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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가고 또 온다



12월은 참 무모하게 살았다.

곧 끝날테니까 내친 김에 달려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쉴틈없이 몸과 마음을 혹사했다.

사람과 조직, 일과 회의, 술과 술잔 사이를 넘나들면서

마치 시한부 인생처럼 살았다.

그러는 내 마음을 누구에겐가는 들켜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휴가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몸살이 왔다.

몇년에 한번씩 앓는 몸살처럼 크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 끝까지 화산처럼 뜨거워졌고

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며 어제와 오늘 조용히 집에서 쉬었다.

 

장보러 간 것,

컴퓨터가 말썽을 부려서 전자상가에 나간 것,

가문비와 DVD 대여점에 들렀다가 동네 한바귀 산책한 것,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 나갔다가 매진되어 돌아온 것,

그런 소소한 일상 말고는

때가 되면 아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밥을 하고 반찬을 챙기고 설거지를 하고

틈틈이 아이들의 간식을 마련하는 것이 전부였다.

 

오랜만에 참으로 평화스런 연휴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어쩌면 나 혼자만의 것인 듯하다.

 

11월의 총파업 총궐기 투쟁 이후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집에 가지도 못하고 있는 한 동지가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글을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더니 신호만 울리다가 끊어진다.

11월의 마지막 날에 구속된 또다른 한 동지는

지금 감옥에서 새해를 맞고 있다.

 

위에 걸린 사진 속에는 파란 하늘이 있고 까치집이 오손도손

동네를 이루고 배경에는 구름이 살포시 흐르고 겨울나무끼리

서로 손을 내밀며 정겹게 사는 듯이 보이지만 저 사진 아래

펼쳐진 광경은 강남구청 앞 집회 장면이다.

서울정화환경노조 한성지부(이제는 공공서비스노조)의

파업투쟁이 100일째를 맞던 날, 12월 28일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날씨 탓에 손발이 얼고 입이 얼어 구호도 헛나올

지경이었다. 그 때 올려다 본 하늘이 사진 속 풍경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이 땅위에서 평화란 아직도 사치이고,

오히려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행복감이 역설로 존재한다.

 

그래서 

올해도 별반 새로울 것 없는 새해를 예감하며

2007년 1월 1일을 맞는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세상에 대해 훨씬 더 큰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걸머지고 가는 모든 동지들에게

감사한다, 꿈꾸는대로 다 이루시라, 하는 말 한마디는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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