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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17일부터 조금씩 덧붙이기

 

* 이글을 링크하거나 퍼가시는 것을 금합니다

* 덧글 중 몇 개는 작성하신 분이 삭제하셔서 현재 제 답글만 남아있습니다

* 아래 글 내용중 6번과 연관해서 제가 납득할 수 없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그 때문에 5월 29일에 작성했던 '차라리'라는 포스트는

  문제제기하신 분의 사과를 받은 다음 내렸습니다

*덧글을 비공개 설정하고 이 글을 2008년 3월 17일까지 닫았다가 다시 열었습니다.

 

상영회 후기, 팀블로그 링크

 

참게의 불타는 소감

리우스의 불타는 소감 

너부리의 불타는 소감

re의 불타는 소감

(리우스, 너부리, re의 글은 현재 찾을 수 없습니다. 2008. 3. 18)

 

1. 영화를 트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

    상영일정이 꽉 잡혀있다는 것이

    꼭 좋은 것 만은 아니다

    그것을 얼마나 알차게 준비해서 잘 소통할 것인지

    그게 더 중요하다

 


2. 원주, 좋다

    성환이도 좋고

    성환이를 데리고 살아주는(?) 그 사람도 좋고

    다큐멘터리 동호회'나무'도 좋고

    매달 영화를 보러오는 사람들도 좋고

    막걸리도 좋고

    거기에 가면 사람냄새가 나고 착해지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 상영회는 반드시 원주에서!

 

 

3.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좋다

    수강생이나 강사나 활동가들이나 다들 부지런하신 것 같다

    근데 나는...누가 말이 좀 통한다 싶으면 마음이 급해져서

    말을 어버버버...해버린다, 에그, 챙피하다

    파전이랑 홍합이랑 번데기랑 다시마랑 고갈비랑, 맛있었다

 

 

(2006. 5. 24. 밤 9시,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최우창 촬영)

 

 

4. 홍콩에 간 여성농민들 중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 커플

    인천 향촌 철거민들에게 캡숑 인기 많았음

    권우정, 한번 씨익 웃으시길...

 

 

5. 서울독립영화제 순회상영회에서 불타는 필름을 트는 날

   대전에 다녀와서 잠시 짬이 났을 때 잠이 쏟아졌다

   깨보니 관객과의 대화를 할 시간

   덕분에 지각했고, 김환태씨 혼자 있을 줄 알고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다행히 이수정씨와 권우정씨가 있었다

   여럿이 서서 이야기하니까 든든하고 좋았다

   내가 해야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줄여도 괜찮으니

   16명이 한 자리에 모여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6. 황우석과 내가 직접 연관될 뻔 했던 두 가지 사례

   인터뷰에 응해주신 세 분께는 이미 말씀 드렸다시피

   하나는, 황우석 자서전을 집필하는 대필작가가 될 뻔 했던 일

   또 하나는, 난자를 채취하는 수술을 받을 뻔 했던 일

 

   내가 불타는 상영회에 다른 일 미뤄두고 달려가는 이유는

   그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금요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못했다

   아쉽다

 

   먼저 황우석 자서전에 관해...

   2005년 봄, 당시 나는 고정수입이 없어서 쩔쩔매는 중이었는데

   어느 출판사에서 황우석 자서전을 쓸 대필작가로 일해달라고 제안했다

   자료조사와 집필을 동시에 하는 조건으로 한 달만 일해보라는 것이다

   대신 날마다 출근할 것, 아침마다 직원들 책상과 컵 닦기,

   화장실 청소하기, 날마다 대걸레로 사무실 바닥닦기...

   그런데 아무리 자료조사를 해보고 이런 저런 책을 읽어봐도

   황우석의 연구성과에 대한 결정적인 입증자료가 없었고

   그간 국내외에 발표했다는 논문도 도무지 입수할 수가 없었다

   한 나라의 최고과학자라는 사람에 대해 글을 써주려고 하는데

   최고과학자에 걸맞는 업적을 증빙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들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뭔가 구리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외에도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여러모로 구린 구석이 많아서

   나름대로 짱구를 굴리다가 서둘러 발을 빼야만 했다

   그랬는데 한 달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10만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사무실 청소를 비롯한 몇 가지 일들은

   암만 생각해도 대필작가가 (반드시) 단독으로 해야할 일은 아니었고

   직원들이 당번을 정해서 순번대로 돌아가며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여자직원이 없다는 이유로

   내가 그 곳에서 유일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내게 일거리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당연히 내가 해야하는 일이 되었다

