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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3/04
    진급하는 삶(2)
    나은
  2. 2009/02/27
    침 맞고 다니고 이게 뭔...
    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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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전, 39조 2항 (2) - 총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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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쉼.
    나은
  10. 2007/03/03
    블로그 되돌아 보니
    나은

진급하는 삶

  • 등록일
    2009/03/04 12:55
  • 수정일
    2009/03/04 12:55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이란 책이 있다.

남자들은 한 번 볼 만 하다고 권유하길래 빌려서 읽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집 안에서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경험은 이해는 가도 확 와 닿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라 온 환경에 조금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필자의 어린 시절은 시골 마을의 옛 형식의 가옥이었다. 즉, 농촌의 삶에 가까웠다. (비록 농사를 짓는 집은 아니었어도)

반면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가족 간의 위계는 필자의 그것보다는 살짝.(물론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자체는 전근대와 근대를 왔다갔다 하지만) 약했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남성 가장은 가족을 부양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가장이 될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 다만 내가 명절 때 시골 조부모 댁에 내려가고, 아버지 형제가족들 다수가 시골집에 모였을 땐 확실히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이 눈에 확 드러났다.

 

내가 더 깊이 공감하면서 읽은 부분은 필자가 국민학교에 입학한 이후의 경험을 적은 것이다.

특히 "한국인의 보편적인 삶의 방식은 선택이 아니라 진급이다"란 언급이 참 적당하다.

김어준도 <건투를 빈다>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자신이 선택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계속 '아이'로 남아 있다고 지적하는 데 비슷한 얘기다.

 

태어나서 유치원에(혹은 유사한 유아교육기관) 가고, 그 다음엔 초등학교, 다음엔 당연히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서, 남자는 군대에 가서 이병에서 일병으로, 상병으로, 병장까지 진급한 다음,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애를 똑같은 싸이클로 잘 키운 다음에 애들을 취직, 결혼시키고, 그 애들이 또 손주를 낳으면 그 손주를 봐 주면서 또 똑같은 싸이클로...

 

이게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편타당한' 라이프 싸이클이고, 여기에서 한 치라도 벗어날라 치면 주변에서 온갖 간섭과 회유와 협박과 걱정이 휘몰아치면서 당사자는 계속 불안과 스트레스에 놓이게 되고 꿋꿋이 자기 선택대로 밀고 나가거나 아니면, 결국 굴복하고 마는 비극이 참 다채널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한편 삶이 곧 진급이란 얘기는, 우리 삶에 '계급'이 실재하고 있단 얘기다. 어느 집단, 모임에서든 신분의 위 아래를 구분하는 게 가장 먼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권위주의는 곳곳에 살아 넘친다는 얘기. 하물며 서로 '동지'라고 호칭하는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학번의 권위와 성별의 권위와 기타 등등은 다 깔려 있다.

다음에 기회 되면 좀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초중고 학교에서의 경험과, 학생운동에서의 경험과, 군대에서의 경험이 크게 다르지 않다.

 

"권위주의와 커뮤니케이션은 정반대 위치에 있다"는 필자의 말도 그래서 참 와 닿았다. 한 사람이 모든 걸 결정하거나 구성원이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있는 곳은 권위주의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맞는 얘기다. 경험상으로도 충분히.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나도 그대로 진급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 이후엔, 약간의 파열음을 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거스르며 살아왔냐.. 그것도 아니다. '동굴 속 황제'의 모습은 아직 내 안에 있으니까... 군대에서도 무사히 진급해서 보편 라이프 싸이클에서 군대까지 일단 찍었다. 집에서는 이제 다음 단계로 진급하라고, 취직과 결혼을 종용한다.

 

내 안의 아버지를 죽여 버리고 '어른'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얼까.

자기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제자리뛰기는 시작했는데 아직 방향을 못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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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맞고 다니고 이게 뭔...

  • 등록일
    2009/02/27 11:54
  • 수정일
    2009/02/27 11:54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화요일부터 왼쪽 팔이 뜨끔뜨끔.
대충 참아 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어제, 오늘 두 번 한의원 가서 침 맞았다.
치료실 침대에 누워서 물리치료 받고 있으니까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르면서 문득, 아 진짜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아프면 이제 돈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와서 참 거시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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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폭스에서 블로그 관리...

