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from 돌속에갇힌말 2007/11/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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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월, 구로항쟁 2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

 

대선을 앞둔 현재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후보들은 당선 이후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괴롭고, 남은 후보들 가운데서도 표를 주고 싶은 사람이 없다. 후보 단일화는 말도 안되고, 그렇다고 선거를 무시할 수는 없고 먼 곳에 있는 나도 답답한데 다들 얼마나 속을 끓이고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몇 몇 뜻있는 분들이 20년전 대통령 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구로항쟁을 되짚어보는 일은, 87년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선에 관해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그 행사에서 [돌 속에 갇힌 말]을 30-40분 분량으로 재편집해서 상영하고 싶다는 것과 행사에 필요한 자금마련을 위해 홍보용 시디를 제작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다.

도난사건을 매듭짓는 과정에 있다보니 결론을 내리는 데 며칠 시간이 필요했다. 결론은, 행사를 준비하게된 배경에 대해 공감하지만 재편집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사장에서는 이 분들이 취합한 자료테잎으로 만든 다른 영상물이 활용될 것이다.

 

[돌속]에 넣은 당시 자료화면들은 구로항쟁 동지회에서 제작한 테잎에서 주로 발췌했으니 어설픈 다큐멘터리를 재편집하는 것보다는 원래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행사는 날짜와 장소가 확정되면 다시 공지하기로 하고...

 

 


연락을 주신 분은 몇 년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셔서 영화에도 출연했고, 중요한 자료테잎을 건네주셨던 분이기도 해서 이번 기회에 나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구로항쟁 동지회'는 92년 이후 완전히 해소된 모임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그 이름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직접 선거에 참여할 수도 없고 대선에 관한 영상활동도 할 수 없는 지금 이미 만들어진 영화를 가지고 이런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면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패배감이나 좌절감을 조금이라도 덜수 있고 여전히 해답이 나오지 않은 몇 가지 의혹의 실마리를 푸는 기회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참여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을까.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걱정되는 세가지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준비하시는 분들과 내가 직접 만나서 의논할 수 없는 상황인 점, 행사의 취지에 맞게 재구성한 영상물에 출연자들의 이름과 얼굴이 그대로 노출될 경우 애초의 촬영의도와 다른 재사용에 관해 초상권을 비롯한 법적 분쟁 가능성이 있다는 점, 이 영상을 행사준비를 위한 모금활동에 사용할 경우 곤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걱정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이메일을 보내신 분의 신념과 대선을 바라보는 의견을 신뢰하고 공감하면서도 발생가능한 모든 문제를 완전히 외면할 수 있을만큼 선뜻 참여할 수가 없었다. 나는 뭘 두려워하는 걸까.

 

두려운 건 없다. 어느 분이 초상권을 문제삼아 법적 대응을 한다면 옳고 그름을 가려 그 댓가를 치르면 된다. 이 영상으로 돈을 모은 것을 문제삼는다면 수익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면 된다. 그렇다면 뭘 걱정하는건가. 이게 참 설명하기 어렵다. 행사가 끝난 다음에야 그것이 단지 노파심이었는지 아니었는지가 확실해질 듯 하다.

지나치게 소심하다 싶으면서도 현재 내 마음은 그렇다.

 

당연히 내가 힘을 보태리라고 믿었을 그 분께 죄송하고 이런 일에 마땅히 활용되야할 영화인데 잘못 판단한 건 아닌지 마음이 편치 않다. [돌 속에 갇힌 말]이 내 것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고, 영화라는 것이 감독 개인의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 감독이어야한다는 건 참 답답한 일이다. 마음이 한없이 무겁다.

 

 

 

 

2007/11/20 11:49 2007/11/20 1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