   더 웃긴 건, 내가 아뭇소리 못하고 그걸 묵묵히 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마저도 짤릴까봐, '피곤한 사람'이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돈이 필요해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에는 비정규직에 관한 단편이 세 편 있고

   태준식 감독이 만든 '또다시 봄'이라는 작품이 있다

   누구한테 싫은 소리 듣기 싫고 지시받고 싶지 않아서

   아침 일찍 출근해서 미리 청소도 하고 책상정리도 하는 누나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일을 하는 댓가로 회사에서는 누나에게 5만원을 더 주는데

   그 5만원에 발목을 잡히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 장면에서 늘 눈물이 난다

   기륭이나 KTX 여승무원들의 투쟁현장을 보면서도 울지만

   농협 다니는 그 누나의 이야기에서 제일 울컥, 한다 

   그 출판사에서 단지 며칠 청소를 했다고 울컥하는 게 아니다

   내 직장생활 10년이 그랬기 때문이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에서 황우석관련 단편을 보면

    난자공여 중개회사에 찾아온 여성들에게 '4백에서 5백, 잘하면 천까지도...'라고

    난자적출술에 응하는 댓가로 얼마를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바로 뒤에는 ' 돈이 필요해서...'라고 말하는 여성이 나오고

    '불임부부에게 사용된다고 들었는데...'라고 말하는 여성도 있고

    '사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내가 제공한 난자를 황우석에게 넘겼다'

    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볼 때 마다 기가 찬다

    수술 자체에 대한 설명없이 수술에 응할 사람을 구하는 것도

    불법이고 사기이지만

    수술로 인해 얻은 신체의 일부를 매매하거나 처음에 밝힌 목적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불법이자 사기이다

 

    난자채취, 라는 말은 반드시 수정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난자 적출술'이라는 말을 사용했었다

    '난자 제공, 난자 공여, 난자 기증'이라는 말은 모두

     줄기세포 연구에 필요한 난자를 무료로 얻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 과학자의 세계적 명성이 곧 국익이 될 것이므로

     숭고한 그 연구에 난자 몇 개쯤 제공할 수 있어야 자랑스런 대한의 여성이 된다는

     폭력적인 이데올로기가 흠씬 묻어있는 단어들이다

     덕분에 연구팀에 속한 고학력전문직 여성들도 희생자가 되지 않았나 

   

     암튼, 오래 전 나도 '난자 적출술'을 받을 뻔 했다

     의료계에 종사하던 그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딱 하루, 단 한 시간, 부분마취만 하면 되는 간단한 수술이고

     그걸로 5백만원을 받을 수 있으니 여자라서 참 좋겠다,

     내가 여자였으면 몇 번이고 해준다, 좋은 일에 쓴다는데

     게다가 돈도 그렇게 많이 준다는데 얼마나 좋냐'고...

 

     그 사람, 지금 자기가 그렇게 말했던 거 기억이나 할랑가 모르겠다

     참...몰라서 그랬는지, 난자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려고 그랬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생각날 때 마다 소름이  돋는다

     카메라도 사고 싶고, 후반작업 비용도 필요했던 나는

     그런 말에 혹해 수술을 받을 수도 있었다

     수술대로 다가가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그 수술로 인해 얼마나 치명적인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는지 밝혀진 지금

     피해여성들이 얼마나 많을지, 과연 누가 어떻게 피해자들을 책임질 것인지

     그 생각만 하면 화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분노를 적출하는 수술은 없나.

        

 

7. 28일 성남, 김결이란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한겨레 VJ과정을 들은 후배다

    내가 5기? 그 친구가 6기? 7기? 암튼 조대희랑 재원이랑 동기

    덕분에 하나도 긴장안했고 이야기도 많이 많이 나누고 왔다

   

    상영 직전, 센터앞 벤치에 잠시 누웠는데 김결이 사진기를 들고 오길래

    발로 막았더니...기어이 찍어버렸다, 쳇

 

 

8. 30일 카페 빵, 처음 가봤다

    친구들에게 전화가 올 때는 약도에서 본 대로 설명했는데 정작 나는...

    암만 찾아도 간판이 안보여서 식은땀 흘리고...

