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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문 사노위 52호> 진보적 자유주의는 또 다른 부르주아 정치 이념일 뿐

진보적 자유주의는 또 다른 부르주아 정치 이념일 뿐
 

 

야당 진영의 이념논쟁

이른바 ‘진보적 자유주의’가 화제다. 안철수 세력이 스스로의 이념적 좌표를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밝힌 이후, 그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부터, 사실상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이념과 다르지 않으며 이미 많은 정치인들에 의해 제기되어 새롭지 않다는 비판까지, 관련된 많은 논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안철수 싱크탱크인 ‘내일’ 단체의 이사장인 최장집이 안철수 정당은 ‘노동중심의 진보정당’이라고 해서 사람들을 놀래키더니 이번엔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나서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진보적 자유주의는 노동자정치는 물론이거니와 소위 진보정치와도 아무런 연관이 없다. 정확히 본다면 진보적 자유주의는 사민주주의가 실패를 자인하며 신자유주의에 투항하면서 나온 이념이라고 해야 한다.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
그 뿌리부터 보수적인 이념

최장집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진보적 자유주의는 시장경제의 발전을 지향하며 동시에 시장주의의 과잉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폐해를 교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념이다. 이것이 표면상 모호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데, 이 개념 자체가 유럽 사회민주주의와 보수적 시장주의의 희석 과정,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럽 사민주의의 자유주의에 대한 패배과정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안철수의 ‘진보적 자유주의’는 독일을 그 뿌리로 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론’과 이념적 궤를 같이한다. 최장집 역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론을 모델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힌바 있다.
‘독일하면 사민주의, 사민주의는 진보’라는 연상과정에 의해 뭔가 ‘진보적’ 이미지를 가지지만,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론은 그 뿌리부터가 보수적인 이념이다. 발터 오이켄이라는 보수적 자유주의자로부터 비롯한 ‘질서자유주의’, 곧 ‘시장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가가 개입해야한다’는 독일식 신자유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이에 사회보장제도를 곁들인 것이 바로 사회적 시장경제론이며, 이는 바로 현 독일의 보수 집권당인 기독교 민주당(기민당)의 경제이념이다(안철수 세력 역시 기민당을 모델로서 자주 언급한다).
한 마디로 국가개입은 시장경제와 기업의 자유를 위해 이루어져야하며, 또한 시장경제와 기업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념인 것이다. 방점은 시장경제와 기업의 이윤에 있으며, 바로 이것이 국가개입의 목적과 한도를 결정한다.

 

진보적 자유주의
우리는 지난 10년간 충분히 경험해왔다

최장집은 김대중 정부가 표방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이 IMF 구제금융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당시로 돌아보자. ‘빅딜’을 축으로 한 재벌의 업종 통폐합-즉 자본 경쟁력 강화정책, 주주자본주의의 전면적 도입을 통한 시장질서의 강화, 급속한 노동유연화와 노동운동 탄압으로 상징되는 노동정책, 이에 곁들인 잔여적 복지정책(이른바 ‘생산적 복지’)로 요약할 수 있는 당시의 경제정책은 ‘사회적 시장경제론’의 온전한 발현이었던 셈이다.
 
좌파 신자유주의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얼마 전 안철수 세력과 진보정의당의 연대에 대해 ‘정치소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민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정의당은 안철수 세력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상정은 국회연설을 통해 정치개혁을 중심에 둔 연대를 강조하고 이어 인터뷰를 통해서도 ‘양당체제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한다’는 발언으로 안철수와의 연대를 기정사실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진보정의당을 비롯해 유럽식 사민주의를 추구하는 ‘한국형 사민주의자’들과 안철수는, 분명 ‘진보’, 그리고 ‘자유주의’에 대한 저마다의 다른 해몽을 통해 만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진보’와 ‘자유주의’의 만남의 결과는 좌파신자유주의를 말했던 노무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야기했던 김대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백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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