는 우익 인사들의 무리를 찾아다니거나 그들의 ‘교리’의 승리를 능동적으로 추구하지 않았다. 또 그가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의 어떤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에 가담을 선언한 [93]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 텍스트-이 ‘화해’의 방식-에서조차 데리다는 특히 미국에서 해체론자들이 제기했던 정치적 마르크스주의에 댛한 수많은 공격이 어떻게 노골적인 자유주의적 화용론과 철학적 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들의 정치적 수사법에서는, 어떻게 그가 여기에서 개탄하고 있는 우익의 ‘교리’만큼이나 신랄할 수 있었는지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97]일정한 유형의 편협한 종교적 배타주의는 단지 몇몇 이슬람 국가들에 국한된 특징이 아니라 가장 커다란 승리를 거둔 시기의 서방 그 자체, 자본주의적인 유럽 그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다는 데리다의 빛나는 통찰력이야말로 이 대목의 매우 신선한 측면이다.
 
[99]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요점은, 데리다가 “해체는[마르크스주의와의 절연에 대해-아마드] 결코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흥미를 지닌 적도 없다”고 주장할 때, 또는 해체는 항상 마르크스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단지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심화된 것/급진적인 것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할 때, 그는 해체의 역사를 [100]다소 감추거나 재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기(및 다른 곳에)서 데리다가 해체-해체는 본질적으로 지난 25년여 동안 다소 제한된 학문 집단 내에서 텍스트 해석학으로 존재해왔다-와 마르크스주의-이것은 19세기의 기원은 차치한다 해도 20세기의 세계사에서, 옳았든 틀렸든 간에(대부분은 옳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매우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사이에 일종의 동등성 관계를 확립하려고 하는 데 대해서는 논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점을 차치한다면 데리다 자신이 훨씬 더 어처구니없는 반마르크스주의적 급진주의와 전반적으로 거리를 유지해왔다는 점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북미, 특히 예일 대학에 있는 아주 많은 수의 그와 가까운 동료들, 데리다가 국제적인 지위를 얻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고 데리다 자신이 거리를 두려고 하지 않았던 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 중 어던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마르크스주의에 적대적이었지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적대감은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오류 및 잘못은 마르크스주의의 아주 많은 정신들 쪽에서 기인한 반면, 해체의 역사는 아무런 흠결이 없다는 것이 데리다 자신의 설명의 놀라운 특징이다. 정확히 모든 종류의 순수함의 수사법에 대한 해체로 그처럼 유명한 철학자가 최근의 지성사에서 해체의 위치를 설[101]명할 때에는 이렇게 무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적어도 아주 놀랍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103]우리는 이미 모종의 역설을 간파해냈다. 곧 보통 마르크스의 이름과 결부되었던 어떠한 정치 전통, 철학 전통도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정신”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동일시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러한 전통들의 패배가 마르크스의 죽음의 순간과 동일시되고 있으며, 그 다음에는 이 애도의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역설은 이제 훨씬 더 복잡하게 뒤얽힌다. 자기 자신을 이러한 “어떤 마르크스의 정신”과 [104]동일시하기 위해 데리다는 단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모든 정치적 실천 및 철학전통을 벗겨내야 할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약속”의 비규정성 속에서, “메시아적, 종말론적” 양식에 따라 회복하려고 해야 한다.
 