  • 등록일
    2009/02/24 02:58
  • 수정일
    2009/02/24 02:58

가 힘들 줄이야ㅠ.ㅠ

 

드디어, 주민등록번호 이제 그만! 배너를 다는 데 성공했다.

 

한 일주일 전부터 달아 보려고 애썼는데,

스킨편집에서 HTML들어가서 배너를 아무리 집어넣어도 에러 메세지만 뜨고

아.. 왜 안되지.. 왜 안되지.. 내가 배너 못 달 정도의 컴맹은 아닌데.. 하면서

에잇 일단 다음에 다시 해 보자. 이러길 너댓번 반복하다가..

결국 진보네 문의하기에 질문을 쓰는 도중에,

문득. 문득. 과거에 FF에서 블로그가 좀 안 돌아갔다는 포스팅들을 보고선, 혹시나 해서

IE tab으로 열어서 해 봤더니, 너무 간단하게 배너가 생겨버렸다~

 

파폭으로 열었을 땐 스킨 적용도 제대로 안 되는데,

IE로 열어보니까 스킨이 제대로 적용되어 있다~

 

이 글 혹시 진보네가 보면, 한 번 더 비명을 지를 것 같지만...(^^ 이해해 줘용~)

혹시나 저같이 삽질하지 말라고.. 포스팅.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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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 등록일
    2009/02/23 17:10
  • 수정일
    2009/02/23 17:10
면접을 보고 왔다. 40분 남짓.
면접이란 걸 한 3년 만에 본 듯. (그때야 좀 짜고치는게 있었고)
가기 전까지.. 좀 떨렸다. 가슴도 쿵쾅쿵쾅. ㅡ.ㅡ

면접 끝나고 인도로 샤방샤방 자전거 타고 집으로 오는데,
으으. 잘 되면 좋겠는데,
이 어찌 아쉬움이 마구 밀려오는 것인지.

자기소개서도 좀더 공들여서 잘 쓰고,
질문에 대답할 때도 좀더 팍팍 명쾌하게 잘 했음 좋았을텐데...
어째 두리뭉실했던 것 같아서 쫌...
그만큼 자신감이 많이 없었나...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는 게
그렇게 대답하는 게 바로 지금의 '나'구나 싶어서...
잠깐 동안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거, 그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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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읽은 책들

  • 등록일
    2009/02/17 13:52
  • 수정일
    2009/02/17 13:52
아. 좀더 많이 읽었어야 하는데-

빛의 제국, 김영하
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침이 고인다, 김애란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남한산성, 김훈
현의 노래, 김훈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정미경
올드보이 한대수, 한대수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로버트 카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김훈 화장 외
카스테라, 박민규
인간연습, 조정래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 한학수
자전거 여행, 김훈


소설책 많이 보면서 한편으론 김훈의 문체에 사정없이 빠져들었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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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CCTV(폐쇄회로텔레비전)...

  • 등록일
    2009/02/16 13:08
  • 수정일
    2009/02/16 13:08
웹서핑 하다가 본 매일경제 기사 (뛰는 강력범죄...진화하는 CCTV) 가 있다. 때마침 텔레비전에서 이라는 '해외 명작 다큐멘터리' 방영한다는 예고를 하길래 시간맞춰 챙겨봤다.

CCTV

이 다큐멘터리는 영국에서 CCTV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자세히 소개한 프로그램.
영국에는 약 400만 대의 CCTV가 있고, 도입된 역사는 50년 가까이 된다고 한다.

CCTV는 주로 경찰, 교통관리 등에 자세히 활용되고 있다.

범죄예방 혹은 신속한 범죄대응에 활용되는 양상은 이런 식이다.
도심 구석구석을 수많은 카메라가 비추고, 통제실에서는 화면을 일일이 감시한다.
즉, 범죄가 발생하면 나중에 녹화본을 되돌려 보는 게 아니라 계속 사람이 상주하면서 감시하는 셈.
그리고선, 범죄 요소가 발생할 경우 곧바로 경찰을 출동시켜 제압하는 식.

