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경제]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23호>공황과 무너져 내리는 자유무역의 신화 그리고 FTA

 

교역과 투자를 기본으로 하고 지재권 등을 포함하고 있는 FTA는, ‘내국인 대우’를 기초로 국가간 상품 교역에 있어 관세를 철폐하고 투자에 있어서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제도적인 제한을 없애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궁극적으로는 체결 당사자 국가의 경제통합협정에 가깝다. 
 
FTA라 하더라도 마라케쉬협정, 즉 WTO 규정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므로 서비스부문에 있어 지정한 부문을 제외하고 모두 개방한다는 ‘네거티브리스트’에 기초하고, 한번 개방한 부문을 다시 거둬들일 수 없다는 역진방지 즉 ‘레칫조항’이나, 협상이 종료하고 난 이후에도 다른 국가와의 협상에서 더 진전된 개방을 다 같이 적용한다는 ‘최혜국대우’, 정부에 대한 제소는 정부만 할 수 있다는 기존의 관례를 넘어 정부에 대한 제소를 개인이 할 수 있도록 보장한, 최근 최대의 쟁점이 되고 있는 투자자 정부 제소권 즉 ‘ISD’, 이 모든 것이 최근 한미FTA 비준을 앞두고 쟁점이 되고 있지만 실상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지 한미FTA만이 아니라 모든 FTA에 적용된다. 
 
한국은 2004년 칠레와의 FTA를 체결하기 이전까지는 지구상에 FTA를 체결하지 않은 몇 나라 안에 꼽혔었다. 하지만 WTO DDA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기존의 몰입하듯 집중하던 WTO 다자간 협상에서 양자간 협정을 체결하는 전략으로 바뀌어왔다. 그리하여 칠레, 싱가포르와의 FTA를 시발점으로 ASEAN, 인도, EU 등 많은 국가들과의 동시다발적인 FTA를 추진, 체결하여 왔으며 지금 미국과의 FTA를 체결하고 비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울러 중국, 일본과의 한중일FTA 등 많은 FTA가 현재 추진 중이기도 하다. 
 
WTO 그리고 FTA
 
이차대전 이후 보호무역이 전쟁의 원인이었다는 평가에 따라 자유무역을 관장하는 관세체제로서 관세와무역에관한협정(GATT)이 통화체제인 브레튼우즈협정과 함께 전후질서의 중심축이 되었다. 하지만 60년대 말 70년대 초 세계적인 공황으로 73년 닉슨의 달러의 금 불환선언으로 브레튼우즈협정은 붕괴되었고, 공산품만을 대상으로 하던 GATT체제는 자본의 요구에 따라 농산물과 서비스부문까지를 포함하는 우루과이라운드, WTO체제로 바뀌어왔다. 
 
1999년 말 씨애틀에서의 WTO 각료회의가 무산되면서 UR 당시 합의하였던 2000년의 새로운 라운드 출범이 실패하고, 2001년 WTO DDA(Doha Develope Agenda)가 있었다. 9?11 등과 아울러 반세계화투쟁이 고조되면서 자유무역체제의 적법성이 위기에 봉착함으로서, WTO DDA 선언문에는 ‘각 회원국은 WTO가 추구하는 원칙과 목적을 재확인하고 보호주의 조치를 억제하며 각 국 무역정책의 개혁 및 자유화를 계속 추진’함을 분명히 함으로써, 자유무역체제의 정통성을 확인하기 위한 포괄적 합의로서의 WTO DDA 체제가 이어져 왔다. 
 
일괄타결과 회원국 전원(현재 153개국이며 참여국은 늘고 있다)의 만장일치라는 협상방식과 타결방식 그 자체가 가지는 한계와 미국과 유럽, 선진자본주의국가와 후발국 및 제 3세계 국가들 사이의 이해관계의 폭과 깊이가 너무 커서 WTO DDA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도하 어젠다를 채택하고 난 이후 협상의 타결을 위해 멕시코 칸쿤, 홍콩 등지에서 각료회의를 거듭했지만 실패 또는 무산되었다. 이경해열사가 자결을 했던 칸쿤투쟁은 물론 홍콩에서의 한국 원정단의 투쟁은 잘 알려져 있다. 
 
