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저항이란 비기는 싸움을 하는 것이다

평화가 무엇이냐 2005/12/14 00:55

동화작가 박기범이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이라크 민중들이 총을 들고 저항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냐고.
 
나는 그에게 진심어린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왠지 그의 눈을 보고서는 말을 제대로 하기가 힘들었다.
이라크를 몇 번이나 다녀온 그는 그 두 눈으로 내가 보지 못한 많은 이라크 인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의 고통을 직접 보았을 그의 두 눈에서는 이라크의 고통이 너무도 생생히 묻어난다.
그래서 나는 그 앞에서 말을 하기가 힘들다.
내가 새만금 갯벌을 직접 가보기 전에는 그 아픔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천성산을 직접 가보기 전에는 그 아름다운 산이 깎여 나간다는 아픔을 난 느끼지 못했다.
내 두 발로 직접 팽성 땅을 직접 밟아보기 전에는 주민들의 촛불의 외침이 내 귀에 들리지 않았었다.
마찬가지로 박기범은 이라크의 아픔을 너무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을 것이기에, 이라크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내 복잡한 생각을 솔직하게 적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의문투성이인 생각들을 차분하게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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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이 미군에 의해 죽은 이라크 사람이 그에 대한 저항으로 총을 드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고 그는 물었다.
비폭력직접행동을 중시하는 나는 그것을 틀렸다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다.
나는 그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찬 이라크 인에게 별로 할 말이 없다.
그의 등을 토닥여줄 수 있다면, 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내가 할 말이 있다면 그가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게 만든 것들에게 할 말이 있겠다.
그 이라크 인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폭력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묻고, 그것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 묻겠다.
그래서 나는 미군 철수와 자이툰 부대 철수와 이라크 전쟁의 종식을 염원하는 것이 아닌가.
 
평화는, 비폭력은 일상을 살아가는 문제다.
어떻게 살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 비폭력이다.
 
'대항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라는 원론적인 질문에 대해 비폭력주의자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가?
구체적으로, 나는 언제나 비폭력은 올바르고, 폭력은 틀리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 무엇이 틀린 길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비폭력은 언제나 옳고 폭력은 언제나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가?
 
지금 이라크 인들의 저항폭력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폭력적 대응은?
체첸 반군의 활동은?
쿠르드족의 무장투쟁은?
아체 반군의 활동은?
총을 든 사파티스타는?
일제시대 폭탄으로 저항한 투사들은?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이다.
일시적으로 분노와 증오로 총/폭탄/쇠파이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일상적으로 지속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분노와 공격심과 증오를 만들어내는 제도적 실천이 바로 군대의 탄생이고, 저항군대의 유지이고, 노동자군대에 대한 동경이고 그 귀결은 북한/남한과 같은 병영국가 아니던가.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당신도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고,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옆에서 친구가 죽어가고 있는데 비폭력 타령만 할 것이냐고, 두려움을 조장하며 사람들은 총을 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무술을 배워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남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비폭력은 자신에게서 분노를 없애는 것이다.
비폭력적인 삶은 자신의 일상에서 두려움을 없애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파티스타는 어떤가?
그들의 자치를 군사주의적 지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총을 든 무장항쟁은 반드시 군대적 사회를 만들어내는가?
무장항쟁이 끝나 승리를 거둔 사회가 자율적 개인들이 만들어가는 평화적이고 수평적인 사회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라도 있는가?
총을 들고 싸운 다음 모두가 총을 내리면 되지 않을까?
 
폭력으로 일상을 살아온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비폭력으로 일상을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비폭력은 일상을 살아가는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방위로 총을 드는 것은 어떤가?
한 번의 보복, 한 번의 살인.
그 이후 다시 비폭력적 삶을 살면 되지 않을까?
 
총을 든 기억, 폭력을 행사한 기억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면 오히려 비폭력의 일상을 잘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폭력상황에 노출된, 그것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그에게 남는 것은 분노다.
그것은 한이 된다.
치유되지 않는 고통이 남겨진다.
 
'상대방을 죽인다면 내 고통이 말끔히 없어질까?'
 
