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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50호> 역사는 투쟁하지 않는 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역사는 투쟁하지 않는 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5.18기념 대학생 광주순례단‘들불’이 보았던 것
 
 
광주민중항쟁 34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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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18이 다가오면 정치계는 광주를 언급하며 너나할 것 없이 ‘민주주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이야기한다. 교과서는 5.18 민중항쟁에서 계엄군의 야만적인 폭력만을 부각시킨다. 정작 시민들이 왜 총을 들었는지, 그 싸움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종편과 일간베스트(일베)는 ‘북한군 600명이 투입되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유포하고, 일부에게서 지지를 얻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총기를 들고 봉기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원인을 ‘북한’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34년째 되는 5월, 대학생 광주순례단 「들불」은 구묘역에 잠든 열사들과 마주했다. 광주 전사들의 뒤를 따라 반전반핵을 외치며 산화한 열사,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죽어간 열사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구묘역은 투쟁의 연장이었다. 
 
 
실천의 중요성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은 부당한 억압에 침묵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다. 분노를 삭이며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무엇이 정당한 요구이고, 무엇이 은폐되어 온 착취와 억압인지 드러내는 것이 광주 열사들이 했던 일이다.
광주가 없었다면 저항하는 자들은 언제까지고 폭도일 뿐이었을 것이다. 광주민중항쟁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마치 박정희를 추억하듯, 전두환을 추억할지도 모른다. 투쟁의 전진이 없다면 우리의 분노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될 것이다. 우리 투쟁은 정권과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급진 세력의 난동’으로 규정될 것이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철폐하라는 절규는 ‘실현 불가능한 요구를 떼쓰는 목소리’로 치부될 것이다.
 
 
두려움과 주저를 넘어 
 
 
비정규직이, 정리해고가, 고액등록금이, 학생자치탄압이 부당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도 이를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우리의 권리는 후퇴할 뿐이다.
또한 투쟁의 전진에는 넘어야 할 벽이 많다. 학생회와 노동조합 지도부들이 내세우는 타협과 투항의 목소리,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내미는 협박을 두려워하지 말자.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싸운 전사들은 국가의 탄압도, 내부에서 투항을 주장하던 수습대책위원회도 넘어서며 끝까지 투쟁했다.
학생회건, 노동조합이건 우리는 내부의 적들과 맞서 싸워야 할 상황들에 직면한다. ‘학교(자본)의 말이 일리 있다, 이 정도면 얻어낼 만큼 얻어냈다’는 말 속에, 학생들의 분노는 학생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광주를 계승하는 길은 모순으로 점철된 현실에서 투쟁을 조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현실 투쟁은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두려움과 주저를 넘어서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역사는 투쟁하지 않는 자들의 분노를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5.18광주를 순례하면서 열사들의 외침을 다시 새겨본다.
 
정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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