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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

장항에 다녀왔다. 밤에 가서 밤에 왔다. 22년 전 여름 나는 혼자서 장항에 간 적이 있다. 군산에서 바지선 비슷한 큰 배를 타고 금강 하구를 가로질러 장항으로 건너던 장면이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때만 하더라도 바다는 나에게 짜릿한 환희와 감격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넓다란 물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던 군산과 장항의 풍경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뇌리에 남았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진안으로, 진안에서 전주와 군산을 들르고, 장항을 지나 홍성으로, 홍성에서 다시 태안을 거쳐 몽산포와 연포 해수욕장에서 얼마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시 청주와 제천을 지나 청량리로 이르는 한 달쯤의 여정을 다 끝냈을 때, 나는 가을과 겨울에 내가 소진하고야 말 에너지를 한껏 충전하고 있었다. 그해 가을, 박정희 정권이 만든 학도호국단은 해체되기 시작했고, 학생회가 부활했다. 그 후로 나는 군산에도 여러번 가고 서천에도 여러번 갔지만 장항에 간 적은 없다. 오늘, 잠깐이라도 22년 전의 장항을 추억하며 밤바다라도 가보고 싶었지만, 바다 냄새 대신에 망자에게 바치는 향내음을 안주 삼아 소주 몇잔 나누고 서둘러 돌아 왔다. 언제나 습관처럼 되풀이하는 일이다. 낯선 곳이든 추억이 서린 곳이든, 거기에 간 목적(이를테면, 수련회, 교육, 조문...)에만 충실하고 곧바로 되돌아와야 하는 내 처지가 애처롭다고, 오랜만에 그리고 새삼스레, 유난을 떨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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