[107]“교리/독단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미 사회 계급, 이데올로기, 상부구조와 같은 마르크스주의 개념 장치의 대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이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해체와 화해시키는 과정 도중에 우리 자신을 극단적인 형태의 반(反)정치 속에 정면으로 위치시키도록 초대받는다. “공[개]적인 것이라고 하기도 어려우며, […] 결집 없이, 당과 조국, […] 공동 시민권 없이, 어떤 계급으로의 공동적 소속 없이 […] 반푸닥거리의 형태를 띤 […] 제도 없는 동맹” 등등. 데리다는 우리에게 “새로운 인터네셔널”의 과제는 “비판들/비평들”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이는 아주 작가적인 “인터네셔널”인 것 같다) “비판/비평”의 대상도 명시하는데(민족, 국가, 국제법), 단 아주 명시적인 부정성(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을 넘어서, 그리고 여기 명백히 함축되어 있는 과도한 주의주의를 넘어서, 몇몇 비평작가들과 다른, 정확히 어떤 사람이 이 인터네셔널에 들어가는지는 불분명하게 남아 있다. 적어도 몇몇 문장들(“공[개]적인 것이라고 하기도 어려우며”, “일종의 반푸닥거리”)은 이것이 프리메이슨과 유사한 조직 같다는 인상을 준다.
 
[109]데리다의 “새로운 인터네셔널”-이는 “익명성”의 다른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그것이 아무런 “공동체”도 구성하지 못하는 유목적인 개인들을 절대화하고 있을뿐더러 하이데거에 대한 반향은 차치한다고 해도 거의 종교적인 어조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도래하고 있는 것의 절대적 미래” 같은 문장들이 재림에 대한 수많은 잠재적 이미지들을 환기한다면, “사막과 같은 경험”이나 “타자와 사건에 대한 기다림” 같은 다른 문장들 및 비규정적이면서도 동시에 이미 “법칙화”되어 있는 어떤 “경험”에 대한 환기에서, 우리는 세 가지 주요한 유일신 종교 모두에 포함되어 있는 신비적 전통에 공통적인 종교적 체념이나 포기의 강력한 언어 표현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고된 “새로운 인터네셔널”이 다소간 프리메이슨 식의 성격을 띤다고 해서 놀랄 것은 아무것도 없다.
 
[112]데리다가 불가능하지만 열정적인 화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어떤 마르크스의 유령’을 남겨두기 위해 다른 모든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배제되어야 하는가? 정확히 말하면 시신이 아니라 유령성을 회수하자고 역사 전체를 쓰레기처럼 내버려야 하는가? ‘새로운 인터네셔널’의 도래를 예고하기 전에 데리다는 자신은 과거의 인터네셔널들의 경우에는 결코 활용한 적이 없었다고 신랄하게 말하고 있다. 데리다의 텍스트에는 어떤 오인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적어도 그가 옹호하는 반(反)정치는 우리를 ‘새로운 인터네셔널’이 아니라 한낱 포틴브라스로, 곧 낡은 질서 그 자체의 한 변형인 ‘새로운’ 질서로 인도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는 아버지의 유령도 햄릿도 예견하거나 견뎌내지 못하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체계적인 복고다.
 
