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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9호>노동자계급! 탈핵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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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전으로 인해 신호등이 꺼진 서울 시내, 운전자들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정전 사태를 빌미로 핵발전소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노동자계급! 탈핵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정전, 제한송전 - 이제 도시가 멈추는 일은 SF가 아니다

 
2011년 9월 15일 저녁 한 시간 남짓 벌어진 대규모 광역정전 사태는 우리에게 두 가지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첫째, 에너지 생산(공급)의 사회적 성격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과 생산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인류의 삶은 이전의 삶에 비해 훨씬 더 불안정성이 증폭된 경제적(산업적) 조건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놀라운 역설은 후쿠시마 핵재앙 이후 일본에서 있었던 생생한 사례들이다.
 
일본에서는 반핵운동가들과 좌파 정당들, 그리고 다수 민중들의 요구에 의해 무려 54기에 달하는 핵발전소의 가동을 중지하고 12기의 핵발전소만으로 전력공급을 감당하기 위해 에너지 수요관리를 강화하고 전력공급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전력예비율을 충분히 확보하면서도 35°C를 넘나드는 폭염을 여유 있게 비켜갈 수 있었다.
 
이것은 고효율, 고밀도 녹색성장이라는 원전신화의 허구성을 반증하는 생생한 증거 그 자체이다.
 
쌍둥이 핵을 제거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
 
출생부터 한 몸이었던 자본가계급과 부르주아 국가의 동맹은 에너지 분야에서는 핵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검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핵무기와 핵발전소라는 이중의 핵문제를 분리하거나 은폐하는 전략을 통해 생산과 재생산의 조건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이 다름아닌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허구적 논리이다.
 
후쿠시마의 재앙은 바로 이것을 고발하는 자연의 역습이며, 눈먼 이윤 기계들을 향한 날카로운 질문이다. 핵사고 발생 25년이 지난 체르노빌과 핵재앙 이후 계절이 두 번 바뀐 후쿠시마의 비극은 여전히 암울한 그림자를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사고 현장으로부터 50K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여럿의 아이들이 밤마다 코피를 쏟는가 하면, 후쿠시마 인근 재처리 시설에서 방호복을 관리하고 출입문을 여닫는 피폭 노동자는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또 사고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주민들의 갑상선암 집단 발병 보고 등은 이른바 “꿈의 과학”이라 선전되던 핵산업 기술이 죽음의 과학기술에 지나지 않으며 핵발전과 핵무기는 절망의 생산, 그 자체라는 것을 민중들의 참혹한 고통은 적나라하게 환기시켜 주고있다.
 
관계자외 출입금지 구역의 노동자들, 반핵운동과 만나야 할 때
 
윈드스케일 핵사고를 비롯하여 체르노빌을 거쳐 후쿠시마에 이르기까지 주요 핵사고 경험 속에서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그곳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쓰여진 그곳에서 일하던 우리의 이웃인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소유기업인 도쿄전력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하청구조 속에서 불안정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저임금과 착취의 사슬에 묶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린당하고 있었다.
 
한국의 많은 핵발전소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주요 핵발전 설비에 대한 유지·보수를 위한 이른바 ‘계획예방정비’과정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경우에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로지 이윤 획득만이 목적인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더 많은 생산과 더 높은 효율을 강요하며 원자력 신화와 원전 르네상스를 확산하려 하지만 자본의 욕망이 범람하는 그 수레바퀴 밑에서 생존을 위한 노동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삶은 철저하게 잊혀지거나 지워져가고 있는 현실 앞에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이제는 국가경제의 부흥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생산력의 무한 확대를 향한 질주를 멈추고 핵마피아들의 배를 불리는 노동이 아닌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노동, 노동자들의 존엄과 생명, 그리고 정의와 공존을 실현하는 노동의 미래를 열기 위해 외적으로 드러나는 사고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현재진행형인 위험 그 자체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들이 더 늦기 전에 시작되어야 한다.
 
거꾸로 가는 한국정부의 핵-드라이브 누가 멈추게 할 것인가?
 
독일 연방환경청은 최근 일본에서의 핵사고를 거울로 삼아 2018년까지 원전폐쇄를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에너지 수요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것은 에너지체제 전환을 통한 산업재편을 수반할 것이다. 이탈리아도 탈핵을 선언했고, 일본의 경우 동북지역의 일부 지자체에선 원전교부금을 거부하는 등 탈핵을 위한 노력들이 실행되거나 계획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 중 핵발전 비중을 59%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미 설계수명이 지나버린 고리 1호기의 1차 수명연장에 이어 심지어 월성 1호기 재가동에 들어가고 삼척 울진 등 신규건설 부지를 중심으로 주민설명회를 추진하는등 핵발전소 확대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핵안보 정상회의’를 원전 마케팅을 위한 기회로 삼으려는 한국정부의 핵-드라이브에 맞서 반핵 투쟁, 더 나아가 탈핵의 길을 열기 위해 사회주의자들과 환경운동가, 반핵평화 운동가들, 그리고 노동운동이 커다란 물결을 이룰 수 있을 때, 우리는 “핵없는 세상” 그리고 자본주의 너머 다른 세계를 건설하는 전망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신현원
 

 

핵안보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 의해 제안된 핵없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세계 정상들의 모임이다. 실제로는 테러세력에 핵물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다. 내년 3월 26일 열리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역시 주요 의제로 핵안보와 핵안전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끊임없이 핵안보정상회의의 의미에 대하여 북핵문제와 연결하려고 하고 있으며, 원전을 팔기 위한 세일즈의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심지어 자본 측의 연구기관에서도 이러한 기대는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일본과 프랑스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하고 핵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 손님을 초대하여 장사를 하려한다는 국제적 비난을 살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이명박은 한국원전의 우수성을 알리며 적극적인 원전세일즈에 나섰고, 당시 참가한 47개국 중에 절반 이상이 원전을 건설하려 한다는 장밋빛 분석을 내놓은 바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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