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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교감)이 끊어진 상태, 죽음

[전교죠선생님이 안갈쳐준 공부법]  소통(교감)이 끊어진 상태, 죽음

 

 

 

[Hymne.mp3 (3.79 MB) 다운받기]

 

 

 

 

  아저씨는 오늘 죽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무섭죠? 죽는다는게요.  그런걸 왜 생각하냐고요?  핸드폰에 연락처가 2개만 저장되어 있는 어느 분의 집에 찾아가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죽음이란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죽음이다, 정치적 죽음이다.. 죽음을 가져다 쓰는 말은 참 많은데 결국 생명체가 소통하지 못하는 상태, 즉 교감할 수 없는 상태를 우리는 죽은 상태라고 부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목숨이 붙어있고 없고가 아니고요.   나뭇잎도 바람과 햇볕과 교감하고..  꽃들도 바람과 비와 벌들과 교감하듯이요. 

 

 

  아저씨가 요즘들어 부쩍하게 되는 생각은 차라리 농사짓고 대가족에 집단 노동을 하던 예전이 삶의 질은 더 좋았다는 생각입니다.   배고프고 넉넉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공평하였고 (그때도 먼가가 있었겠지만 지금보다는 공평했을거예요) 과년한 처녀총각이 신혼집을 장만하기 위해서는 동네 어르신들께서 며칠 뚝딱뚝뚝 흙집을 지어주면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보아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함께 일하며 일한만큼 나눴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요즘은 삶이 파편화, 부속화되어 송장썩는 냄새로 생물학적 삶을 마감하기도 하고 집장만을 위해 수십년을 힘들게 살아도 내집과는 점점 멀어집니다.  인류문명과 삶의 질은 반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저씨가 이렇게 친구들이게 쑥덕거리는 것은 아직까지 아저씨가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예요.  아저씨가 이렇게 쑥덕거리지 않으면 아저씨는 어디서 깩하고 죽어있을 겁니다.  아마 아저씨 글들은 유령처럼 이 사이버공간을 떠다니다..  결국 진보넷이 망하면 없어져 버리겠지요.  더 정확히 서로 소통하고 서로 교감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망할겁니다.  아저씨가 살아있고 죽어있고의 갈림길은 바로 아저씨와 친구들이 함께 교감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어요.  온갖 호스를 꼽고 식물인간으로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건 살아있는게 아니 듯이요.  살아있다는건 내가 어떻게 쑥덕거리며 부디끼며 살아가느냐인 거예요.  

 

 

  친구들은 핸드폰에 연락처가 몇개가 들어있나요?  아빠엄마, 친구들...  10개요?  아저씨는 일하다 저장한 연락처 말고는 별루 잘 보이질 않네요. ㅠㅠ    아저씨 나이에 핸폰에 저장된 연락처가 2개라면..  이미 죽음을 향해가는, 반은 죽어가는 상태였던 거지요.   죽음의 원인은 전에 아저씨 혼자 생각한대로 내 몸 속 미생물들이 번식을 위해 우리 몸을 죽인 상태로 여겨집니다.  이런 미생물들은 숙주서 많은 번식을 한 다음에 숙주를 탈출해 다른 숙주에 또 많이 번식해야하거든요.   

 

 

  계속 쑥덕거리기 위해서는 숙주인 우리 몸을 유지해야 삶이 이어지는 미생물들이 우세하도록 가꾸는 일입니다.  이들이 지금 글쓰고 있는 아저씨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을거예요.  계속 쑥덕거리며 주변 생명체와 교감하고 소통하랴..  숙주인 아저씨가 죽으면 우리도 죽는다고 아우성 치는 것 같습니다.  아저씨가 생각하는 죽음은 심장이 멈추는 상태가 아닌..  더이상 그 생명체와 내가 교감할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아니,  내가 지금 하는 고민들과 생각들이 내 몸속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미생물들의 농간이라고? 예..  전 그렇게 확신합니다. 물론 전적으로 영향을 주는게 아니고 일정 부분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내 대장속 미생물들이요.  이런 생각에는 당연히 아무런 과학적 근거같은건 없습니다.   연락처 2개의 핸드폰과 먼지 쌓인 책꽂이, 소중히 모아놓은 어릴적 사진 뭉치, 의미없는 낙서 종이들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번식을 위해 숙주를 살려야하는 미생물들을 내 몸속에 선택적으로 잘 기르셨으면(섭취하시면) 좋겠습니다. 

 

 

  가을이 깊었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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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부관참시 VR 상업화는 중단되어야 한다.