[113]정치적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친숙한 범주들을 포기하는 것을 전제하며, (비록 데리다 자신은 자신에게 ‘메시아적인 것’은 종교적이지 않다고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메시아적이라고 선언할 뿐만 아니라 또한 강력한 종교적 상상계로 가득 차 있는 논거들로 인해 화해 자체가 영향을 받는, 해체와 마르크스주의를 화해시키려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이 텍스트에는 어떤 고결한 태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곧 신자유주의적인 승자들과 동일화하지 않으려는 거부의 몸짓, 자신의 저항적인 자세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거부의 몸짓, 우파의 승리감을 꿋꿋이 견뎌내려는 의지에 대한 긍정, 심지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려운 유럽사의 한 시기에 마르크스주의와 동일시하려는 용기가 그것이다. 이 점에 대해 나는 자연히 데리다와 [114]어떤 친화성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데리다는 그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제안한 자기비판을 해체에 대하여 떠맡는 것을 여전히 너무 꺼리고 있는 것 같다. ... 자신과 마르크스주의-또는 그가 표현하는 대로 한다면 “마르크스주의의 어떤 정신”-의 결합을 긍정하면서도 데리다가 이러한 해체론의 근거들 중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으며, 사실은 아주 확고하게 그것들을 재진술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이제는 해체론이 과거에 보여주던 거의 자기도취적인 긍정의 태도와 갈등을 빚을 만한 종교적 고통의 어조를 도입하고 있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티리 브리오]
[124]『마르크스의 유령들』은-이 점을 다시 환기해두자면-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이미 일종의 ‘응답’, 단지 하나의 응답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초대 및 긴급한 명령에 대한 응답이자, 매우 오래된 요구에 대한 응답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책임(responsabilité)에 함축되어 있는 ‘예’라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원초적일 수 있든 간에, 하나의 응답(réponse)으로 남아 있다. ‘예’라는 것은 항상 유령의 명령에 대한 응답처럼 울려 퍼진다. 명령은 우리가 생생한/살아 있는 현재로도, 죽은 이의 순수하고 단순한 부재로도 식별할 수 없는 어떤 곳으로부터 도래한다.
이는 곧 이러한 응답의 책임은 이미 존재론으로서의 철학 또는 현존으로서의 존재의 현실성에 대한 담론인 존재론-이 점에 관해 우리는 많은 것을 또다시 말해야 할 것이다-의 지반에서 떠나왔다는 말과 [125]같은 뜻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제기된 많은 논쟁은-우리는 이 점에 관해 이미 검증했던 게 되겠지만-겉보기에는 추상저이고 사변적이지만, 수십 년 전에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말하곤 했듯이, “우회할 수 없는” 또는 “사령탑의 자리에 있는” 이러한 형식의 질문 주위에서 이런저런 순간에 서로 교차하기 때문이다. 질문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산에서 존재론으로서의 철학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로부터 우리에게 도래했고 또 여전히 도래할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은 정치철학인가? 더욱이 존재론으로서의 정치철학인가? 그리고 겉보기에는 추상적인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정당한가?
 
[132]이 질문은 정확히 말하면 삼중의 질문이다. 1) “정치적인 것”의 질문(특히 “마르크스”에서 “정치[133]적인 것”의 본질과 전통 및 한정에 관한 질문). 2) 또한 “철학적인 것”의 질문(특히 “마르크스”에서 존재론으로서 철학에 관한 질문). 3) 따라서 사람들이 이러한 이름들/명사들 아래, 특히 “마르크스”라는 이름/명사 아래 공통적으로 식별/동일시할 수 있다고 - 이는 이 이름들 간의 불일치를 드러내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 믿고 있는 그러한 장소들의 질문. 이 세 개의 질문(“정치적인 것”, “철학적인 것”, “마르크스”)은 분리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한 가지 “테제” 또는 한 가지 가설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오늘날 이러한 분리 불가능성을 가정할 것이다. 이러한 테제(또는 가설)의 세 가지 주제는 사실은 하나를 이룰 뿐이다. 이것들은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공통의 장소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우리가 그것을 보지는 못한다 해도 그것들의 장소이며, 그것들의 역사적 접합의 장소다.
 
[마르크스와 아들들-데리다]
[139]내가 최근 10여 년간 출판했던 모든 텍스트들(적어도 『정신에 대해서. 하이데거와 질문』)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역시 질문 형식이 지닌 의존성, 심지어 모종의 부차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처음 보기에는 양립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 두 가지 일을 함께 실행하려고 시도하는 어떤 담론이 지닌 분할 가능성, 주름(pli), 또는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140]렇게 말할텐데-이중성에서 비롯한다. 두 가지 일이란 한편으로 응답 자체에 의해 최면화되거나 억압되는 질문들을 다시 일깨우려고 시도하는 것이며, 또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질문을 감시하고(veille), 질문의 전야(前夜, veille) 자체로서 질문에 선행하는 긍정(필연적으로 혁명적인), 명령, 약속, 요컨대 어떤 (oui)의 유사수행성을 떠맡는 것이다.
 
