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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다

해미님의 [하늘이 원망스럽다.] 에 관련된 글.

9월 30일은 진작부터 하이텍알씨디 500인 동조단식에 참가하기로 한 날이었다.

 

5:20

휴대폰 알람이 울리다. 깨어나서 알람을 멎게 하고, 잠시 생각한다. 겨우 2시간 잤네. 어차피 사무실에 가서 일처리를 하고 가야 하니까 8시에 맞출 수가 없잖아. 1시간만 더 자자-

 

8:20

서울역에서 계단을 오르다가 임두혁 동지를 만났다. 어, 요즘은 집에서 출퇴근도 하는 거요, 했더니, 오며가며 시간이 맞으면 집에 들린다고 했다. 그는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산다. 근로복지공단에 가야 하는데 사무실에 일이 있어 늦게 생겼다고 했더니, 자기도 지금 거기에 가는 중인데 늦었다고 한다. 서울역 지하에서 우리는 반대편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10:20

비가 오면 어차피 우산도 별 소용이 없을거야, 가방은 어쩌지? 아침에 그러면서 집을 나섰는데, 신길역에서 내리자마자 곧 후회를 했다. 비가 쏟아지고 있다. 가방 속에서 비상용으로 준비한 일회용 비옷을 꺼낸다. 가방은 가슴팍에 가로질러 걸치고 비옷을 그 위에 입었다. 뒤뚱거리며 근로복지공단 앞으로 갔다.

 


 

아침에 국회에서 일인시위를 하기로 했던 노상규 국장이 벌써 끝내고 온 듯, 맨 먼저 보였다.

김영준 동지와 김정곤 동지가 나란히 반색을 했다.

아침에 만났던 임두혁 동지가 그 뒤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고

두꺼비인지 전쥐인지 하는 오래된 동지가 거기에 있었다.

"보고서도 다 썼다매?"

"어, 어떻게 아세요?"

"뭐, 블로그에 떠벌여 놨더구만."

"헤헤..."

 

노국장이 일단 등록부터 하라고 했다.

윗 사진의 오른편에 놓인 천막 아래로 가서 단식농성단에게 목례를 하고 내 이름과 소속과 연락처를 적었다.

노동자 건강권 쟁취! 노동해방 쟁취! 까만 바탕에 분홍색 글씨가 새겨진 손수건 하나, 호루라기 하나, 그리고 산재 승인 쟁취! 노동자 건강권 쟁취!가 쓰인 버튼 하나가 선물이자 기념품이자 투쟁물품으로 주어졌다. 그리고 500인 동조단식 선언문과 프로그램 안내문을 받았다.

 

대오의 맨 뒤에 서서 연설을 들었다. 듣다 보니 연설이 아니라 강연이었다. 비오는 날 수백의 대오가 길바닥에 앉아서 숙연하게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목숨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와 근로복지공단의 반노동자적인 행태에 대해서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가며 연사이자 강사는 열변을 토했다. 그는 금속연맹의 산안국장이라고 했다. 어디 하나 틀린 말이 없었다(아, 하나 틀린 거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몰래카메라를 알게 된 것은 주차된 차를 옮겨달라고 해서 나갔다가 오는 길이었는데 그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비는 마구 쏟아지는데, 빗물이 곧 개천을 이루어 물결치며 가는데, 서서 오롯이 그의 얘기를 끄덕이며 들었고 맘껏 박수를 쳤다.

 

새로운 만장이 들어왔고, 그 만장들을 뒤로 하고서 45일째 단식을 계속한 동지들의 연설을 들었다. 그렇게 긴 기간 단식을 해놓고서도 연설에는 힘이 있고 의기가 서렸다. 사진을 찍기도 미안해서 그냥 가만히 얘기만 들었다.

 


 

단식을 그날로 끝내기로 했다는 것은 어쨋거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1:30

서 있기도 힘이 들다. 자리를 앞으로 옮겼다. 김진경 위원장을 만나서 그 옆에 철퍼덕 앉았다. 비옷 아래에서 가방이 비에 젖는 것이 자꾸 신경에 거슬린다. 손수건을 펼쳐 가방 위에 얹어 두었지만 금세 물이 흥건하다. 아침 8시부터 나와 있던 권 부위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더 앞쪽 자리에 있다고 했다. 그리로 가는 길에 천막 아래로 가서 비옷을 하나 얻었다. 그 비옷으로 가방을 둘러싸고 어깨에 걸쳤다. 비장미가 넘치는 투쟁의 현장에서 겨우 가방 속의 책이 빗물에 젖는게 신경쓰이다니, 쓴웃음이 나왔다.

 

만장들을 앞세우고 근로복지공단을 에워싸기로 한 모양이다. 박준의 깃발가를 들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줄로 늘어섰다. 호루라기를 불며 영등포 로타리 쪽으로 나가서 근로복지공단 뒤로 줄지어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한차례 되풀이했다.

 


 

우리가 움직이면 경찰도 덩달아 바삐 움직인다. 이 놈들이 그날 오후에 우리 대오들을 덮치고 잡아갈 줄 짐작이야 했지만 미리 칠 수도 없고 그렇게 덮칠 힘도 나 혼자에게는 없구나, 하는 생각을 실없이 했었다. 경찰들의 비옷에는 저렇게 투명모자가 달렸더라.

 

선채로 잠시 쉬었다. 권 부위원장이 내 사진을 하나 찍어주다가 킥킥 웃었다. 내 꼬락서니가 웃기기는 했나 보다.