 

 

 

 

[청실 홍실.mp3 (4.70 MB) 다운받기]

 

 

 

  사람은 누구나 병들고 늙어 죽게 된다. 가까운 가족들에겐 가혹한 일이지만 시간에 따라 누구나 격을 수 밖에 없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며 그것을 감내하며 우리 모두는 살아가고 있다.  그게 인생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질병이므로 이 논평에선 제외하기로 한다. 

 

  죽은 이를 VR로 재생하여 산 이에게 보여주는 시도들은 당장 중단되어야만 한다.  내가 죽어 누군가 나를 VR 로 재생해 놓는다면 나는 죽어서도 매우 불쾌할 것이다.  분명 내 모습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죽은 이들의 몫은 죽은 이들에게로 온전히 존중되어야 한다.  죽은 이들의 삶은 그 종지부를 찍은 그 순간 자체로써 온전하다.  산 이들이 감히 평가해서는 안되며 평가할 수도 없다.  죽은 이들은 산 이들의 기억속에 그져 잊혀져 갈 뿐이다.  슬픔에 찬 산 이들은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으며.. 결국엔 산 이들 또한 세월이 지나 죽은 이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슴 아픈 기억 속에 살아가야만 해야하는 산 이들의 의무와 소중한 기억들을 현대 기술로 왜곡해서는 안된다. 

 

  죽음 그 이후에 대한 언급은 온전히 종교의 영역이다.  누구나 죽어서만큼은 편히 쉴 권리가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자체로써 산 이들에게 온전히 존중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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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별님.. 따순 국밥에 소주 한 병 먹고싶어요

 

 

 

[Sissel-03-Summer Snow (Featuring Zamfir).mp3 (7.10 MB) 다운받기]

 

 

 

  "여보세요? 지금 워디예요?"

 

  "예..  안녕하세요.  출근해서 일허고 있어유"

 

  "저기.. 오늘 밭에 포크레인 불러서 밭정리하고 봉빼고 있어요. 오늘 눈도 와서 포크레인기사가 안올줄 알았는데...  미리 연락을 드린다는게 미안해요."

 

  " 아..   돼지감자 아직 안캔데가 있는데..  땅속에 있는거니까? 포크레인으로 밟아도 괜찮을거예요"

 

  " 여기 밭에서 나온거 뭐 모아놓을테니까 내일와서 찾아가세요. 작년에 아저씨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서 경황이 없었어요."

 

  "예?"

 

 

 

   꽃별님..  안녕하셨어요?

 

 오늘도  수영체육관가서 100m 열바퀴를 부랴부랴 돌고 출근했는데요.  체육관옆 장례식장에서 영구차가 나오는 것도 모르고 출발을 해서 선두 차량과 장례버스 사이에 끼어버렸지 뭐예요.  얼른 빠져나왔지만 미안한 마음에 그 장례행렬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그러고 퇴근하고는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을 다녀왔어요.  며칠 전에는 서글서글하던 빌린 밭 주인이 돌아가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돌아가신줄도 모르고 돼지감자 농사를 지었고요.

 

  이미 제가 죽음의 모습에 익숙해진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의 끝으로서의  죽음이요.  죽음은 참 재미있는 일이예요.   아무리 심각하고 알쏭달쏭한 얘길 듣는다해도..  그래?  그런데 그 일들이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니? 하면..   증말루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 걸러지는거 같아요.   그래서 수많은 종교에서 죽음에 대해 이렁저렁 얘기를 했었나봐요.

 

  그런데 살아가면서 버거지 치다보면..  이런 생각을 까맣게 까먹게 되는 것 같아요.  굉장히 합리적인 척하는 비합리적인 우리 인간의 인식에서는요.     꽃별님..  우리가 뭘 그리 잘못하고 있을까요?  왜 삶은 점점 심들어지는 걸까요?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죽음 예식서인  티벳사자의 서 를 인용하며 마칠까 해요.   칼융은 이 해설서 서문에  모든 죽음에 대한 예식들이 어쩌면 궁극적으로 극도로 슬픔에 차 있는, 산 사람들의 필요에 의한 예식이라고 얘기하기도 하네요.

 

 

 

 

<사후세계의 두려움으로부터 보호를 청하는 기도문>

 

1. 내 삶의 주사위가 완전히 던져졌을 때

   이 세상의 가족들은 나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나 혼자 사후세계를 방황할 때

   평화의 승리자와 분노의 승리자들이여, 당신들의 자비의 힘으로

   무지의 어둠을 걷어내 주소서.

 

 2. 사랑하는 친구들과 헤어져 홀로 방황할 때

     내 자신의 공허한 생각들이 환영이 되어 나타날 때

     붓다들이여, 당신들의 자비의 힘으로

     사후세계의 두려움과 공포을 물리쳐 주소서.

 

  3. 다섯 가지 지혜의 밝은 빛이 비칠 때

      두려움과 공포에 달아나지 않고 그것들이 나 자신의 표현임을 깨닫게 하소서.