새벽에 인적드문 거리를 한 소녀가 걸어가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긴 CCTV통제실에서 계속 그녀를 추적하다가 한 남성에게 납치당할 뻔 한 것을 예방한 사례도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를 계기로 한 도시에서는 'CCTV에스코트'라는 공공서비스도 있다고 한다.
즉, 시내 곳곳에 비상벨을 설치해 두고 귀가 중인 시민이 불안을 느껴 비상벨을 누르면, 그때부터 CCTV가 그 시민이 안전하게 귀가할 때까지 '돌봐' 주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사람이 화면 앞에 지키고 있는 것은 비효율적이기에 끊임없는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단다. 우선, 화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디카급으로 고화소 카메라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거기에 얼굴 인식(요즘 디카에 많이 달려 나오는) 기능, 동작 인식 기능이 추가되고 있다.

한 수영장에서는 동작인식/사람인식 기능이 달린 CCTV를 설치해 어린 아이가 물에 빠지면 바로 구조요원에게 비상신호를 울려 구조하게 하고 있었다.

또 소리도 인식할 수 있게 해서 도심에서 고성/방가가 터져 나오면 경고 표시를 할 수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람의 걸음걸이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데이터를 입력해 놓고 CCTV로 사람의 걸음걸이를 분석해 신원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도 했다.

영국은 지하철 차량 내부에도 CCTV가 달려 있다고 한다.

끝 부분에 잠시 CCTV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언급이 나오긴 하지만 초점은 테러, 범죄로부터 무고한 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CCTV는 가치 있다는 내용이 주였다.

*

뉴스의 사건 소식에서 꼭 한 번은 CCTV화면을 보게 되고, 강호순 사건 때문에 CCTV를 더욱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실제로 차를 운전하면서, 길가를 다니면서 보면 CCTV가 훨씬 는 것 같다. 특히 '방법용CCTV'라는 명패를 단 것들이.

다큐 보면서 계속 CCTV는 대증요법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아 도움이 되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것은 '파놉티콘'.
주민의 삶 전체가 감시와 통제 속에 놓이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전체를 통제하는 것은 과연 누구?
주민의 통제가 전제되지 않는 CCTV는 쉽게 누군가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마련 아닌가.

한편으론 테러나, 강력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을 찾아서 예방하는 방법을 없을까에 대한 고민도 살짝.

*

중학생 때 학원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교실에서 한창 떠들고 있으니 갑자기 방송으로 학원 원장 쌤이 "조용히 햇~"하고 경고를 내렸다. 나중에 원장실에 들어가 본 일이 있는데, 각 교실마다 마이크와 스피커가 장착된 CCTV 화면 수십 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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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39조 2항 (2) - 총에 대한 기억

  • 등록일
    2009/02/15 14:45
  • 수정일
    2009/02/15 14:45

전시장에서 액자의 크기는 작았지만, 가장 나의 눈길을 잡아 끈 사진은 바로 이 사진.

http://a39c2.files.wordpress.com/2008/11/nohsuntag_024.jpg

(전시 블로그에 저작권 관련 공지가 없어서 일단 링크)

 

나는 이 사진을 꽤 오랫동안 들여다 보았다.

 

*

 

저건 군대에서 사격 연습 때 사용하는 표적이다. 그냥 시커먼 사람 형상의 표적을 쓸 때도 있지만, 처음 입대해서 훈련을 받을 때도, 이후에 사격장에서 총을 쏠 때도 우리가 쏘아야 하는 건 바로 저 표적이다.

 

입대하면 2주 정도 후에 사격을 배우기 시작한다. 바로 총을 쏘는 건 아니고, 먼저 이론을 배우고 소총을 분해/조립/정비하는 법부터 배운다. 조준하는 법을 배우고, 어느 정도 숙달되면 그 때서야 실외에서 직접 실탄을 가지고 사격을 한다. 이 때 조준하는 법을 배우면서 바로 저 표적을 사용한다.

 

조준 연습을 하면서 군인들은 저 표적의 머리를 겨냥하는 방법과, 가슴을 겨냥하는 방법, 배를 겨냥하는 방법을 배운다.

 

처음으로 100미터, 200미터 거리의 표적을 맞추는 사격을 했을 때가 생각난다. 저 표적은 기계장치에 연결되어 있는데 평상시에는 땅바닥에 누워 있다. 그러다가 사격 구령이 떨어지면 시간차를 두고 기계장치에 의해 지면에 수직으로 세워진다. 그러면 총으로 그걸 쏴서 맞춰야 하는 거다. 명중하는 순간, 표적은 지면으로 눕는다.

 

사격장 위에 올라가서 표적을 가까이서 보면 약 5mm지름의 동그란 구멍이 가득하다.