복수로 이글거리는 사람에게 이런 고민이 의미가 있을까?
없을 것이다.
복수를 하고 싶다, 그를 죽이고 싶다, 총을 들어 상대를 없애버리고 싶다는 생각, 폭력적인 방법으로 원수를 갚아야 한다, 그럴 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이것은 상대방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내가 상대방을 제압해야 한다는 욕망에서 생성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폭행을 한 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자에게 같은 폭력을 행사한다고 해서 내 슬픔이 가시는가?
그런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는가?
그를 폭력으로 지워버린다고 나는 안심할 수 있는가?
죄인에게 사형을 내린다고 나는 안심할 수 있는가?
통쾌해지겠지만 그것이 폭력을 줄일 수 있을까?
다른 폭력을 낳는 것은 아닌가?
결국은 다시 일상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수 없이 많은 싸움과 투쟁으로 이뤄져 있다.
평화로운 일상이란 싸움이 없는 일상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싸움이 없는 삶이란 죽은 삶이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일상이란, 평화로운 삶이란 싸움을 끝내기 위해 살아가는 일상을, 싸움을 끝내기 위해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싸움을 끝내려면 이기거나 져서는 안 된다.
완전히 비길 때 그래서 나와 남의 대립이 없어질 때 싸움은 끝난다.
그러므로 완전한 승리란 역설적이지만 완전한 비김이다.
완전히 비기지 않고는 싸움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비기는 싸움을 하는 것이야말로 비폭력 저항의 방법이며, 평화를 위한 투쟁의 방법이다.
이는 본질적으로는 나와 남을 가르는 이분법을 해체하는 것이다.
 
폭력의 상황만을 떠올리는 것은 결국 그것에 대응하기 위한 대응폭력을 자연히 필요로 하게 된다.
결국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비폭력주의자는 폭력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것에 대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대응이 아니라 그런 폭력적 상황을 어떻게 끝장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그 구체적 방안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비폭력주의는 폭력 상황을 완전히 끝내려면 비폭력적 방법밖에 없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폭력 상황은 저항폭력으로 완전히 마무리지을 수 있다는 태도와 실천을 폭력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것, 본질적으로 비기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비기는 싸움이야 말로 싸움의 요인들이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상대를 이김으로써, 상대를 제압함으로써, 상대를 없애버림으로써, 상대를 말살해버림으로써, 상대를 억누름으로써 싸움은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비폭력의 출발이다.
그러면 비폭력은 상대와 완전히 갈라섬을 의미하는가?
다시는 만날 수 없도록, 그래서 아무런 대립도 일어나지 않는 것, 예를 들면 폭력이 일상화된 결혼에서 비폭력적 해결이란 이혼을 뜻하는가?
그런 것도 비폭력적인 해결 방법의 하나일 수 있다.
둘 사이에 완전한 합의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니까.
각자의 일상에서 비폭력은 적과 완전히 갈라섬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것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두자.
 
복잡한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비폭력 저항이란 진정으로 비기는 싸움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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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4 00:55 2005/12/1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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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진 2005/12/15 10:11 Modify/Delete Reply

    늘 바쁘게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노래부르고 대화하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약골... 추운데 몸보신좀 해야겠다.. 언제 만나면 함께 채식 식당에 가자.. 그리고 뽀지게 먹고 다시 기운내서 길거리에 서고.. 그날은 내가 쏜다..

  2. 냉이 2005/12/15 11:42 Modify/Delete Reply


    답메일을 드릴까 하다가 블로그로 첫발자국을 남기려 이리 찾아왔어요.

    비긴다 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돕헤드님 말씀에는 '진정으로' 비기는 이라는 단서를 두어서 단순히 이김과 짐의 경계에 있는 비김을 말씀하시는 게 아닐 거라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면 '비긴다' 하는 말 또한 여전히 대결과 경쟁을 전제로 한 다분히 군사적인 용어일 것도 같거든요.)

    이김과 짐 경계에 있는 그 '비김'은 여전히 긴장상태, 표면화되지 않은 대결, 대립의 상태일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비김이라는 표현 속에는 이미 이편과 저편, 피와 아의 구분이 놓인 걸 테니 언제라도 그 힘(또는 마음)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에는 또다른 충돌이나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싶고요.

    돕헤드 님이 말하는 '진정으로' 비기는 것, 에서 그 '진정으로'가 무엇인지를 환히 알아가는 것이 이제 제 고민이 될 것 같아요.

    니어링이 말하는 '조화롭다' 하는 것이 돕헤드 님의 '진정으로 비긴다' 하는 것과 통할까 하는 생각 얼핏 해 봅니다.

    내일, 모레 부여로 부산으로 함께 다니는 길 위에서 더 많은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바래요. 앞으로 길바닥 평화의 그 길 위에서도....



  3. 아침 2005/12/15 18:16 Modify/Delete Reply

    사람들이 비폭력을 이야기하면 폭력을 사용하는 저항을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난감했던 경험이 떠오르는 군...

  4. 2005/12/15 23:30 Modify/Delete Reply

    수진/ 눈물나게 고맙다. 당신의 맘 만으로 벌써 기운이 펄펄 난다.
    냉이/ 그래요. 저도 비기는 것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요, 냉이와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눠보고, 또 기회가 닿으면 글로도 써볼께요.
    아침/ 그러게 말야. '당신이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고 하면 군대간 사람들은 비양심적인 사람들이냐?'고 반문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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