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지렁이를 키우자

나의 화분 2007/05/20 21:38
도시에서 지렁이를 키우자
     
작은 화분에서 생태계 순환을 배우며

조약골 기자
2007-05-17 20:59:38

<필자 조약골님은 ‘피자매연대’ 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나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애완동물이라는 것이 원래 혼자서도 잘 살아가도록 태어난 생명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밀어 넣은 존재들이 아닌가 해서 불편함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지내다가 우연히 몇 년간 지렁이를 키우게 되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크는 지렁이

정토회를 비롯해 몇몇 환경단체에서는 해마다 또는 분기마다 지렁이를 분양하는 행사를 한다. 사람들이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들을 정부가 마련한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렁이들에게 주면 여러 모로 좋은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저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으니 봉투 값도 절약하고 환경에도 좋겠지 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조그만 화분 가득 담겨 있던 지렁이 흙을 받아왔다. 그 화분에 담긴 흙은 검은색이었는데, 보기만 해도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속을 파보면 엄청난 지렁이들이 서로 뒤엉켜 있기도 하고, 꼼지락 꼼지락거리면서 기어 다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약간 넓은 네모상자를 하나 주워서 베란다에 갖다 놓고, 지렁이들로 가득 한 흙을 그 안에 부었다. 그리고서는 집 뒷산에 올라가 지렁이들이 없는 맨 흙을 여러 번 퍼와 그 상자를 메꿨다. 이제 준비가 끝난 것이다. 부엌에서 배출되는 음식물들을 이 흙 속에 넣어두고 다른 벌레들이 생기지 않도록 흙으로 잘 덮어주기만 하면 나머지는 이 친구들이 알아서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지렁이들은 내가 주는 음식물들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가능하면 버리는 음식물 양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가 먹을 수 있는 만큼만 소비하려 하지만, 살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 음식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수박껍질, 양파껍질, 귤 껍질, 당근 대가리, 버섯 뿌리 부분, 딸기나 토마토 꼭지 등이 그것이다. 나는 채식을 하는데, 동물성 식품 가운데 버려야 할 부분이 있었으면 역시 지렁이에게 주었을 것이다.

사실 지렁이를 키우는 삶은 도시에서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가득 찬 도회지에서는 좀처럼 흙을 밟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작물이 자라는 텃밭이 있다면 웬만한 음식물 쓰레기들은 텃밭에 버려두면 된다. 그러면 그 흙 속에 사는 지렁이를 비롯한 여러 미생물들이 유기물을 분해해 자양분으로 만들어 생명을 이어갈 테고, 다시 생태계의 순환이 이어질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흙이 없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인공적으로 흙을 만들어주는 수밖에 없다. 생태계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아파트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조그만 화분에 흙을 가득 담고 그 안에 지렁이를 좀 넣어주기만 해도 이 지구의 생태계가 어떻게 순환되는지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무척 놀라운 체험이 되기도 한다.

최고의 흙이 되는 지렁이 똥

처음엔 화분 하나로 충분하던 지렁이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지렁이들은 자신이 사는 흙을 거무스름한 분변토로 바꿔준다.

내가 처음 뒷산에서 가져온 흙은 거름도 없고, 그냥 푸석푸석한 흙이어서 거기에 무슨 씨앗을 심어도 잘 자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렁이들에게 음식물을 먹이면서 차츰 흙을 뒤집어 주고, 몇 달이 흐르자 냄새도 향긋하고 윤기가 흐르는 훌륭한 흙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지렁이들은 음식물을 먹고 똥을 싸는데, 그것으로 이뤄진 흙을 분변토라고 한다. 분변토는 흙 가운데서도 가장 질이 좋고 건강하며,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있는 최고의 흙으로 꼽힌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여기에 작물을 재배하면 따로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고 한다.

그 흙을 파보면 건강하게 꿈틀거리는 지렁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지렁이들이 다치지 않게 플라스틱 수저로 흙을 요리조리 파보면서 지렁이들의 생김새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커다란 재미였다. 이 귀여운 친구들을 좀더 잘 관찰할 수 있도록 유리병 같은 것을 구해서 넣어볼까도 고민했다. 어느새 이놈들이 내 ‘애완동물’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렁이를 징그러워서 어떻게 키우냐고 하는데, 지렁이들은 아주 깨끗한 존재다. 병균을 옮기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생태계의 건강한 순환에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생명이다.

나는 더 넓은 곳으로 지렁이들을 이주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한 명이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약간 넓은 네모상자 하나만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 식구가 두 명, 세 명으로 불어나면 자연히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도 많아질 것이다. 이미 나는 필요한 만큼 지렁이들이 있으니까 다른 친구들에게 분양해주면 좋을 것 같다.

척박해진 흙을 기어 다니며 숨구멍을 트고, 자신의 똥으로 산성의 죽은 흙을 생명이 숨쉬는 기름진 분변토로 바꾸는 지렁이에게서 배워야 할 점들이 많다. 특히 이반 일리치가 말했던, 인간 삶의 다차원적인 균형과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규모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 규모를 우리는 이미 넘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성장하려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도대체 어느 속도까지 우리의 삶을 밀어붙일 생각인가. 지렁이들이 알려주는 겸손한 철학을 배우지 않으면, 더욱 커다란 생태계의 재난 앞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될지 모른다.

ⓒ www.ildaro.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2007/05/20 21:38 2007/05/20 21:38
tags :
Trackback 0 : Comment 1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dopehead/trackback/584

  1. 2007/05/21 13:34 Modify/Delete Reply

    나도 작년부터 여름철에는 냄새나고 처리하기 찜찜한 음식물 쓰레기를 조그마한 텃밭에다 뿌리기 시작했는데 정말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음식물 처리하면 좋을 듯. 쓰레기를 처리하는게 하나의 즐거움이 되는거.. 작은 행동이지만 즐기며 살 수 있는 방법인것 같으여...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