    테이블마다 둘러앉아서 화기애애하게 

    맥주마시고 담배피면서 영화를 볼 줄 알았는데

    의자를 극장식으로 배치해놔서 굉장히 당황 당황

    감독들의 친구나 후배나 수강생들이나

    다큐멘터리를 이미 여러 편 봐온 분들이 많았던 거 같다

    2004년에 돌 속에 갇힌말, 을 봤다면서

    일부러 황우석 관련 단편을 보러 오신 분을 만났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그걸 장편으로 만들 계획은 없냐고 질문하셨던 그 분

    리우스, 얼굴 보고 악수하고 같이 술마셔서 너무 너무 너무 좋다

    바쁜 시간을 쪼개 영화보러운 달군, 미류, 노치도 고맙고

    구성작가로 일할 때 첫 사수이자 선생님이었던 영심언니도 왔다, 형부랑 같이

    인천에 사는 후배가 둘, 그래서 모두 8명이 내 친구였네! 으흐

    관객과의 대화가 중요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진행자가 조금 더 감독과 관객의 소통을 위해 준비하거나 배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9. 사람들은 여전히 남의 험담이나 뒷이야기에 쉽게 흔들리고

    누군가 자신의 실수나 잘잘못을 꼼꼼하게 기억하고 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나는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험담을 할 바에야

    공개적으로 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말하기 곤란한 이야기라면

    뒷이야기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쉽지 않다

 

 

10. 인하대, 서울독립영화제 순회상영회에서 상영

     어느 시간강사가 레포트로 소감문을 쓰라고 했다는데

     학생들 정말 많았고 중간에 나가거나 영화 끝나고 나간 사람도 많았다 ^^;;;

     그래도 꿋꿋하게 서른 명 정도? 앉은 객석 앞에서

     해도 해도 늘지 않는 뻘쭘한 관객과의 대화를...

     그러다가 결국...한 건 했다, 학생들 엄청 웃더라, 내가 좀 웃기긴 하지...

     그 내용은 적을 수 없다 (기억 못해, 기억 못해...흑흑)

 

 

11. 맨날 상영회 다니니까 차비(감독초청비) 좀 모았겠다고

     농담삼아 물어보는 사람...이 아직은 없지만 있을 지도 모르니까...

     미리 밝혀두는 데 차비는 부산 갈 때 각각 십만원씩 두번 받았고 다 썼다

     서울 부산 왕복하고 중간에 밥 사먹고 지하철, 혹은 택시타고...없다

     그 뒤로는 제가 직접 받은 적 없어요 ^^;;;

     초청비를 낼 수 없었던 단체도 있었고...

     2005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불타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지출한 비용은

     6미리테잎 20개 5만 4천원,

     180분짜리 VHS 테잎 30개(3배속 녹화로 비용초절감) 6만 6천원

     퀵서비스 3만 2천원,

     시와 등 도와주신 분들 밥값, 간식, 차비 등 15만원 이상...흑흑

     이렇게만 계산해도 20만원 가까이 들었고 파악되지 않는 지출이 상당...

     지난 5월, 믹싱 마칠 때 받은 퀵비 삼만원이 가뭄의 단비였다



12. 다음, 누군가가 조금 돌아봐줄 그 다음을 위해서

     두고 두고 볼 사람들과 조금 더 좋은 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해야할 말을 꾹꾹 누르는 짓을 언제까지 해야하는 걸까

     역사는 일상의 기록에서 출발한다

     누락된 경험을 가진 이들은 늘 혼자 중얼거려야만 하는 걸까

     영화는 소통 '가능' 한가

     관객과 감독이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느리게 적응해온 제작과정 전반과 시스템, 관행들이

     조금 다른 현실, 그리고 미래와 부딪혀야 한다

 

 

13. 황우석 관련기사 - 48억 공중에 날린 서울대병원 경영진 사퇴해야

                                  사회운동의 황우석 사태 대응, 솔직히 비겁

 

 

14. 하루에서 두 시간,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당장 나를 돌아보면 안다

     그래서 그 두시간을 기꺼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내준 분들에게 늘 감사한다

     대화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분들이란, 더더욱 존경스럽다

     나는 관객의 자리에 있을 때 불이 켜지면 후다닥 일어서곤 했지 않은가

     예전의 나와 지금의 객석을 생각할 때

     그들의 기대와 호기심과 불만과 불편함이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기에

     그 복잡한 마음들 사이로 누군가는 곧 감독이 되거나

     독립영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되거나

     다큐멘터리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에

     나는 상영회가 열리는 곳을 외면할 수가 없다

     내가 혼자 작업한 것이 아니기에 그 책임감은 더 커진다

     등 뒤에서 말없이 마음으로 이 자리를 채우고 있을

     열 여섯명의 연출자를 생각한다

    

 

15. 6월 4일(일) 대추리, 투쟁기금 전달

     신부님이 범대위를 대신해서 봉투를 받고

     그런 일을 해본 적 없는 나는 몹시 어정쩡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문정현 신부님을 대추리에서 처음 만나던 날을 기억한다

