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인도네시아 엘레나 야니 부부와 행복한 이별

  • 등록일
    2008/11/16 01:04
  • 수정일
    2008/11/16 01:04

엘레나 야니시 부부와 1월 2일 한국에서 마지막 밤을 오산이주노동자센터에서 인도네시아 센터 식구들과 함께 보냈답니다.

 

엘레나씨와 야니씨 부부가 조촐한 음식을 준비하여 마련한 송별회.... 한국에 1999년 들어와서 9년이 되는 이주노동자 부부는 22살 동갑내기로 인도네시아에서 결혼하자 마자 한국에 연수생으로 들어 왔습니다. 한국에 연수생으로 들어온 것이 신혼여행이라고 넌지시 이야기하며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젊은 두 부부 한국에서 꿈을 가지고 왔지만 정작 한국에 들어와 꿈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미래마저 버릴 수 없어 열심히 두 부부는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갖은 고초를 겪었고, 연수생 기간동안은 같은 회사가 아니라 두 부부는 주말부부가 되어야 했습니다. 말이 주말 부부이지 한달에 한번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업주는 매주 일요일 특근(특별근로)을 하여야 했습니다. 한달에 한번 만나는 것이 한국에서 큰 힘이었다고 회고하는 이 두 부부 자신들의 한국에서 꿈과 삶.... 그리고 이별을 이야기는 한편의 소설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되서야 부부는 함께 집을 얻어 살 수 있었습니다. 함께 있어 힘들지만 의지가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두 부부는 어제 송별회를 하며 떠날 수 있게 된 것이 참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희도 두 부부가 자신이 원하는 기간에 나갈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고 참 뿌듯하였습니다.

 

이전 함께 살아오면서 보아왔던 엘레나 야니씨와 함께하였던 시간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힘들지만 야니씨를 정성껏 보살핀 엘레나씨의 모습이 스쳐지나갑니다. 누군가에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인삼이 좋다고 하여 인삼을 사서 병원으로 가는 엘레나씨의 모습.... 의사선생님이 3번의 수술을 한 후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더 이상 수술을 하면 야니씨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이야기를 듣고, 초초해야 했던 센터 식구와 엘레나 야니 부부의 모습이 엊그제 일 처럼 지나갑니다. 

 

한국에서 원인 모를 병에 걸려 고생하였을 때 야윈 야니씨를 보면서 안타까워했던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생각이 납니다.

 

그런 야니씨가 이제는 건강을 되찾아 가게 되어 참 기쁘더군요.

 

야니씨 지금은 비행기에서 엘레나씨와 인도네시아아 발리로 신혼여행을 갑니다. 한국에 입국한게 신혼여행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신혼여행을 떠난다고 수줍게 이야기하는 두 부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습니다.

막상 떠난다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엘레나씨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답니다.

너무 고맙다고 야니씨가 아플때 너무 힘들었는데 같이 지역에 있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있고, 센터가 있어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별을 하게 되어 마음이 아프다고 이야기 합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한국에서 비록 일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고, 그리고 잡히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떠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에 오면 꼭 자신의 집에 방문해 달라는 이야기도 잊지 않고 했습니다.

 

함께해서 고마웠고, 한편으로 아쉬운 두 부부..... 신혼여행을 통해 서로가 더욱더 긴밀하게 지냈으면 합니다. 그리고 예쁜 아이를 낳는다고 하는데 엘레나씨 처럼 똑똑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합니다.

 

새해 벽두 한편 서운하지만 행복한 이별을 하였답니다, 두 부부의 인도네시아 생활에 늘 행복함과 기쁨이 가득하기를 멀리서 나마 빌어봅니다. 비행기에 있을 두 부부의 행복한 모습이 상상되어지네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황룡식 아저씨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연길로 돌아갔습니다.

  • 등록일
    2008/11/16 01:02
  • 수정일
    2008/11/16 01:02

황룡식 아저씨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연길로 돌아갔습니다.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와 아름다운 가게 동교동점의 지원으로 황룡식아저씨는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고국으로 귀향을 하였습니다.


지난 10월말 황룡식 아저씨는 중풍으로 반신마비가 되어 오른쪽 반신을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경기도립의료원수원병원에서 신경외과 과장님의 정성어린 치료를 받아 목발을 짚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원 엠마우스에서 연결시켜준 수원자활센터 간병도우미 아주머니들의 지극어린 돌봄으로 아저씨는 건강과 기간 한국에서 어려움으로 고통 받았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답니다. 


중국에서 홀로 와서 친지하나 없는 한국 땅에서 건설노동자로 삶을 살아가며 벌은 돈을 모두 중국자녀들의 교육, 가족 생계비로 보내 자신이 쓸 돈 하나 없던 황룡식 아저씨... 그리고 아저씨는 이전 건설회사에서 체불된 1,200만원을 받기 위해 사방팔당 다니다가 추석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안타까운 소식까지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담하였습니다. 황룡식 아저씨에게 한국의 의료단체의 외면으로 막막함이 밀려왔던 지난 달.... 전화기를 부여잡고 아저씨를 도우기 위해 사방팔당 의료지원을 하는 곳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하였습니다. 9월말로 보건복지부 의료지원이 종료되어 더 이상 이주노동자 무료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국공립의료원, 적십자병원, 그리고 외국인전용병원은 아저씨의 상태를 듣고 입원을 외면하였습니다.


차디찬 쉼터 방에 전기장판하나 놓인 공간에 있는 아저씨를 방에서 보는 것이 무지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렇게 10월초 막막함으로 보냈답니다. 인터넷으로 의료비지원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기 위하여 방문한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 홈페이지에서 응급의료지원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무턱대고 엠마우스에 찾아가서 이주노동자의료공제회 건강카드를 만들고, 경기도립의료원 수원의료원으로 갔습니다. 무턱대고 응급의료지원비 50%를 생각하고 나머지는 저희 센터가 책임 지기로 하고 아저씨를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 입원을 시켰습니다.


문제는 아저씨를 돌볼 간병인이 필요하였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수원엠마우스에서 수원자활후견기관에 요청하여 무료간병 서비스를 받게 해주었고, 입원병동 간병인 분들이 저녁에는 자신들이 돌봐주겠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혼자 용변과 거동을 하지 못하는 아저씨가 치료될 때까지 물신양변 지원해주신 것 또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용변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구로 외국인전용병원으로 부터 외면 받은 황룡식아저씨를 경기도립의료원 수원병원 응급실에서 따뜻하게 받아 주어 정성껏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특히 신경정신과 의사선생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봅니다. 목발을 짚고 혼자 거동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건강을 되찾은 황룡식 아저씨 얼굴에 빛이 돌기 시작하더군요.


치료를 마치고 나니 또하나의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아저씨를 고국으로 보낼 경비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르게 저희와 관계된 기관에서 배편 비용을 지원해주어서 황룡식 아저씨는 11월 29일 인천에서 배편을 이용하여 중국 연길로 귀향을 하였습니다.

 

아저씨는 가시면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면서 눈에서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자신은 다시는 고향에 못 돌아가고 이곳에서 죽는구나 싶었다며, 건강을 찾게 도와주신 분들에게 대신 감사의 인사를 전달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아저씨가 무사히 중국의 따님에게 갈 수 있게 되어 저희도 기쁘답니다. 


막막함만 밀려왔던 황룡식 아저씨에게 빛과 나눔 생명의 귀중함을 일깨워준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와 아름다운가게 동교동점에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