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9호> [생활의 파문] 친절상품을 뛰어넘어 인격으로 마주대하기

[생활의 파문]

친절상품을 뛰어넘어 인격으로 마주대하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형할인마트나 백화점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기에 다리가 퉁퉁 붓고 허리가 아픈 노동자들에게 ‘의자를 놓아주자’는 캠페인이 진행된 적이 있다. 이후 몇 군데에 의자가 생겼으나 대다수 의자는 쓸모가 없었고, 아직도 노동자들은 서서 일한다. 자본가들은 앉아서 손님들을 맞으면 손님들이 불쾌해하니까 노동자들은 자신의 아픔이나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때 우리는 노동자들이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가 손님들의 만족도보다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는 현실에 화가 났다. 그렇지만 우리도 알게 모르게 소위 ‘고객’의 입장에서, 서비스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친절을 요구한다. 물건을 살 때 노동자가 뚱한 표정이거나 빨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 서비스노동자들의 친절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친절하지 않으면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친절을 상품에 보태서 판매한다. ‘고객은 왕’이라면서 손님의 감정과 표정을 읽어 봉사하도록 노동자들을 훈련한다. 손님에게 진짜 친절하고 싶은 노동자도 고된 노동, 매뉴얼대로 하는지 감시하는 자본가들 때문에 진짜로 친절할 수 없다. 손님들은 돈을 지불함으로써 서비스노동자의 감정을 지배할 권리를 얻지만, 그렇게 얻는 것은 진짜 친절이 아니다. 웃는 얼굴은 입과 눈의 근육을 움직여서 만들어낸 표정이며, 부드러운 말은 매뉴얼에 따라 말해지는 소리일 뿐이다. 손님들은 허구적인 우월감을 얻고, 서비스 노동자들은 인격과 감정을 파괴당한다. 이렇게 서로가 비인격적인 대상이 되는 것이다. 친절에 대한 갈망까지도 이윤착취의 도구로 만들만큼 자본주의 경쟁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진정한 친절은 모두를 즐겁게 한다. 서로 인격적으로 배려하고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서비스노동자들과 다른 노동자들이 진정 친절한 관계로 마주하려면 상품화된 관계를 뛰어넘는 노동자의 연대가 필요하다. 서비스 노동자들이 무력해진 감정을 다시 일으켜서 고통의 진짜 원인인 자본가들을 향해 권리를 외치도록 해야 한다. 친절하지 않아도 좋다고, 그렇게 속으로 울면서 즐거운 목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좋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빼앗긴 감정의 권리,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찾기 위해 자본에게 저항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불친절한 것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렇게 투쟁하는 자들이 연대할 때 인간의 감정마저도 상품화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이 지긋지긋한 체제를 무너뜨릴 힘을 얻을 수 있고 진정 서로에게 친절할 수 있다.

                                                                                                                                                                                        김혜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