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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50호> 불 붙는 통상임금 논쟁

불 붙는 통상임금 논쟁 
법에 기대서 기다리고 있다간 큰 코 다치게 될 것, 공세적인 임금체계 대안 마련 논의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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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윤창중 성폭력 사태에 버금가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GM 대니얼 애커슨 회장이 “엔저 문제와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된다면 한국을 버리지 않겠다“며 8천억 달러를 투자를 약속한 것이다. 
박대통령은 “합리적으로 해결하겠다”며 총자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는 노동자계급에게 임금을 둘러싸고 선전포고를 한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통상임금 논쟁 역사 
 
통상임금 논쟁의 역사를 보자. 1992년 노동부는 ‘임금 교섭 지도 지침’을 발표하면서 총액임금제도를 도입했다. 이 총액임금제도는 ‘각종 수당을 만들어 임금을 편법으로 인상하는 것을 막고, 높은 임금을 받는 업종의 임금 인상을 강력하게 억제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된 임금체계 합리화제도다.
이를 둘러싼 격렬한 투쟁이 있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밀리자 자본가들은 사업장 단체협약을 통해 각종 수당의 통상급화를 진행했다. 그동안 기본급, 수당, 상여금으로 비교적 단순했던 우리나라 임금체계가 복잡해  지기 시작한 것이다.
통상임금 범위가 복잡해지고 난 후 법원은 잇따라 그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최근 이를 둘러싼 논쟁이 불붙고 있는 것이다. 2011년 12월 서울고등법원은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된 휴가비·귀성여비·가족수당·조직관리수당·조사연구수당·개인연금보험료·직장단체보험료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어, 2012년 3월 인천지방법원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고 봤다. 특히 2012년 4월 대법원에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해 통상임금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듯 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3년마다 변화되는 현실을 반영해 훈령·예규를 재고시하는 권한을 이용해 지난 2012년 9월 대법원 판결을 적용하지 않은 채, 종전과 변함없이 통상임금 범위를 고시했다. 이런 노동부의 태도는 계속돼왔다. 1994년 대법원에서 식대보조비, 교통비, 체력단련비, 장기근속수당, 가족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판결에 대해 노동부는 20년째 ‘통상임금 산정지침’에 온전히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0년간 계속돼 온 논란을 박근혜대통령이 나서서 전사회적 문제로 재점화시켰다.
최근 들어 통상임금 반환 소송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한국GM을 포함해 62곳에 이르자 자본의 대응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국경총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고정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최소 38조5천억 원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엉터리 주장이다. 경총은 정액급여 외 모든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가정한 후 이를 평균 초과근로시간에 곱해 계산한 금액이다. 
핵심문제는 금액이 아니다. 통상임금 논란에 불을 붙이면서 자본이 취하려는 요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임금체계의 전면 개편이다. 
 
 
통상임금 산정 기준, 왜 문제인가?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통상임금) 1항을 살펴보면,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所定)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을 말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통상임금기준으로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 등 시간외 근로수당(근로기준법 56조), 연차유급휴가수당(근로기준법 60조) 등을 지급하도록 돼있다. 이 기준에 의해 “사용자는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 지급하여야 한다”고 근로기준법 56조는 규정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사용자의 지불 규모가 더 커졌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자본 입장에서는 지금껏 연장, 야간, 휴일근무를 값싸게 시켜왔다. 노동시간을 늘려 잉여이윤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기본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시스템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었다. 그런데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까지 포함된다면 잉여율이 하락할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사업장 단체협약에서는 통상급의 범위를 노사가 정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법원의 판결에 의해 모든 사업장에 영향이 미칠 수 밖에 없고, 퇴직한 경우에도 적어도 3년치 미지급된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자본이 이윤수호전쟁에 적극 나서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통상임금 문제의 본질  
 
자본의 도둑질에 대해서 되찾아 오는 것은 주저함이나 머뭇거림이 있을 수 없다. 당연한 권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잔업과 특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공장을 24시간 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해버리는 것에서, 그저 수당을 신설해 임금을 보전하려고 했던 것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특히 노사가 ‘통상임금의 범위를 법에 따른다’로 합의한 것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투쟁의 결과로 넓히는 것이 아니라 “잔업, 특근 임금지급율을 자본가가 정하라”고 하는 것과 동일하다. 
자본가들은 이 판결이 난 후 현장에서 이윤율을 보장받기 위한 여러 가지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 통상임금이 정기적이고 일률적이며 고정적이라는 것에 착안해 수당을 입사 기준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등 변동급제와 연봉제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자동차업종에서는 어느덧 주간연속2교대가 새로운 작업체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문제는 교대제와 함께 월급제가 정착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입맛에 맞게 임금체계 개편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주간2교대 시범실시 기간과 특근 할증률 협상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직접생산공정과 간접공정의 특근 할증 수당 차등적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후에 지원부서, 사무직, 연구직, 연구소 생산직에 곧바로 차등 적용될 것이다. 
결국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 범위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유명무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통상임금 전쟁은 이윤율을 유지하려는 자본에 맞서 도둑맞은 임금을 되찾는 것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노동자의 정당한 노동력의 대가를 받으며 잔업, 특근없이 살 수 있는 임금체계의 구축을 위해 단호히 투쟁해야 할 때다. 그 시작은 노동조건 하락없는 실노동시간 단축과 월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이다. 
 
  “노조가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계급의 최종적 해방, 즉 임금제도의 궁극적 폐지를 위한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총체적으로 실패한다.”
- 마르크스. 임금·가격·이윤 중에서
 
 
나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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