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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김남주] 한 사람의 죽음으로

  • 등록일
    2005/05/28 09:08
  • 수정일
    2005/05/28 09:08
*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또 5월 27일이다] 에 관련된 글.

한사람의 죽음으로 - 박관현 동지에게 혼자서 당신이 단식을 시작하자 물 한모금 소금 몇 알로 사흘을 굶고 열흘을 버티자 어떤 이들은 당신을 웃었습니다 배고픈 저만 서럽제 그러며 밤으로 끌려가 어딘가로 끌려가 만신창이 상철도 당신이 돌아오자 돌아와 앓은 소리 끙끙으로 사동을 채우자 어떤 이들은 당신을 웃었습니다 맞은 저만 아프제 그러며 물 한모금 소금 몇 알로 끼니를 때우고 스무 날 마흔 날을 참다가 심근경색으로 당신이 숨을 거두자 어떤 이들은 당신을 웃었습니다 죽은 저만 불쌍하제 그러며 그러나 나는 보았습니다 그들이 냉수 한 사발로 타는 목 축이고 남은 물 그 물 손가락으로 찍어 세수하고 세수한 물 그 물로 양치질하고 여름이면 철창 밖으로 고무신을 내밀어 빗물을 받아 갈증을 풀더 그들이 당신의 죽음 그 덕으로 철철 넘치는 대야물에 세수하고 따뜻한 물로 십년 묵은 때까지 벗기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일년 삼백예순 날 햇살 한 줄기 제대로 못 구경하던 그들이 푸르고 푸른 오월의 하늘 아래서 입이 째지도록 하품을 하고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돋친듯 기지개를 켜는 것을 나는 또한 보았습니다 주면 주는 대로 먹는게 제 분수라 여기고 때리면 때린 대로 맞는 게 제 분수라 여기고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었던 그들이 간수한테 대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말을 한다고 항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식이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야단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섞은 배추가 싱싱한 상추로 둔갑하여 그들의 식단에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박관현 동지여 우스운 당신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만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싸우는 인간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 솔직히 말하자 김남주 신작시집<풀빛시선>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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