동그란 구멍들이 뽕뽕 뚫려있는 이미지는 묘한 조형미를 느끼게 했다. 진짜 사람의 머리에 총알이 박힌다면, 이마에도 똑같은 크기의 구멍들이 나 있을 것이다....

(사람 머리에 총알이 관통했을 때 뒤통수가 더 크게 허물어진다는 소릴 많이 들었는데 이 글을 참고... http://blog.naver.com/fallinl0ve/20028015212)

 

가슴팍에 소총을 움켜쥔 인민군 복장의 표적은 총을 쏘는 군인이 망설임을 덜 수 있도록 길들인다. 정신교육 시간에는 항상 북한군이 얼마나 위험한 집단인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집단인지를 반복해서 배운다. 그리고 최소 2년 간 저 표적을 겨냥하는 방법을 반복 연습한다. 유사한 이미지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징집된 많은 병사들은 '차마 전쟁이 나랴'는 생각을 하면서 방아쇠를 당긴다. 제한된 시간 내에 저 표적에 20개/40개의 구멍을 정확히 만들어 내면, 그들에겐 4박5일 짜리 포상휴가가 주어진다. 전국 곳곳에서, 60만 명이, 그러고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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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39조 2항. (1)

  • 등록일
    2009/02/13 21:58
  • 수정일
    2009/02/13 21:58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전희경의 [오빠는 필요없다].

생생한 사례가 지금 눈 앞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다.

 

이제 웬만한 단체나 조직은 반성폭력 내규 쯤은 하나씩 갖고 있는 시대다. 그런데도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뻔하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 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는 남자들의 '24시간'을 바꾸지 못했다. 24시간동안 일어나는 모든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남자들은 '입으로만' 수용했을 뿐이다. 제스춰를 취했을 뿐이다.

 

왜 그럴까. 나는 여기서 이 굳건한 가부장성을 떠받치는 하나의 집단에 주목한다. 군대. 그리고 군대가 만들어내는 사고방식과 문화, 이른바 군사문화가 가부장성을 확대재생산하는 튼튼한 뿌리임을 확신한다. 지난 2년 동안 몸소 체험해 왔다.

 

내 인생의 일부를, 지워야할 기억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기에, 나는 지금 커다란 숙제를 껴안고 있다. 나의 군대경험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 깔린 군사주의와 가부장성을 성찰하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전시회, 39(2)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

 

F15K, 넌 참 좋은 기계인데 요즘 살인기계로 보여.

내가 이 기계를 몰게 될 수 있을 텐데,

실수로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한 공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의 블로그에서 시작된 파문.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노순택 작가의 "좋은 살인"이란 주제의 사진들이 내 눈을 붙잡았다.

 

창공을 가르는 수천억원의 첨단 군용기들에 한 껏 매료된 사람들.

전투기 조종석에 앉은 어린이와 양 옆에서 '환한' 미소로 V자 포즈를 취한 미군들.

패트리어트 미사일 사이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는 어린이들.

아이는 아빠에게 기관총을 쏴는 자세를 취하고, 아빠는 디카로 그 장면을 자랑스럽게 사진에 담고.

군인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에게 수류탄 투척하는 자세를 바로잡아 준다.

 

군대를 홍보한다는 명목 하에 에어쇼가 펼쳐지고, 지상군 무기들을 전시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리고, 강한 정신력을 길러준다며 군사훈련 캠프가 열린다. 나도 중학생 때 최첨단 전투기를 볼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에어쇼에 갔었고, 부모로부터 해병대 캠프 참가를 권유받기도 했다.

 

최첨단 무기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은 기계의 목적을 보지 못한다. 눈앞에서 보여 주는 기계의 '아름다움'에 현혹된다. 이렇게 해서 군대는 그들의 홍보문구를 사람들의 뇌리에 남기는 데 성공한다.

"강한 친구"

 

한편, 아카데미과학사의 프라모델 부품들을 렌즈에 담은 사진들은 어떤지.

 

나, 중학생 때까지 취미가 프라모델 만들기였다. 탱크, 비행기, 군함... 안 만들어본 종류가 없다. 어린 시절, 베레타 권총이니 M16A1이니 우지 기관총이니 콩알만한 플라스틱 탄알이 발사되는 총기류, 다 가지고 놀아 봤다.