 


 

나중에 전주희 동지가 지나가다가 역시 킥킥 웃으면서, 우비소녀같다고 했다.

 

늘어선 동지들을 15명씩 끊어서 조를 편성했다고 한다. 우리는 9조였다. 선장을 뽑고, 조이름과 조구호, 퍼포먼스 준비를 하라고 누군가 안내를 했다. 모두 모여서 인사부터 하기로 한다. 안재원 동지가 나더러 선장을 하라고 했다. 대단히 죄송하게도 오후에 저는 광주로 출장가야 할 처지입니다, 하고 마다했다. 빗소리 때문에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는다. 누군가 재능교사노조의 황창훈 동지를 추천했다. 

 

모여보니 23명이었다. 가능한 한 좁게 밀착해서 모여 인사들을 나누었다. 재능교사노조 3명, 서울통신산업비정규직노조 3명,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 3명(그 3명의 여성조합원들은 어째 그렇게 착하고 순하게 생겼던지, 저런 사람들을 죽도록 괴롭히고 있는 인간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노동자의 힘 2명, 나와 권수정 부위원장, 서울지하철 노동자(기관사), 도시철도노조 조합원 3명, 산재노협(?) 사무차장, 대강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랬다. 와, 공공연맹이 참 많네요, 황 동지가 말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500인 동조단식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조직해보자고 28일 중집위에서도 떠들고 문자메시지도 보내고 했지만 연맹의 조직담당자에게는 참가하겠다는 연락 하나 없었는데 와서 보니 저마다 알아서들 투쟁에 참가하고 있었다. 나도 한 때 그랬었지. 드러나지 않게 어디든 있어야 할 곳을 찾아가서 작지만 자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조이름을 정했다. 산재박살이든 용석퇴진조로 하자고 제안했더니, 산재박살은 내가 생각해도 의미가 모호했고, 다들 (방)용석퇴진조가 좋겠다고 했다. 이어, 윤순제 동지가 구호를 제안했다. 용석이를 퇴진시켜 건강하게 살아보자! 모두 웃었다. 약하다 약해, 누군가 말했지만 비도 오고 새로운 제안도 없고, 그냥 통과. 다음은 퍼포먼스 준비를 할 차례이다.

 

밥 먹고 합시다. 아니, 물 마시고 합시다. 누군가 말했다. 좀 쉬기로 했다. 비는 아랑곳없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서 선채로 얘기들을 나눈다. 임두혁 동지가 지나다가 안재원동지들 을 보고 멈췄다. 그 옆에서 내가 말을 걸었다.

-금속은 임원들이 다 왔습디다?

=2시면 다 들어갈 거요. 중집회의가 있어서. 나는 이거 담당이라서 그냥 남고...

-오, 담당이었어요? 몰랐네.^^

=담당이라고 뭐 한 게 있어야지.

-우리 연맹은 담당도 아예 없는데요. 내년 가야 노동안전보건위원회도 만들고 담당임원도 두고 할 계획인데...

=그래도 공공은 별로 죽지는 않잖아요. 우리는 죽으니까!

-......

둘 사이에 이런 얘기가 이어졌다. 작년만 하더라도 그는 주말이면 대전에 와서 주중의 고단함을 잊고 주말농장을 가꾸며 가족과 함께 보내곤 했다. 그의 딸 한결이는 가문비보다 한 학년 아래였고, 같은 곳에서 성악을 배우기도 했다. 요즘 주말은 어떠냐고 했더니, 가족이 파괴되는 것 같다고 했다. 주말조차 아이와 함께 보내질 못하니 소통도 되지 않고... 동병상린이라, 뭐라 할 말이 따로 없었다. 비는 추적추적 계속 내리고.

 

1:20

권부위원장은 원주 상애원 공동대책위원회에 참가해야 했고, 나는 지역공공서비스노조 연석회의에서 산별노조와 관련된 교육/토론을 하러 광주로 가야 했다. 용석퇴진조의 동지들이 퍼포먼스를 준비하기 위해서 다시 모였을 때, 우리는 사정을 얘기하고 미안해하며 자리를 떴다. 정말, 미안했다.

 

해미님이 근처에 있으면 잠깐 만나려고 전화를 했다. 일 끝내고 지금 오는 중이라고 했다. 조만간 술이나 한잔 하자고, 기약없는 말을 남긴 채, 근로복지공단 앞을 떠났다.

 

기차에 탔다. 가방 속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어 옆 좌석과 간이탁자 위에 놓았다. 가장자리는 모든 게 젖었다. 어제 사서, 오늘 차 안에서 읽겠다고 갖고 온, 공선옥의 유랑가족이 헌책이 되었다. 광주까지 가는 동안에 대강 마르겠지. 늦게 도착해서 미처 읽지 못했던 500인 동조단식 선언문을 한번 읽고 곧 잠에 빠져들었다. 동지들은 아직도 비에 젖고 있는데-

 

5:00

전화가 와서 잠에서 깼다. 광주에서 온 전화, 제 시간에 오고 있는지 묻는 전화이다.

전화를 끊고 보니 문자메시지 하나 와 있었다.

"근로복지공단 규탄집회 중

 공단내 경찰에 의해 고립당

 했던 조합원 58명 연행! 현재

 분리이송중! 9/30 4:56P"

 

나쁜 놈! 방용석!!

더 나쁜 놈!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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