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18일, 어느새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처참했던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
4번째를 맞는 군산대명동 화재참사 추모식은 군산대학교에서 열렸고 그동안 전북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해온 실무자들은 물론 남성자원활동가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다소 어색한듯 쑥쓰럽게 우리와 함께 동행해준 사람이 있다.
성매매업소를 탈출해 지금은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언니들이 어려운 발걸음으로 이 날을 함께한 것이다.
조촐하게 준비된 공연들을 묵묵하게 지켜보던 언니는 80년대 민중가요에 율동을 선보이는 대학생들의 문선공연을 보며“내 나이 또래 애들이 저런거 하면서 지내는 지 몰랐어요. 정말 쇼킹하네요."라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말한다.
이 후 연극이 공연되자 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포주와 성매매피해여성들을 풍자한 배우들의 대사와 과장된 몸짓이 때로는 너무나 선정적인 모습에, 때로는 너무나 도식화된 피해자의 모습에, 때로는 너무나 적나라한 모습에, 그리고는 너무 가슴아픈 모습을, 과연 어렵게 이곳까지 온 언니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건가? 내가 "연극은 어땠어?”라고 묻자 언니는 웃으며 “너무 적나라해네요” 라고 대답한다. 가장 깊은 곳의 상처이기에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일 수 있는데 환한 대낮에 다수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까밝혀지게 되어 언니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성매매업소에서 탈출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회구성원으로써 노력하고 있는 이곳 쉼터의 언니들은 아마 나의 작은 걱정을 넘어 더 강인한 용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 용기는 더 이상 상처를 곪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가두었던 울타리를 벗어나 도전과 기회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곪아터진 상처를 감당하는 언니들은 어떤가?
성매매 방지법 시행을 앞두고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변화가 가능한 것인가?
생존권을 당당하게 부르짖는 범죄자
추모식을 마치고 성매매상담센터에 도착해 12명의 활동가들과 송편과 소식지 등 준비물품을 챙겨들었다. 1년이 넘도록 일주일에 두번 정기적으로 성매매집결지역의 언니들을 찾아 현장상담을 진행했지만 오늘은 성매매방지법 시행을 앞두고 특별한 방침을 계획했다.
성매매방지법 발효 후에는 경찰단속이 강화되고, 언니들이 언제든 상담센터를 찾아오면 보호와 자활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해야만 한다. 단속 과정에서도 언니들이 쉽게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례가 빈번해왔고, 강화된 단속 못지않게 보호, 자활 서비스에대한 정보를 언니들에게 충분히 알려 언니들이 언제라도 성매매업소에서 안심하고 벗어날 수 있게하자는 취지였다.
우리의 이러한 강경한 태도에 포주들의 방해가 있을 수 있다는 예상으로 여느 때와는 다르게 더 다부진 각오로 나섰다.
현장으로 도착한 후 한 집, 한 집 돌아가며 방문하자 여느 때는 길어야 5분이었던 상담이 이날은 각 상담원이 한명의 언니와 10분까지의 상담이 진행됐다.
“언니, 23일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면 이전처럼 일하기 힘들어져요.”
“그럼 어떻게?”, “나 도망갈까?”, “ 상담소도 어차피 업주랑 다 알고 지내는 사이 아니야, 경찰도 그렇고”
정보에서 차단된 언니들의 생활환경 만큼 이날 따라 언니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많은 업소들의 방문을 앞두고 있기때문에 당장에 닥칠 수도 있는 문제부터, 앞으로의 보호와 지원에 관한 내용까지 많은 이야기를 단 10분으로 쏟아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업주가 욕을 하며 달려들었다.
"니 네가 뭔데 이러고 다녀", "공무 중이면 신분증 내놔봐.", "칼로 쑤셔 버리겠다.", "불 질러 버린다." 우리에게 윽박지르고 있는 이들은 바로 범죄자다. 성매매 영업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누가 이들을 당당하게 만들었을까?
현장방문은 상담센터 고유의 업무라는 설명을 해도 포주들의 욕설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기세에 경찰을 부르려 하자 그때서야 더 이상 사건을 확대시키지는 않으려 물러서는 눈치였다. 상황은 진정됐지만 이후 머리 안에 분노가 가셔지지 않았다. 그 분노는 사실, 포주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성매매방지법 효과는 사회변화에 달려
성매매방지법 시행을 앞두고, 각 언론사에서 취재를 한다. 업소의 실태나 피해사례들에 대해 꼭 하는 질문이 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이후 오히려 음성적 성매매가 판을 치지 않겠는가', '성폭력이 늘어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리고 '성산업 업주들의 생존권' 문제를 묻는다.
포주들은 더 나아가 경찰이나 담당 공무원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가정집으로 들어가서 계속 영업할 것이라고 협박을 하며 자신들의 생존권을 주장한다.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성매매피해여성들을 짓밟고 올라섰는지는 감춘 채 생존권을 거론하는 것이다.
성매매 현장은 폐쇄공간이다. 더군다나 성매매 업소는 더욱 폐쇄된 공간이다. 그 안에서 여성들은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약자다. 1-2평의 방안에 여성을 가두고 하룻밤에도 수 십번의 성매매를 강요하는 자들은 중형 외제차에 몇채씩의 건물을 가지고 있다. 범죄자의 주장을 소수자의 이야기로 , 범죄수익을 가진자들의 생존권을 말하는 분위기가 용납되는 것은 아직도 성매매가 범죄라는 인식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음성적 성매매나, 풍선효과가 문제라면, 지금의 성산업 업주들은 특별히 요주의 대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100년만에 성매매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적 전환을 예고하는 법이 시행되는 시점이다. 성매매방지법과 또한 성매매방지 종합대책 등은 성매매와 관련하여 전방위적인 대책을 가지고 있다. 일차적으로 성매매피해 여성지원, 알선 및 강요자 처벌 강화, 그리고 전 국민의 의식전환을 위한 예방교육 강화 등이 그것이다. 경찰조사과정에서 재판과정에서, 정책 담당자들과의 만남에서도 학인되지만 아직도 성매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용납되는 문화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하지도 특수하지도 않다.
그러나, 성매매가 범죄라는 인식과, 성매매의 폐해에 대한 인식이 밑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법과 정책과 우리의 인식은 이중적인 혼란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성매매방지법의 실효성은 단순히 성매매지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바로 성매매가 범죄라는 전사회적인 인식과, 이 성인신매매범죄의 근절을 위한 강력한 실천의지에 달려있다.
"성매매, 나부터 STOP!, 너에게 SPEAK OUT!"
전북성매매여성현장상담센터 "용감한여성들" 상담원 김지영씨 기고
간장 오타맨이...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