     지난 2월, [돌속에갇힌말]을 상영하러 가서

     평화바람 숙소에서 같이 저녁을 먹을 때

     지선과 또 다른 친구가 밥을 차리고 있었고

     남성들은 밥상앞에 앉아있다가 차려진 밥을 먹었다

     신부님은 다른 곳에 있다가 친구들이 모셔와서 함께 앉았는데

     내가 제작진 한 사람과 같이 있는 걸 보고도

     그러니까 낯선 사람이 같이 저녁을 먹게 된 것을 보고도

     어디서 왔는지, 오늘 무슨 일로 왔는지 하는 간단한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방문한 사람들과 그날 신문에 보도된 기사내용에 대해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틈이 없었다

     바쁘고 바쁘고...당장 긴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이 많고 많은...

     그런 나날일 것이라고,

     그래서 나같은 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는 것이라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없이 밥을 먹었다

     영화상영을 마치고 활동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대추리 찻집으로 다시 신부님이 오셨다

     서울에서 어느 학교 교수님들인가, 중요한 직책을 맡은 분들이 와서

     대추리 상황에 대한 설명도 하고 인사도 나누는 상황이었나 보다

     상영회 뒤풀이를 마치고 찻집 안쪽방에 있다가 방문을 열고 나갔을 때

     신부님이 그제서야 악수를 청했다

     아까는 몰랐다고, 오늘 영화를 들고온 감독님이냐고, 고생이 많다고...

     나는 속으로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인가?

     어쩌면 나는 그를 

     '반전평화운동에 생을 걸고 있으나 다소 권위적인' 사람으로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늦게라도 알아봐줘서 다행인가?

     어쩌면 내가

    '미군기지확장이전반대에 참여하고 싶은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맘 상한'

     쪼잔한 사람인게 아닐까...그래서 한숨...

     대추리에 그 뒤로 대여섯 번 더 다녀왔을 때

     촛불집회에서 열심히 촬영을 하는 신부님을 볼 때 마다

     어색했던 첫 대면장면이 떠올라서 나는 좀 부끄러웠다

     그러다가 오늘, 4일, 올해 30년째된다는 대추리 도두리 리민의 날

     기금을 전달하고 돌아서서 집회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들의 촛불집회는 이제 끝나야 하고

     이들의 '리민 축제'는 앞으로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때까지 내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역시 너무 작고 보잘 것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고 외로왔다

 

 

16. 6월 5일(월) 수원상영회, 좋았다

     보라돌이도 토리도 메이도 반지도 레이도 성균관대 학생도

     나랑 동갑이라는 여성단체 활동가도 은실씨도 성규씨도 또 한 사람의 정다운 얼굴도

     관객은 스무 명보다 적었나, 대화시간에는 한 열명 있었나

     그러나 한 시간을 꼬박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래도 아쉬움이 남을만큼

     열심히 서로 무언가를 주고 받았다고 생각한다

     2005년 6월 9일에 일어난 일에 관해, 돌속에갇힌말이 방영취소되었던 일에 관해

     우연히 뒤풀이 자리에서 연관된 질문을 받고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는데

     의외로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약간 놀랬다

     다들, 싸워야해!, 라고 지지해주는 느낌, 고마운 사람들...

     이제 조금만, 조금만 더 배려하자

     불 켜는, 혹은 말을 꺼내는 타이밍이라든가 서로를 소개하는 방식이라든가

     이야기를 증폭할 수 있는, 혹은 잘 마무리하는 법에 관해서

 

 

17. 6월 8일(목) 울산 상영회에서

     미희, 연정씨 땡큐베리감솨...

     기차로 동대구까지, 거기서 버스로 울산까지 갔을 때

     미희가 김밥을 사들고 차를 가지고 나왔고

     연정씨는 뒤풀이까지 다 깔끔하게 마무리한 다음 집에서 재워줬다

 

     처음 근로복지회관에 가보니 연정씨는 상영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몇 번 얼굴을 익힌 (향미 공연할 때, 그 전에도...) 친구들이 하나 둘 보였다

     사람이 사람이...엄청나게 오기 시작하는데 솔직히 별로 긴장하진 않았다

     시작하기 10분전부터 안내데스크에서 인터뷰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리...

     자료를 가져가시라고 안내하랴, 인터뷰하랴, 인사하랴...

     그러니 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 내 얼굴을 보고 많은 분들이 웃더라

     '아니, 저 처자는...아까 표 팔던 그 처자?'

