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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밑바닥 노동자들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

  • 등록일
    2005/03/16 11:27
  • 수정일
    2005/03/16 11:27
* 이 글은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민주노총은 물리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노동운동이 귀족화되었다. 자본은 늘 떠들었다. 그러나 그 면면을 살펴보면 2조 2교대(일명 주야맞교대)의 잔업과 특근을 빼고 고임금 노동자로 선동하였다. 대공장과 중소사업장의 차이는 상여금과 일급에 차이일뿐이다. 다 같은 노동자들이다. 그래 상여금과 일급이 차이가 나다 보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노사정 합의의 덫이 아니던가? 어제 대대를 보면서 왜 이리도 부끄러운지... 투쟁하는 동지들의 모습이 한편 힘차게 느껴졌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만들어놓지 못하고 과거 동맹파업의 시기를 되뇌이며 왜 이렇게 노동운동이 맥아리 없어졌는지 한탄만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현장을 돌면서 투쟁을 조직하자 외치는 수많은 동지들이 있음을 잘 알면서도 일부러 외면하였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 그래 왜 정규직이 나서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덫에 스스로가 나서기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고용안정이라는 말에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정규직이거나 비정규직이거나 다 같은 노동자들이다. 엄밀히 말해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자본에 의해 조장된 말이다. 그 자본에게 타격이 가할 것이 언론의 왜곡과 날조로 노-노 갈등이라고 부추기고 있다. 사회적 교섭안은 밑바닥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관심거리가 되고 있을까? 아니다. 그들은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어떻게든 현장에서 살아 남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투쟁을 해보았자 신명이 나지 않는 판에... 술한잔의 취기에 돌아 개같은 세상이라고만 연거푸 말한다. 조합활동을 열심히 하였고, 세상의 주인이라 믿었던 과거 선배들은 그렇게 뒤로 돌아셨다. 그 뒤 돌아선 분들 그래 현 활동가들이 볼때는 낙오자라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난 다르다. 그분들은 운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부채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한때 투쟁을 희망으로 읽구며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채 빼앗긴 사람이기도 하다. 현장에 들어갈 수 조차 없어 노점상을 하거나 상업을 해서 목에 풀칠을 겨우하며 살아가는 이들... 그러나 지금 사태를 보면 그 분들이 되려 부럽다. 욕심이 없었기에 순수했기에... 밑바닥 노동자들의 정서를 읽고 함께하였다. 최소한 인생을 걸고 투쟁한 분들이다. 책임이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결단이라는 것을 함부로 지껄이지 않았다. 함께하였을 뿐이다. 그 결과로 그들은 건설용역, 노점상, 상인 등으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노동자로서 삶을 이어나갈 기회를 박탈 당한 사람들이 많다. 입바름을 지껄이며 현장의 버거움을 조직화하지 못하고 희망이 없다고 돌아선 학출과는 다르게 그 현장 노조 깃발이 꺽일때까지 끝까지 지키던 분들.... 무기력하게 당했지만 그래도 그 때의 순간의 삶의 좌우명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정치를 하는 이들에 대한 불신으로 얼룩진 분들.... 그들이 밑바닥이고 민주노총의 골간이지만 지금 형태 그 정신을 잃고 썩어 문들어져 가고 있다.(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라 말한다. 그러나 난 그 맥락에 노동자 와 민중이 있는가? 반문하고 싶다. 있다손 치더라도 몇명 있는가? 