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시/나희덕] 아홉번째 파도

  • 등록일
    2020/01/09 13:35
  • 수정일
    2020/01/09 13:35

아홉번째 파도

나희덕


오늘 또 한 사람의 죽음이 여기 닿았다
바다 저편에서 밀려온 유리병 편지

2012년 12월 31일
유리병 편지는 계속되는 波高를 이렇게 전한다

42피트 …………… 쌍용자동차
75피트 …………… 현대자동차
462피트 …………… 영남대의료원
593피트 …………… 유성
1,545피트 …………… YTN
1,837피트 …………… 재능교육
2,161피트 …………… 콜트-콜텍
2,870피트 …………… 코오롱유화

부서진 돛대 끝에 매달려 보낸
수많은 낮과 밤, 그리고 계절들에 대하여
망루에서, 광장에서, 천막에서, 송전탑에서, 나부끼는 손들에 대하여
떠난 자는 다시 공장으로, 공장으로,
남은 자는 다시 광장으로, 광장으로, 떠밀려가는 등에 대하여
밀려나고 밀려나 더 물러설 곳 없는 발들에 대하여
15만 4,000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電線 또는 戰線에 대하여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불빛에 대하여
사나운 짐승의 아가리처럼
끝없이 다른 파도를 몰고 오는 파도에 대하여
결국 산 자와 죽은 자로 두동강 내는 아홉번째 파도에 대하여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젖은 종이들, 부서진 문장들

그들의 표류 앞에 나의 유랑은 덧없고
그들의 환멸 앞에 나의 환영은 부끄럽기만 한 것

더 이상 번개를 통과시킬 수 없는
낡은 피뢰침 하나가 해변에 우두커니 서 있다


나희덕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중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