     '아니, 감독이 여자였어?'

     술렁술렁...하는 와중에 씩씩하게 무대 앞으로 가서 인사를 꾸벅하고 나니

     대화를 하러 온게 아니라 싸우러 온게 아닌가 싶을 만큼 오기가 솟더라는...

     들이대보시오, 나도 힘껏 들이대겠소, 라는 심정이었다고 하면 물론 오바다 ^^

     관객 중 한 분이 '그래서 이런 영화를 틀고나서 어쩌자는 것인가'와 비슷한

     '더 조직하고 더 싸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몹시 원론적이고 투쟁적인 의견을 여러 차례 혼자 제시하셨다

     물론 동감하고 좋은 지적이셨지만 다른 분에게도 기회를 좀 주셨으면 좋겠다

     영화가...혁명을 완성하기는 커녕 일으키기도 힘들다는 걸 조금은 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영화, 그 자체가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나

     그걸 보는 사람들이나 '현실- 인식- 실천' 일것이다

     보고, 깨닫고, 움직여야한다

     거기에 대해 나에게 정답을 요구한다면

     '같이 찾아봅시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열라 찾아보고 공부하는 것 말고 뭘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여성들과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여러 차례 박수를 보내주시고

     같이 웃어주시고 좋은 기를 많이 많이 보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울산, 이 곳에서 마이크를 잡아보다니...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그렇게 오바를 잔뜩해서 그랬나, 체하고 탈나서 요며칠 죽다 살아난다

    

    (2006. 6. 8. 울산상영회에서 - 울산노동뉴스)

   


18. KTX 승무원들 만나러 갔고

     그 전에 진보넷 블로거 리우스가 다리를 놔줘서 연락이 가능했다

     자세한 소식은 여기로 클릭, 그리고 여기도 클릭

 

 

19. 며칠 전, 기륭조합원들이 만든 카페를 발견했다

     내 전화번호와 불타는 필름 블로그 등을 방명록에 올렸다

     모 감독은 문자를 보낸 지 한참되었는데 연락이 닿지 않고

     6월 안으로

     상영회를 비롯해서 투쟁기금 전달하는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나는 초조했다

     24일날 구로에서 열사문화제가 열리는데

     그 때 상영도 하고 기금도 전달하면 참 좋겠다고 혼자 발을 동동 굴렀다

     11일부터 온라인 상영과 다운로드 서비스가 가능해졌고

     그래서 다시 그 카페에 온라인으로라도 보시라고 글을 남겼다

     19일(월) 오늘, 기륭에서 전화가 왔다

     23일(금) 저녁에 기륭 정문 앞에서 집회를 하니까

     그 때 만나면 되겠다고 한다, 상영은 다음에 해야될 것 같다고...

     휴우...일단 마무리가 되어서 개운하다

     23일까지만 조금 더 애써보자

 

 

20. 6월 23일 기륭 집중연대집회 다녀옴

     관련글-씩씩한 우리

     은정이가 춘천에 가냐고 문자로 물어왔는데 못간다

     일욜날 향촌 촬영이 있고, 더 이상 지방 돌아다니는 일은 못할 듯

     건강이...계속 좋지 않은 상황

 

 

21. 원주 민예총과 마산과 성공회대학에선 상영회를 어떻게 진행했을까

     아무런 언급이 없어서 결과가 궁금하다

     청주에서 진행한 두 번의 상영회도

     대전과 부산에서 '서울독립영화제 순회상영회' 에 포함되어 상영했던 것도

     최근 춘천과 고한에서 상영했던 것도

     누군가 간략하게라도 후기를 올려주면 좋겠는데...

 

 

22. 6월 30일 신촌 '토즈'에서 열린 상영회는

     사춘기회복 프로젝트라는 네이버 동호회에서 마련했다

     나는 9시10분에 건물앞에 도착했고

     상영장소에 가서 문에 귀를 대보니 여성농민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8시 정도에 시작한 듯...나중에 사회자가 말해줬는데

     회원들이 좀 더 모일 때까지 기다리다가 시작이 늦어졌다고 한다

     암튼 그래서...들락날락하면 상영에 방해가 되니까

     화장실에도 가고 담배도 펴야했던 나는 그냥 복도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영화가 다 끝나고 들어가보니 관객은 14명인가, 그랬고

     그 방을 예약하면서 약속한 시간이 딱 5분남은 상황이어서 뒤풀이장소로 옮겼다

 

     자세한 이야기는, 팀블로그 후기에서

    

    

2006/06/24 22:45 2006/06/24 2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