 

또각또각, 니퍼로 이음매들을 끊어내고, 살짝 본드칠 해 부품들을 끼워 맞추면, 금새 눈앞에선 전투기가 탄생하고, 각종 폭탄과 미사일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조립한 이는 그 조형미와 설명서에 적힌 가공할 파괴력의 제원에 열광한다. 그 '힘'의 축소판이 내 눈 앞에 있다! 힘 앞에 매료되면서 그 기계의 존재 이유는 뇌리에서 잊혀진다. 눈앞의 조형물이 가자에서 죄없는 이들을 죽이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대체 왜. 프라모델의 세계는 무궁무진한데, 문방구에는 그토록 탱크, 전투기, 군함만이 많이 있었던 걸까. 왜 나는 그런 것들을 만들며 열광했었나.

 

 

http://a39c2.wordpress.com/ (전시 블로그)

http://www.artsonje.org/asc/kor/exhi/2008/081201.html (아트선재센터 소개글)

 

 

전시제목 “39(2)”

전시제목인 “39조 2항”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명기한 헌법 제 2장 중에서 제 39조의 2항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조문에서 인용하였다. 헌법은 39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고 명기하였고, 2항의 조문은 군복무에 대한 헌법상의 보상규정으로 원용되어 왔다. 전시 제목에는 헌법에 명시된 한 줄의 문장으로 개인의 불이익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의구심이 담겨있다. 5 명의 참여작가들도 한국의 군사문화와 전쟁의 이미지를 그들의 작업 안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이러니와 수수께끼를 담아내고 있다. 이 전시가 한국 사회 안에서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는 모순과 갈등의 하나로 군사문화와 전쟁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39조 2항”을 전시의 제목으로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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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쉼.

  • 등록일
    2007/03/05 03:00
  • 수정일
    2007/03/05 03:00

짐시 쉰다.

언젠간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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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되돌아 보니

  • 등록일
    2007/03/03 01:16
  • 수정일
    2007/03/03 01:16
오른쪽 메뉴에 있는 달력에서 0000년 0월 양 옆의 화살표를 누르면,
한 달 동안 포스팅한 글들이 한 번에 좌르륵 떠서 별도로 마우스 버튼 누르는 수고를 덜어준다.

작년 1월까지의 글들을 죽 훑어 보았다.

많은 글과 많은 생각들이 쓰여 있었다.
지금 다시 고민되는 것도 예전에 써 두었던 것들이 많다.

**

문득 연옥과의 관계를 돌아보았는데,
만남의 스타일은 연애에 가까웠다.
하지만 서로 지향했던 것이 달랐던 것 같다.
그는 친구를 나는 연인 쪽을 지향하다가 수차례 충돌했던 것 같다.

4월이면 곧 그의 연인이 제대한다. 지금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을 매우 부러워하거나 혹은 질투했었다.
훗.

어쨌든
예전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후 두 번에 걸친 시도의 실패-그리고 두 번째 시도가 나에겐 더 강렬한 매혹이었다- 끝에
나는 '동지적 관계 위의 연애'에 강한 집착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자기 스스로가 인정하는, 혹은 남들이 그렇게 규정하는 연애의 성립에 대한 집착.

잘 풀릴 땐 좋았으나
최근에 나는 나의 주제를 모르고 자승자박을 한 꼴이다.


**

블로그를 돌아보니
매달 고민을 심히 아니한 시기가 없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꼽을 수 있는 것은 4월과 5월, 9월 쯤인 것 같다.
4~5월은 말그대로 내우외환이 겹쳐 힘든 시간이었다면
9월은 무기력한 시간들이었다고나 할까.

5월에 나는 용접기술을 배워볼까 심각하게 고민해 봤는데
괜한 자존심이 발동한 탓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뜻을 접었다. 그리고 어쨌든 3년은 너무 길다는 생각.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스럽기도 하다.
후회가 들 만큼 블로그에는 또 많이 '무력하다'느니 '게으르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많이 쓰여 있는 것이다. 좀더 열심히만 살았다면 두 마리 토끼 다 꼬랑지 바로 뒤까지는 쫓아 붙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활동을 하면서 다른 걸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지금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계속 고민과 갈등을 반복하는 부담감을 비교해 보면
후자가 좀더 낭비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희생했다는 같잖은 피해의식이 문득 느껴질 때마다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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