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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흔적

지금은 거의 죽어버린 게시판에서

9년전에 과기노조 상근자로 처음 나설 때의 소감을

다시 찾아서 읽어본다.

내심으로는, 그리고 아내와 약속하기로도,

딱 1년만 일하고 실험실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지만,

글 속에서는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하고

마치 오늘의 나를 예고하고 있었던 듯도 하다.-_-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지만,

되돌아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사치일까).

2000년 10월에 4대 위원장으로서 임기를 끝냈을 때도

이 글을 찾아읽으며 내 삶을 돌아다본 적이 있는데,

다시 이러고 있는 것은

지금도 분명 내 인생의 중요한 한 고비라는 것이겠지.

암튼, 

여전히 어리고 여리고 두려움이 많은 나,

처음의 그 마음을 기억하며

매사 의지로 낙관하면서 살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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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결국, 과기노조 본부로 가다.
작성일  1995년 09월 12일 08시 43분 45초
 
오랜 번민과 갈등 끝에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실험실을 떠나 있기로 하였습니다.
서로 열심히 살자,
12년 선배이자 팀장이기도 한
이 박사는 그렇게 착잡한 표정으로
나를 놓아 주었습니다.
하긴, 더이상 잡고자 해 봤댔자
서로에게 더욱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연구자로서의 나의 꿈, 나의 장래는
일단 저만치 멀어져 간 셈입니다.
그저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언제나 변함없이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의 뜻이었다면
참으로 큰 변화와 시련을 동시에
나는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나는
일찍 실험실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하는 저마다의 일들이
참된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고 난 다음에야
적어도 그런 버팀목은 세우고 난 다음에야
누구든지 제자리에 돌아감이 불편하지 않고
누구든지 그의 복귀를 기꺼워할 것이니,
내가 즐겁게 돌아갈 날은 정말 언제일까요?
그 날이 어서 오기를
함께 빌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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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관련글이 하나 달렸는데,

당시 참세상 대표로 있던 김아무개 동지의 것이다.

그는, 84년, 학도호국단을 해체하고 학생회를 부활시킨

공대의 주역 중의 하나였고, 그 때문에 제적되었지, 아마.

 

 

 



[바람] 다시 실험실에서...
작성일  1995년 09월 12일 11시 23분 34초
 
아마도 자연/공학계열을 전공한 사람들이 가지는 아련한 꿈하나가 있죠.
하얀 가운을 입고 무언가를 골똘히 연구하는 모습.저 또한 그런 생활이 좋아 공대
에 들어갔지만 지금은 이미 멀어져도 한참 멀어진 느낌입니다.

 

누가 저에게 전공이 무어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제어계측이라고 하지요.
그러면 그사람왈.
"전공대로군요.."라고 현재 하는 일과 연관시키려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주장하지요. 학창시절 전공은 사회과학이라고. 현재 하는일은
사회주특기라고.사회에 나와서 배운 풍월이라고.

 

아마도 95년 하반기는 돌아갈 수도 있는 길을 포기한 해일 것입니다. 저에게.
쉽게 말하면 졸업할 수 있는 마지막기회를 포기한 것이죠. 포기를 자의반타의반
결정했을 때 무언가 아쉬움이 남더군요. 아마도 가문비님의 느낌이 저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경우는 다르지만......

 

듣기에 상근자가 되신 것같은데.아무쪼록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대안의 작은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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