FTA 당사자 국가들만의 특혜적 교역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WTO의 최혜국대우원칙과 배치될 수 있는 FTA가 씨애틀 각료회의가 무산되면서 위기에 몰리고 있는 WTO의 대체재로서 FTA가 확산, 강화되고 있다. 그리하여 WTO DDA 서문에서도 WTO체제를 ‘세계무역규범 형성 및 자유화를 위한 유일한 포럼’으로 강조하면서도 FTA를 “지역무역협정을 무역의 자유화와 확장과 개발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하여 이번 도하개발의제의 한계를 모순적으로 보완한 바 있다.
 
양자간 협정이 가속화되면서 WTO DDA는 오로지 자유무역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상징으로서의 의미에 제한되고 오히려 FTA와 같은 양자간 협정을 통하여 실질적인 자본운동이 전개되는 형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FTA라는 힘의 우위가 전제된 양자간 협상의 특성을 이용하여, 한편으로는 보편적 수준에서의 개방을 강제하는 WTO의 대체제적 역할과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화, 블록화 추진하면서 제국주의적 지역 분할을 강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FTA, 자유무역의 이름으로 보호무역체제로
 
부동산의 거품이 꺼지면서 시작된 금융공황에 이은 실물공황은 2008년 이후 미국을 진원지로 하여 전 세계에 파급되었고 여전히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공황이 시작되면서 약 2조 5천억 달러를 뿌린 미국은 물론 최근 위기가 고조되면서 1조 유로의 채권 발행을 의결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통화가 남발되면서 위기 및 손실의 사회화가 이루어지고, 한편으로는 지구적 수준의 인플레이션으로 없는 자들의 빈곤은 가중되고 있다. 
미국의 통화남발은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정하는 중국 등과의 환율전쟁을 촉발하였다. 자국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통상에 있어 유리한 지위를 점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통화남발은 공황시기 핵심적 전략의 하나이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통화체제에 대한 대안은 제기되고 있으되 달러중심의 세계통화체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의 패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윤율의 저하와 과잉생산에 따른 공황에 있어 저환율체제로 무역을 촉진하는 한편, 자국시장의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과 자국시장의 확대는 필연적이다. 2008년 세계공황이 시작되고 공황을 극복할 지구적 협력체제로 G20이 제안되고 기능하면서, 전 WTO 사무총장이었던 당시 EU무역대표부 대표 파스칼 라미는 공황시기 보호무역은 필연적으로 전쟁으로 귀결될 것이기에 WTO DDA 타결을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공황의 한가운데서 여전히 WTO DDA 타결 기미는 보이지 않고 FTA는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1,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공황시기에는 식민지 블록으로 공황을 넘으려 했었고 식민지 블록간의 보호무역이 결국은 전쟁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전후 경제블록은 EU와 같은 경제통합, NAFTA와 같은 지역블록으로 실물화되었으며 그 매개는 관세협정 및 FTA였다. 기실 FTA는 체결 당사국 간에만 관세도 없고 투자의 걸림돌도 없는 경제통합협정의 역할을 하는 배타적 경제협정이라는 측면에서, 자유무역의 이름으로 경제블록의 구축과 보호장벽의 울타리를 치는 가장 훌륭하게 작동하는 기제이다. 
 
60년대 말 70년대 초 공황 시기 무역에서는 공산품만이 아니라 농업, 서비스 등 시장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서 자본의 위기를 넘고자 하였다. 하지만 2008년 이후 공황 시기에 있어 FTA를 매개로 하여 본격적인 자본의 블록화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1, 2차 세계대전이 결국은 자본의 공황극복 전쟁이었음을 상기시킨 파스칼 라미의 경고가 새삼스러운 때이다.
 
WTO DDA 타결에 있어 평상시 보호무역주의로 널리 명성을 떨친 미국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미국은 자유무역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FTA 체결에 가장 큰 의욕을 보이고 있는 현실도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같이 태평양에 인접한 국가들과의 FTA 체결에 나서면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APEC 정상회의에서 “모든 종류의 보호무역주의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함께 저항해야 한다.”고 던진 한마디의 시사하는 바가 그것이다. 
 
이즈음 한국의 FTA전략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에게 FTA는 무엇인가? 를 되물음을 해야 할 때이다.
 
이종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