민주노동당 면면을 보자 반 이상이 노동자 민중인가? 왜 노동자 민중정치세력화에서 밑바닥 노동자들은 당원이나 조직원 이상으로 치닫지 않은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일구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손으로 그들의 투쟁으로 그들의 실천으로...) 답답하지 않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이비(난 사이비라 지칭하고 싶다. 더이상 어떠한 말로 그들을 동지라 부르기 어렵다. 오늘 신문을 보는데... 가슴이 막혀온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참 갑갑하다.)이기 때문이다.(이 말을 하지만 난 정말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대우자동차 사태때 한노사연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외치면서 강성노조가 노동운동을 마치 망치고 있다는 자본의 이야기를 합리화 시켜주는 논의를 보면서 과연 노동자가 강성일 수 없는 조건이 빠져있고, 투쟁의 조건이 서유럽과 다른게 기계적으로 동일화시키고자 하는 모습에서 노동운동의 제도권 진입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살펴보면 노동조합운동은 강성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다채로운 사업이 없고, 늘 벌어지는 현상을 쫓아올 결과이기 때문에 벌어진 현실이 아닐까? 그리고 전노협에서 그 모범으로 자리잡았던 조합원 대상의 교육이 사라짐이 아쉽다. 그 당시도 선진활동가 대회였지만 참여에 있어서는 조합원의 참여도 가능하였다. 이제 보다 조합원들을 위한 실질적 교육과 투쟁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강성은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투쟁하면서 그 힘을 발휘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소소한 투쟁이 큰 파도가 되지 않았던가? 이제 밑바닥 노동자의 삶을 봐야 한다. 함께가자 우리 이길이라는 것을...) 난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 하였지만 그들의 의도를 추측하면 안되지만 난 그들이 민주노총이라는 것을 발판으로 정치권에 투신하고자 하는 사이비 노동자로 비춰진다. 그렇지 않고는 사회적 교섭안에 목숨을 걸지 않을 것이다. 비정규노동자들의 절규를 이처럼 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이비 노동자라 함은 노동자 정신을 잃었다면 그건 더이상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자의 투쟁이 언제 교섭으로 사회적 쟁점화를 시켰는가? 투쟁하기 어렵다. 왜 어려운지 한번 가슴 손에 얹고 생각해 보았는가? 조합원들을 대상화 시켰기에 벌어진 상황 아니던가? 임단협과 집회에 조합원 동원하는 것 이외엔 조합활동이 난무한 시기이지 않던가? 민주노총의 정신 그 투쟁의 역사는 대의원대회 결정으로 세워내지 않았다. 현장의 밑바닥 노동자들의 땀과 피 그리고 열사들의 투쟁으로 하나둘씩 세워져 나갔다. 그러나 민주노총 출범 10년을 갓 넘긴 지금 우리는 아주 오래된 과거로 그 눈물 흘려고 가슴의 아픔이 가시지 않는 상황들을 잊어버리고 만 것 같다. 지금 민주노조 사수의 시기를 넘어서 민주노조라는 깃발을 부여잡았다. 민주노조 깃발을 넘어서 밑바닥 노동자들의 정서를 위한 투쟁에 나서기 위한 조건이 성숙되었지만 선진노동자운동에 매몰된 나머지 선진노동자들에 의한 활동으로만 비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합원들이 신명나게 조합활동을 할 수 있는 바닥의 문화가 사라졌다. 개인의 취미로 모든것이 환원되어 활동이 이루어진다. 우리내 남아 있는 운동문화라면 뒷풀이 정도밖에 없지 않은가? 그 당시 어린 내가 현장에 가보았을때 신명나게 풍물을 치거나 신명나게 육자배기 가락을 읖조리는 조합원들이 있었다. 다들 잔업의 혹독함에도 노동조합활동을 위해 학습하고 함께 어울리던 그 당시 풍경... 선배들이 마냥 경이롭게 느껴졌다. 나도 그 대열에 꼭 참여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조건이 되어도 선동의 문구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조건으로 치닫는 현실이 부끄러웠다. 토론 그리고 선전 찌라시하나 속시원하게 다가오는 것이 없음이 안타깝고 우리내 조합원들이 할 수 있는 조건이 없음이 안타깝다. 아직도 선진노동자라는 깃발을 부여잡고 지도를 획득하여야 하는 시기인가? 아니다. 