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20호>자본의 강요된 상식을 거부하는 희망버스

자본의 강요된 상식을 거부하는 희망버스

 

 

1963년, 미국이 베트남전쟁의 수렁 속에 깊숙하게 빠져들기 시작한 해였다. 미 정부는 “I want you[나(국가)는 당신을 원한다]”며 베트남전 참전병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참전병들 중에는 흑인들이 다수였다.
전시체제와 다름없던 그 해, 다른 한편에서는 “Get on the bus[버스를 타라]”며 워싱턴 대행진을 준비했다. 8월 23일 1514편의 버스와 21편의 특별열차가 워싱턴을 향했다. 노예해방 100주년과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20만 명이 모였다. 대행진 막바지에 링컨 기념관 앞에서 “I have dream[나에게 꿈이 있습니다]”라고 연설이 시작됐고 참석자들은 환호했다. 20세기의 명연설로 꼽히는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이었다. 소수 권력자에 의해 강요된 ‘상식’인 인종차별이 한 단락 마무리되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다음 해 7월 미 의회는 인종차별철폐법을 가결시켰다.

 

희망버스, 시대의 상식을 공격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
미 대륙의 버스행렬이 지난 반세기, 2011년 6월 11일 남한반도에서 새로운 버스행렬이 시작됐다. 희망버스의 시작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에 대한 민중의 화답이었다. 소셜테이너라 불리는 김여진 씨의 호소는 더 많은 이들을 불러왔다. 이렇게 희망버스는 10월 8일 5차로 이어지고 있다.
‘희망버스’는 그 동안 촛불투쟁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계층이 모인 촛불투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2002년 미 장갑차 살인사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2008년 미국산 소 수입개방에 대한 민중의 저항은 ‘촛불’로 형상화됐다. 촛불이 버스로 바뀐 희망버스를 포함한 네 번의 민중의 직접행동은 보편타당한 상식을 공격한 권력에 대한 집단적 저항이다.
네 번의 민중 직접행동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 2002년 촛불투쟁에서 ‘깃발논쟁’(조직 대오와 직접참여자 간의 논쟁)을 거치며 다양한 형태와 계층의 참여를 폭넓게 인정하며 유기적으로 서로를 조직하며 협력하고 있다. 2002년 촛불투쟁은 여성/청소년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한 분노와 약자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했다(물론 미국의 패권 정치에 대한 혐오와 거부도 포함하고 있었다). 2008년은 자신의 권리(의심오염 식품에 대한 정부의 강요 혹은 무능)에서 출발했다. 점차 양심의 문제에서 구체적 권리와 화두로 확대되고 있다. 희망버스는 정리해고라는 민중과 노동자의 구체적 권리에서 출발하고 있다.

 

모든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자본’을 무너뜨리는‘희망’
한국 사회는 수많은 정리해고 투쟁을 경험해왔다. 정리해고는 익숙한 모습(?)이 됐지만 ‘희망버스’는 정리해고에 다르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리해고 투쟁은 정리해고 대상자들의 극한투쟁과 노동조합 중심으로 연대와 협력으로 투쟁해온 것이 전형적 형태였다. 희망버스는 정리해고투쟁에 연대와 협력은 노동조합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정리해고에 대한 태도다. 정리해고 당사자인 노조와 회사의 줄다리기가 끝나면 모든 투쟁은 끝이 났다. 즉 노사가 합의하면 그 어떤 반발도 허용하지 않았다. 경영상 판단에 의해 불가피한 정리해고는 정부도 개입할 수 없는 절대 ‘상식’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6월 27일 정리해고와 관련해 합의를 마쳤다. 노사합의에 반발하는 ‘일부’의 저항은 이미 사라져야 했다. 그러나 희망버스는 노사합의가 ‘일부’였음을 선언하고 정리해고에 저항하고 있다. 희망버스는 소수의 권력인 자본에 의해 강요된 상식을 거부하고 민중의 노동자의 상식을 보여주고 있다. 정리해고는 경영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이뤄진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자본이 휘두르는 ‘횡포’라는 상식. 민중의 노동자의 상식은 희망버스 속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

 

정문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