      평화와 분노의 모습을 한 유령들이 내 앞에 나타날 때,

      두려움 없이 이 사후세계를 깨닫게 하소서.

 

   4. 악한 카르마(업)의 힘 때문에 온갖 불행을 경험할 때

      평화와 분노이 승리자들이여, 이 불행을 사라지게 하소서.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근원의 소리가 천 개의 천둥처럼 울릴 때

     그것들이 위대한 가르침의 소리들로 변하게 하소서.

 

  5. 내가 보호받지 못하고 카르마의 힘에 끌려 다닐 때

     평화와 분노의 승리자들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카르마의 성향 때문에 고통을 당할 때

     투명한 빛의 환희에 찬 명상 상태가 나에게 밝아 오게 하소서.

 

   6. 시드파 바르도에서 초자연적인 탄생을 선택받았을때

      나를 유혹하는 마귀들이 나타나 방해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바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악한 카르마에서 생겨나는 환영의 공포를 경험하지 않게 하소서.

 

   7. 사나운 짐승들의 울부짖음 소리가 들리 때

       그 소리가 여섯 글자의 진언(옴 마니 밧메 훔)으로 바뀌게 하소서.

       눈, 비, 푹풍, 암흑에 쫓겨 다닐 때

       빛나는 지혜의 눈으로 보게 하소서.

 

   8. 사후세계에 있는 생명 가진 모든 존재들이

      조화로운 질서 속에서 서로를 질투하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에 태어나게 하소서.

      내가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극도의 고통을 당할 운명이라도

      나로 하여금 배고픔과 목마름과 뜨거움과 차가움의 고통을 격지 않게 하소서.

 

   9. 성교중에 있는 미래의 부모를 보게 될 때

      그들을 신성한 부부, 승리자이며 평화와 분노의 아버지와 어머니 신으로 볼 수 있게 하소서.

      내가 어느 곳에 태어나든지 다른 이들을 위한 삶이 되게 하시고

      상징과 은총을 받은 완전한 몸으로 태어나게 하소서.

 

    10. 보다 좋은 남자의 몸을 얻어

         나를 보거나 내 말을 듣는 모든 이들을 대자유로 인도할 수 있게 하소서.

         악한 카르마가 나를 따르지 못하게 하시며

         나를 따라오는 모든 공덕은 더 많아지게 하소서.

 

     11. 어느 곳에 태어나든지 그 자리에서 평화와 분노의 승리자들을 만날수 있게 하시고

           내가 태어나자마자 걷고 말할 수 있게 하소서.

           또한 잊어 버리지 않는 기억력을 얻어 과거생을 기억하게 하소서.

 

     12. 모든 크고 작은 지식들에 대해

          단지 보거나 듣거나 생각만 해도 다 알 수 있게 하소서.

          어느 곳에 태어나든 그곳이 좋은 곳이게 하시고

          모든 생명 가진 존재들이 행복을 얻게 하소서.

 

     13. 평화와 분노의 승리자들이여, 나로 하여금 당신들의 육체를 닮고

          당신들의 수많은 추종자들과, 당신들의 긴 수명과, 당신들의 무한한 세계를, 끝없이 펼쳐진 나라를 내게도 허락하소서.

          그리고 당신들의 성스런 이름을 닮게 하소서.

          나와 모든 존재들이 그 모든 것들에서 당신들을 닮게 하소서.

 

    14. 완전한 선을 갖춘 수많은 평화와 분노의 신들의 자비에 의해서

          더없이 순수한 존재의 근원에서 나오는 축복의 파장에 의해서

          그리고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구도자들이 보내는 축복의 파장에 의해서

           지금 여기서 기원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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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

 

[신형원 - 불씨.mp3 (5.46 MB) 다운받기]

 

  ...

  경아의 죽음이 내게 껌 하나로 실감되는군. 그녀의 죽음과 내가 살아 있음은 조그만 껌 하나로 연결되는군. 그래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조그만 껌을 씹는 것고 마찬가지지. 우리는 무의식중에 껌을 씹다가 아무렇게나 투ㅡ컴을 뱉어버린다. 더구나 껌 하나를 남겨주고 죽은 그녀의 죽음은 얼마나 그녀다운가.

 

  그녀는 언제나 어디서나 껌을 씹고 있었다.  껌도 한 개씩 씹는 것이아니고 어느 때는 두 개 세 개를 한꺼번에 넣어서 씹고 있었다.

 

  - 최인호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 중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이런 것이리라.   현세와의 무조건적이며 허망한 단절.  영원한  '그'  현재 상태의 연속.  

 

    국민학교 5학년때 하였던 생각,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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