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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

잘 다녀왔습니다.

몇년 만의 외유라 사실 낯설기도 했는데 흥미진진한 경험들을 하고 왔습니다.

 

우선 제가 갔던 곳은 제네바라는 곳인데요. 워낙에 세계기구들의 본부가 많이 있다보니

제네바 현지사람은 드문 아주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어서 일반적으로 특정 지역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배타성이 안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나중에 가서야 약간의 느낌을 받았는데요. 그 느낌은 쿨합이었습니다. 근데 그 쿨함이 좀 굳어졌다고 해야 하나요. 그러다 보니 가끔은 차갑게 느껴졌는데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다 보니 서로 존중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고 그러다 보니 쿨하고 더 나가 차갑게 느껴졌나 봅니다. 워낙에 쿨한 것을 좋아하는 저도 사실은 상대적으로 그곳의 기준으로 보면 덜 쿨한 사람이 되더라구요.

그 묘한 쿨함이 편안하기도 혹은 불편하기도 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낯선 고민을 하게 되더군요. 헤헤....제네바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하고요.

 

그곳 생활은....정말 신선놀음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하루에 두세번도 있는 회의일정..회의 없는 날은 회의에서 결정난 일들을 다음회의까지 준비해야 하고 진행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그러한 일정들에 비교하면 정말 신선놀음이었. 늦게 시작되는 하루일정. 사유가 가능한 숙소환경...얘기 안할랍니다. 배 아프실까봐...(^^;;)

 

 

그래도 숙소 앞에 있던 요상한 나무 사진 하나 올립니다. 하늘을 향해 두팔 벌리고 있는 듯한 나무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답니다.

 


 




그곳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눈에 들어 왔던 것은 영화제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자였던 겁니다.  우선은 반가웠죠. 근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재미난 것은 대부분이 아이가 둘 이상이었던 겁니다. 아이를 갖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래 저래 들어와서 알고 있던 차에 그 문제를 이들은 어떻게 해소를 하나 싶어 물어 봤죠.

"아니 어떻게 다들 아이들이 하나도 아니고 둘 셋씩이나 있나? 한국은 최근에는 젊은 여성들이 아이를 안낳고 있어서 사회가 급속도로 노령화되고 있어 사회적 문제라고 난리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나? 노하우를 알고 싶다."

그랬더니 그들왈 "열심히 조직한다" 였습니다. 처음에는 영어가 짧아서 조직한다란 이야기만 듣고 여기는 공동육아가 일반적인가 보다 싶었는데 조금 듣다 보니 아이를 볼 사람을 식구들 중에서 찾는다는 거였습니다. 글고 덫붙이는 말이 "아기 키우는 것은 힘든 일이다" 라는 거였습니다. 내심 '그럼 한국이랑 뭐가 다른가? 여기도 비슷하구나. 아기 키우는 일은 어디서든 비슷한 문제구나' 싶었죠.

 

그런데 조금씩 그곳에서 활동 영역을 넓히다 보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낯선 모습을 보기 시작했죠. 그 처음은 슈퍼마켙에서였는데요. 많은 남자들이 뭔가 빼곡히 적은 메모를 쥐고는 장을 보는 겁니다. 그것도 매우 진지하게 이것 저것 들어 보고 제보고 하면서 말이죠. 어찌나 이뻐 보이던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많은 남자들이 장을 본다는 겁니다. 물론 개중에는 부인이 적어준 메모를 가지고 와서 장을 보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만 해도 참말로 반가운 일인데 자기 일의 하나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장을 볼 때는 보기 힘든 그런 모습이라...참말로 반가웠지요.

 

낯선 장면, 두번째는 아이들과 같이 다니는 남자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것도 넘 자연스럽게...한번은 영화제 사무국 회의에 우연히 갔었는데(앞에서 말한 것 처럼 대부분이 여자. 실제로는 10명 가까이 되는 사람 중에 남자는 한 명, 것도 극장 오퍼레이터) 사무국 사람 중 한명의 남편이 두 아이와 와 있었어요. 아이가 있어도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아이에게는 별 신경 쓰지 않고 회의를 하고 아빠는 아이들을 돌보고....회의가 끝나고 엄마가 아이들에게 잘자라고 뽀뽀하니 아빠가 아이 하나는 유모차에 앉혀 끌고 가고 하나는 손 잡고 가더군요. 넘 자연스럽게. 항상 아이 때문에 불안 불안하면서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많은 활동가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한번 더 나간 낯선 장면, 그것은 아래의 사진에 담겨진 이야기입니다. 그 유모차를 끌고 가던 아빠를 우연히 담날 슈퍼마켙에서 만났습니다. 넘 반가워서 인사를 했죠. 역시나 아이를 데리고 왔더라구요. 뭘 샀나고 재미나게 물었더니...그 아빠왈 "아들 친구 생일이어서 같이 선물 사러 왔어요" 하면서 아이랑 함께 고른 동화책을 보여주더라구요. 참 아름답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진하나 찍고 싶다고 했죠.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그 상황이 육아를 잘 나누고 있는 아빠를 보는 것 같아서요. 웃으면서 응해주더군요. 그래서 얻은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고 헤어지면서 그날 저녁에 있는 저녁 모임에 올 거냐고 물었더니(그 아빠도 영화감독) 아이가 생일파티 갔다 와서 피곤해 하면 못가고 아니면 아이 데리고 간다고 하더군요.

 

생일파티 가는 아빠와 아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처음에 들었던 어디든 아기 키우면서 일하는 것은 다 어렵다는 생각이 제네바에서는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아기 키우면서 일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여성이나 남성이나 마찬가지 어려움이었습니다. 같이 책임을 나누는 상황에서 같이 어려워하는 것, 그러면서 같이 키우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아기 키우는 것이 활동에 하중을 가해서 힘들어하는 남자 선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하중은 여자 선배들이 느끼는 그러한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제가 여지껏 봐온 것은 말이죠. 그래서 그곳에서 여성이 느끼는 어려움과 이곳에서 여성이 느끼는 어려움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육아문제 때문에 활동을 쉬는 여자선배들은 쉽게 만나지만 그러한 남자선배를 만나기는 정말 하늘에 별따기이니까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가끔 열심히 육아를 고민하는 남자선배들을 보지만 그것도 참...열심히 투쟁해서 얻은 거다란 생각. 열심히 육아에 대한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자신의 활동도 중요하다란 것을 알려야 겨우 얻어지는 상황.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보면 같은 상황이라더라도 누군 하나를 얻으려고 목터지게 싸워야 얻는데 누군 그냥 그러한 상황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 시기에 이곳에서 산다는 것이 참 불편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 여성들에 대한 강한 연민도 느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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