이제는 밑바닥의 정서가 무엇이고, 우리에게 놓인 화두는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해보자. 다양한 영역으로 노동운동이 분화되었다. 그러나 보자 그 영역이 분화되었지만 영역 하나하나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밑바닥 노동자들의 상태에서 이탈하고 있지 않은가? 난 노동운동의 위기의 시대라고 본다. 노동운동의 골간이 그 자리를 보전하기 힘든 상태이다. 조합원과 지도부의 소통의 문제일 수 있으나 일상화된 내용에서 지도부와 조합원과의 유일한 소통 창구가 임단협 이외엔 없다는 것이 답답하다. 소통과 연대를 말하지만 소통과 연대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난 실패하더라도 총파업 한번 불질러 보고 그 조직을 다시금 추스리기 위해 몇년의 시련의 시기를 복구의 시간으로 갖는다 해도 의미있는 투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큰 파업 이외엔 소소한 투쟁으로 일관하여 연대투쟁에 인색한 현실... 중소영세사업장 투쟁의 깃발이 꺽이면서 민주노총 조합원 수가 줄어들어도 아랑곳 하지 않는 현실.... 전체 노동자들의 문제이지만 한 개별사업장의 문제로 치부된다. 그렇다고 절망만은 있지 않다. 희망도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이 오래된다는 보장은 없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조장하는 구체적 내용을 파악하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왜 소통과 연대... 그리고 노동운동의 변화... 전체조합원들의 총의를 모으는 총투표 그리고 노동조합이 정치와 경제투쟁의 중심으로 나가는 길 등에 대한 모색이 무엇인지.... 고민해도 현찮을 판에 우리는 탁상공론으로 비춰지는 사회적 교섭안에 대해 왜 중요성을 부여잡고 있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교섭이라는 것이 차선의 선택이지 최선의 선택인가? 그런데 뒤빠껴서 차선을 최선으로 주장하는 모습은 어떤 의미일까? 정부와 빅딜이라고 할 것인가? 정리해고의 칼날이 사업장을 가리지 않고 판을 치는데... 무엇으로 자본과 정권에게 요구할 것인가? 노동부가 과연 노동자들을 위한 편이었던가? 오산이라는 지역에서는 연일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추방 당하고 있고, 한원 CC 노동자들은 봄이 왔지만 본사앞 총력집중 투쟁을 전개하고 있고, 여타 많은 사업장들이 정리해고라는 내용으로 차츰차츰 현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정규직의 삶은 이제 장미빛 미래이다. 자리보전 보다는 언제 현장에서 내몰릴지 모르는 불안정 노동자들이다. 이렇듯 우리내 노동자의 삶... 밑바닥 노동자의 삶은 고임금이다 살기 좋아졌다 이야기 하지만 쫓겨날 생각을 하면서 현장에서 불안한 하루하루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삶은 동일하다. 그러나 다른 것은 비정규직에 비해 상여금과 일급이 높다는 것이 그나마 정규직 노동자가 누리는 혜택이다. 이 혜택을 두고 노동귀족이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모든게 꼬이기 시작한다. 밑바닥 노동자의 정서와 민주노총 지도부의 정서는 하나로 통하여야 하는데 하나로 통하지 않고 있음이 안타깝다. 대의원대회를 1주일 후에 다시금 개최하겠다. 이 소리는 감정에 대한 대응이다. 왜 날로 증폭되는 민주노총 조합원간의 대립을 지도부는 방기하는지 모르겠다. 지도부는 수습을 하여야 한다. 더이상 세력대 세력으로서의 대립이 그쳐져야 한다. 지도부는 당면 4월 투쟁의 계획을 세우고 이에 대한 활동을 전개하여야 한다. 사회적 교섭안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벌어지는 투쟁에 대해서는 방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4월 투쟁에 있어 계획이 4월 1일이 부분파업 이외에는 결정 된 것이 없다. 4월 금방 다가온다. 이에 대한 조합원들의 힘을 결집이 필요하다. 지도부는 어제 조합원의 생각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민주노총이 만들어진 것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가?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밑바닥 노동자들과 어떻게 함께하고 미조직 사업장들에 대한 방안이 더욱더 절실히 필요하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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