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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도종환] 모두가 장미일 필요은 없다.

  • 등록일
    2004/09/26 08:27
  • 수정일
    2004/09/26 08:27

장미꽃은누가 뭐래도 아름답다. 붉고 매끄러운 장미의 살결, 은은하게 적셔오는 달디단 향기, 검꽃잎과 속꽃잎이 서로 겹치면서 만들어내는 매혹적인 자태, 여왕의 직위를 붙여도 정말 손색이 없는 꽃이다. 가장 많이 사랑 받는 꽃이면서도 제 스스로 지키는 기품이 있다.

 

그러나 모든 꽃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모든 꽆이 장미처럼 되려고 애를 쓰거나 장미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실망해서도 안된다. 나는 내 빛깔과 향기와 내 모습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나는 장미로 태어나지 않고 코스모스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면 가녀린 내 꽃대에 어울리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장점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욕심부리지 않는 순한 내 빛깔을 개성으로 삼는 일이 먼저이어야 한다. 남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내 모습, 내 연한 심성을 기다리며 찾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장미는 해마다 수 없이 많은 꽃을 피우는데 나는 몇 해가 지나야 겨울 한 번 꽃을 피울까 하는 난초로 태어났을까 하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장미처럼 화사한 꽃을 지니지 못하지만 장미처럼 쉽게 지고 마는 꽃이 아니지 않는가. 나는 장미처럼 나를 지킬 가시 같은 것도 지니지 못했지만 연략하게 휘어지는 잎과 그 잎의 담백한 빛깔로 나를 지키지 않는가. 지금 장미를 사랑하는 사람의 숫자가 물론 더 많지만 더 오랜 세월 동안 사랑 받아온 꽃이 아닌가. 화려함은 없어도 변치 않는 마음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랑받고 있지 않은가.

 

나는 도시의 사무실 세련된 탁자 위에 찬탄의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는 장미가 아니라 산골마을 어느 초라한 집 뜨락에서 봉숭아가 되어 비바람을 맞으며 피어 있을까 하고 자학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장미처럼 붉고 짙으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빛깔을 갖고 태어나지 못하고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붉은 빛이나 연보란 빛의 촌스러운 얼굴빛을 갖고 태어났을까하고 원망할 필요가 없다. 봉숭아꽃인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빛깔을 자기 몸속에 함께 지니고 싶어 내 꽃과 잎을 자기 손가락에 붉게 물들여 지니려 하지 않는가. 자기 손가락을 내 빛깔로 물들어놓고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할 만큼 장미는 사랑받고 있을까. 장미의 빛깔은 아름다우나 바라보기에 좋은 아름다움이지 봉숭아꽃처럼 꽃과 내가 하나되도록 품어주는 아름다움은 아니지 않은가.

 

장미는 아름답다. 그 옆에 서 보고 싶고, 그 옆에 서서 장미 때문에 나도 더 황홀해지고 싶다.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시기심도 생기고 그가 장미처럼 태어났다는 걸 생각하면 은근히 질투도 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나는 나대로, 내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산국화이어도 좋고 나리꽃이어도 좋은 것이다. 아니, 달맞이꽃이면 또 어떤가.

 

                                                          도종환 산문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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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도정환] 가장 부러운 좌우명

  • 등록일
    2004/09/26 08:05
  • 수정일
    2004/09/26 08:05

우리 주위에는 문명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기 때문에 정신이 빛나는 삶을 사는 분들이 많다. "강아지똥"의 저자 권정생 선생님,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님, 이현주 목사님, 대학교소직을 버리고 농사꾼이 된 윤구병 선생님, 박달재 밑에서 농사를 지으며 판화를 하는 이철수 화백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일찍이 스콧 니어링은 자신이 서구 문명에 작별을 고한 이유가 첫째는, 서구 문명의 위선적 태도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요. 둘째는, 그것이 경쟁을 으뜸 원리로 삼아 세워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쟁은 분열을 일으키는 사회적 힘이며, 따라서 결국은 파괴를 가져오고 대립과 적대를 일삼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도박을 일삼는 군대의 모험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탐욕과 경쟁의 원리는 반드시 전쟁으로 귀결된다. 그런 이유로 그는 모든 전쟁을 경제 전쟁이라 했다.



수십 년 간 학자로서 대학교수로서 전망을 모색하고 진보를 기대하며 노력해 왔건만, 그가 발견한 것은 황폐함과 이기주의, 부정과 부패, 타성과 무관심, 권태 등이었고, 세계는 혼란스럽고 뒤숭숭하며 비극적이어서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상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이었으며 모순과 무지, 편견과 분노,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세계대전과 그 이후의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을 지켜보면서 그는 서구 문명을 위험한 고객으로 간주하고 그의 장부에서 지워버린다.

 

사실 그가 선택한 시골생활이었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을 통해 기업을 살찌우고 경제를 일으켜 세우려는 거대한 광기에 휩싸인 미국 주류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되고 내쫓긴 것이었다. 버몬트의 숲 속으로 들어간 스콧 니어링 부부는 자연과 접하면서 하루에 생계를 위한 노동 네 시간, 지적 활동 네시간, 좋은 사람과 친교하며 보내는 시간 네 시간으로 완벽하게 하루를 보내는 생활을 한다. 마을 사람들과 서로 도우며 살되 소유욕을 억제하고, 절대로 돈을 꾸는 일이 없으며,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지냈다. 이렇게 농사를 지으며 사는 동안 경쟁적이고 공업화된 사회양식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네 가지 해악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그 네 가지 해악이 란(돈과 가재도구를 비롯한) 물질에 대한 탐욕에 물든 인간들을 괴롭히는 권력, 다른 사람보다 출세하고 싶은 충동과 관련된 조급함과 시끄러움, 부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 반드시 수반되는 근심과 두려움, 많은 사람이 좁은 지역으로 몰려드는 데서 생기는 복잡함과 혼란을 말한다.

 

언제부턴가 내가 가장 부러워하기 시작한 그의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쓰로 강연하고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실제로 그는 그렇게 살다가 100세가 되던 해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래서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도 그를 존경한다.

 

                                                         도종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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