[141]내가 문제로 [142]삼은 것은 이론적, 실천적 차원에서 역사적인 파국적 실패들을 해명하기 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어떤 유산을 다른 식으로 재정치화하는 것이다. 첫째로 정치적인 것을 존재론적인 것과(무엇보다도 국가/상태État의 관점에서 파악된 현실성이나 현존성, 보편자의 개념, 그리고 당의 관점에서 파악된 세계시민적 시민권 및 인터네셔널의 개념과) 용접했던 것-우리의 근대성에서 이는 바람직한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특히 심각한 폐해를 낳았다-에서 벗어나 있는 어떤 정치적인 것의 차원을 향해 이러한 유산을 돌려놓는 일이 중요하다.
 
[149]도착적 수행문(perverformatif). 내가 방금 지적한 “유사 수행성”은 적어도 두 가지, 한 단어로 두 가지를 의미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이러한 재정치화의 필연성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내가 보기에는 바로 여기서, 일정한 조건들 아래 재정치화를 작동시켜야 할 것 같다.
A. 적어도 지난 25년 동안 씌어진 나의 모든 텍스트에서처럼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도 수행적 차원(단지 좁은 의미의 언어만이 아니라 내가 흔적 및 기록écriture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고려가 나의 모든 논변을 규정하고 과잉규정했던 게 될 것이다.
B. 과잉규정했던이라고 말한 이유는, 존 오스틴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이 동시에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여기서도 역시 나는 나 자신이 “오스틴”에[150]게 그의 유산에게,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 시대의 주요한 사상 중 하나 또는 주요한 이론적 사건 중 하나, 가장 풍요로운 이론적 사건 중 하나에게 충실하면서 불충실했기에, 충실함을 통해 불충실했기를 바란다). 나는 오랫동안 내부로부터 수행문 이론을 전환시키기 위해, 해체하기 위해, 곧 이 이론을 과잉규정하고, 다른 식으로, 다른 “논리로” 작동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163]나는 또 『마르크스의 유령들』 및 나의 작업 일반을 포스트모더니즘 내지 포스트구조주의라는 ‘유’(類)의 단순한 한 가지 종(種)이나 경우 또는 사례로 간주하려는 모종의 성급한 시도 때문에 충격을 받는다. 이 통념들은 바로 가장 미흡한 정보를 지닌 공중(대개의 경우 거대 언론)이, “해체”를 필두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쓸어 담는 잡동사니 부대자루들이다. 나는 내가 포스트구조주의자도 포스트모던스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 나는 결코, 더군다나 내 나름대로 활용하기 위해 “모든 메타서사의 종말의 예고”에 관해 말한 적이 없다.
 
[213]『마르크스의 유령들』의 중심에 존재하는 메시아성 및 유령성보다 유토피아나 유토피아주의에 더 낯선 것은 없으며, “은밀한” 형태를 띤 유토피아나 유토피아주의라 할지라도 그렇다. ...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의도적으로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피하”(shun)려[214]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메시아성(내가 경험의 보편적인 구조로 간주하는, 그리고 어떤 종교적 메시아주의로 환원되지도 않는)은 결코 유토피아적이지 않다. 메시아성은 모든 지금-여기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사건의 도래, 곧 가장 환원 불가능하게 이질적인 타자성을 지시한다. 도래하는 (것의) 사건을 향해 쏠려 있는(tendue) 메시아적인 근심(appréhension)보다 더 “현실주의적”이고 더 “직접적인” 것은 없다. 나는 “근심”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사건을 향해 쏠려 있는 이러한 경험은 동시에 기대 없는 기대이기 때문이다(곧 이러한 경험은 능동적인 대비, 어떤 지평에 의거한 예상이지만, 또한 지평 없는 맡김exposition이기도 하며, 따라서 욕망과 불안, 긍정과 두려움, 약속과 위협이 뒤섞인 환원불가능한 합성체다). ... 내가 여기서 메시아성에 대해 제시한 정식화가 추상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정확히 말하면 이는 사건, 도래하는 [것의] 현실적 타자성과 맺고 있는 관계의 보편적 구조, 모든 존재론에 ‘앞서는’ 또는 그것과 독립적인 사건에 대한 사상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가장 구체적인고 가장 [215]혁명적인 긴급성이다. 결코 유토피아적인 것이 아닌 메시아성은 지금 여기서 사태, 시간, 역사의 통상적인 경로를 중단시킨다. 그것은 타자성 및 정의에 대한 긍정과 분리될 수 없다. 그 다음 어떻게 이러한 무조건적 메시아성이 이러저러한 독특한 실천적 상황에서 자신의 조건들과 협상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분석과 가치평가, 따라서 책임의 장소가 놓여 있다. 분석과 가치평가, 책임은 매순간, 각 사건의 전야에, 각 사건의 진행 도중에 재고찰되어야 한다.
 
