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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짐을 치우다] 에 관련된 글.

 

과기노조 편집위원회에서 생활글이나 하나 쓰라고 해서

차일피일하다가 오늘에야 보낸 글...

 





 

2005년 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나의 주된 근무지는 서울 뚝섬에 있는 공공연맹 사무실이었다. 새벽 5-6시에 휴대폰의 알람에 놀라 잠에서 깨면 헐레벌떡 대전역으로 달려가고,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여 전철 4호선과 2호선을 번갈아 타고 뚝섬역 근처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하는 데는 보통 2시간 10분쯤 걸렸다. 수련회다, 회의다, 뒷풀이다 해서 찜질방 신세를 진 적도 적지 않았지만, 무척 많은 시간이 길 위에서 흘러갔고, 2년이라는 한정된 기간이기에 나는 그것을 새로운 경험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노동조합이라는 데가 제대로 일을 하려면 끝이 없긴 하지만 연맹은 촌뜨기 간부에게 더욱 놀라운 곳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회의, 회의마다 준비되어 쏟아지는 각종 회의 자료와 보고서, 사시사철 거의 날마다 벌어지는 현장의 투쟁들, 크고 작은 집회를 조직하고 진행하는 일들, 거기다가 간담회, 수련회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이거 참 인간적으로 살기 애당초 틀린 곳이구나, 하는 것이 처음 몇 달간의 느낌이었다. 파견된 임원을 포함하여 서른 대여섯 명의 상근 간부들이 저마다 맡은 역할과 그때그때 주어지는 임무에 따라 바삐 움직였고, 다함께 모여 술이나 한잔 하자는 건 무모한 바람이었다.


나는 나대로 피곤했다. 주말에라도 가사노동에 좀 충실하려다 보면, 일주일치의 장을 보고 식구들이 먹을 밑반찬과 간식거리들을 마련하는 것이 일요일 늦은 밤까지의 일과로 고정되다시피 했으니, 월요일마다 출근 전에 이미 나는 녹초가 되었다. 회의든 집회든 틈만 나면 잠이 쏟아졌고, 심지어는 교육훈련 도중에 요가를 하다가 잠시 누운 사이에 코를 골기도 했으니까. 함께 일하는 간부(활동가)들이 바쁘더라도 자투리 시간에 만나서 힘들고 어려운 사정들을 파악하고 챙기는 것이 내 임무의 하나였는데, 지나고 보니 동지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많이 부족했다.


그러면서 참 많이 배웠고, 깨달았고, 반성했다. 맡은 일은 몸이 부서지더라도 해치우는 동지들이 있지만, 그 동지들 중에는 그렇게 일하면서 얻은 남모를 몸과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이가 있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자고 싸우면서 그 자신이 사는 게 힘들면 되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초보 활동가에게는 상당 기간의 가르침과 훈련이 필요한데도 무조건 일부터 맡기고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급하다고 서두르다 보면 아차 하는 사이에 논의는 일부가 독점하고 일은 몇몇에게만 집중되기도 한다. 민주적인 조직운영은 잘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조직을 끊임없는 실천으로 담금질하고 무시로 쏟아지는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감당할 때 가능하다. 자신의 원칙에 맞지 않기에 분명히 반대 의견을 피력한 사안에 대해 결정되자마자 앞장서서 실천하는 동지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고 고마웠다. 회의에서는 묵묵히 듣기만 하지만 일상에서는 온몸을 던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동지들도 많이 보았다. 긴급하게 집회 지침이 떨어지면 즉시 밥숟가락 내던지고 국회 앞이며 광화문으로 투쟁의 현장으로 달려오던 동지들은 감동이었다. 노동조합의 힘이 많이 위축되고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적 징후들에 모두가 속이 타들어 가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투쟁은 아름답고 연대는 희망임을 거듭 확인하였다.


물론, 말 많고 행동은 뒷전이지만 그러한 자신에 대해 일체의 성찰이나 반성도 없이 세월만 축내고 있는 사람들도 제법 많이 보았다. 나를 채찍질하는 반면교사로 삼을 뿐이다. 2007년 2월 8일, 연맹 사무실에 2년간 쌓아왔던 내 짐들을 모두 치웠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아마도 꽤 오래 그 공간을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서울 뚝섬과 대전 유성은 나에게 동일한 생활과 투쟁의 공간이었으므로. 그리고 이전의 경험에서도 그랬지만, 연맹에서 새로이 내 어깨 위에 들어선 짐들 또한, 노동자 민중이 살맛나는 세상이 올 때까지는 내 맘대로 벗어던질 수 없다는 점에서, 노동조합 간부로 처음 시작하던 때의 설레임과 겸허함으로 새 봄을 기다리는 내 마음가짐을 가다듬는다. (2007.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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