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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존재를 규정한다.

  • 등록일
    2005/01/28 23:59
  • 수정일
    2005/01/28 23:59
* 이 글은 미류님의 [붉은 사랑]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의식은 존재를 규정한다의 말처럼... 무수한 사랑 그리고 만남에 대한 이야기들... 순간에 대한 집착인지 모르겠지만 함께할때의 기쁨은 떨어지면서 잊혀짐의 슬픔으로 기억되는 것이 인간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추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마도 그 당시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랑도 마찬가지 인것 같다. 인간사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만남이라는 과정에서의 친근감이 때로는 신뢰로 때로는 사랑으로 번지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에서 당여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의식은 시간이라는 한정속에서 열정/기쁨/슬픔/고통 등 인간사의 기쁨에서 고통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내 어르신들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난 그렇다.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교육되고 훈련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게 한다는 말로 번지는 것은 아닌지... 나에게 있어 사랑은 정형화 되어져 있다. 순애보와 같은 사랑을 갈망하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 나에게 있어서 예전에도 그 이전에도 사랑은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감정은 늘 억제하여야할 기폭제였던 것이다. 감정이 생기면 이를 수습하게에 급급해야 했던 내 20대.... 그렇지만 이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내 생애에서 사랑은 고통을 야기시키는 연속이라는 기억의 조각이 있기 때문일까? 오늘 그냥 생각나는데로 내 정리되지 않은 것들.... 교육되어진 사랑의 이미지들에 대한 나의 환상이 깨어지는 날 나는 사랑이라는 의미에 대해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이라는 말은 나에게 있어 남들과 다르게 10대의 사춘기와 20대 열병을 알았던 이들과 다르게 작용한 것 같다. 난 이성간에 대한 사랑은 없지만 내가 동경해야될 사랑을 배웠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난 내 인식속 깊이 이성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이미화 되어있는 박재된 것이라 생각해 보았다. 블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횡수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이성간의 사랑은 분명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수단이라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그럴꺼구 앞으로도 그럴꺼다. 나에게 있어 혼자란 자유이며, 세상에 대한 사랑을 배워가는 생활이다. 난 혼자가 좋다. 무엇이든 할 수 있어서.... 이성간의 사랑은 나에게 있어서 귀찮음이며, 시간낭비라 난 아직도 사고하고 있다. 그래서 혼자 살기위한 연습에 충실하기 위한 노력들... 내가 필요한 가사노동들을 배워나가고 있다. 남들은 이후 늙으면 외롭다고 이야기 하지만 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교육된 이미지들의 충돌에서 사랑은 정형화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사랑은 다양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내면 깊숙히 들어 있는 것들은 드라마 그리고 사회라는 이미지들에 의해 다들 동일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은 사회 문화적으로 차등되지 않을까? 라는 가져본다. 사랑은 동일하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주체들의 행동들은 다양하지만 문화적 다양성과 사회라는 보이지 않는 교육적 이미지가 작동하는 것 같다. 사회적 분위기 또한 그렇구.... 간장 오타맨이... p.s 내가 말해도 뭔말인지 모르겠다. 그냥 손이 가는데로 써내려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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