[223]문제는 계급적인 소속을 제거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며, 시민권이나 당을 제거하거나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계급이나 당 또는 시민권을 본질적인 토대나 지주로 삼고 있지 않은 어떤 인터네셔널에 대한 호소다. 이는 계급이나 시민권 또는 당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규정된 맥락에 따라 가능한 한 엄밀하게 이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226]내가 보기에 내가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이라고 부르는 보편적이고 유사 초월론적인 구조는 역사(정치적 역사이든 일반적인 역사이든 간에)의 어떤 특수한 순간과도, 어떤 특수한 문화(아브라함적인 문화이든 아니든 간에)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아성은 어떤 메시아주의를 위한 알리바이로도 사용되지 않으며 어떤 메시아주의도 모방하거나 반복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메시아주의도 확증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는다.
 
[227]한편으로, (메시아적이라는) 이 단어는 내가 보기에는 상대적으로 임의적이거나 외재적인 것 같다. 이 단어는 수사법이나 교육학적인 거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내가 메시아성이라고 부르는 것과 닮은 것(하지만 그것으로 환원되거나 동일시되지는 않고서라고 곧바로 덧붙여두겠다)을 친숙한 문화적 환경을 참조함으로써 좀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내가 이러한 표현을 통해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이 언젠가 이해가 될 맥락에서는-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전통적인 메시아주의나 “메시아”에 대한 암시 없이도, 심지어 “없는”이라는 말이 없이도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낡은 단어들 아래서 모든 이름이 변화했던 게 될 것이다.
 
[228]첫째, “마르크스”라는 이름의 사건(및 그것이 지닌 모든 구성소와 전체, 결과)이 유럽적이고 유대, 기독교적인 문화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무시하거나 부인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 전체는 “메시아”가 무언가를 의미하는 문화에서 출현했으며, 이 문하는 “국지적인” 문화 또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손쉽게 구획될 수 있는 그런 문화로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침전 작용을 다시 드러내는 일은 결코 무익하지 않으며, 이것이 그 침전 작용으로부터 모든 종류의 정치적 귀결들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246]마지막으로 단지 스피노자만이 아니라 마르크스 자신, 해방된 존재론자 마르크스도 마라노였다는 생각을 던져보면 어떻게 될까? 유대계 독일인으로 변장했던 스페인, 포르투갈 출신의 일종의 불법이민자로서, 기독교 신자로 개종하고 심지어 약간은 반유대주의자인 것처럼 처신했던 사람이라고. ... 마라노들은 너무나 잘 은폐하고 너무나 잘 변장해서 그들 스스로 자신이 변장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또는 그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억압하고 부인하고 부정해버렸다. 우리는 ‘진짜’ 마라노들, 현실적으로, 현재적으로, 현행적으로, 실제로, 존재론적으로 마라노인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일이 또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또한 얼마 전부터 마라노주의라는 물음은 죽었다고 주장해 [247]왔다.
나는 전혀 그렇다고 믿지 않는다. 여전히 아들들과 딸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 선조들의 복화술사 환영들을 육화하거나 윤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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