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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도종환] 누군가를 사랑하면 마음이 선해진다.

  • 등록일
    2004/08/23 00:46
  • 수정일
    2004/08/23 00:46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나가는 것은 어찌보면 쉬울수도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알아나가는 것은 진실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행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열병에서 이별의 슬픔에 젖어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제일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당사자에게 얼마나 진실하게 대하고 그에게 얼마나 나를 보여주었는가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사랑은 어찌보면 허망할 수도 있습니다. 라디오를 켜고 새벽 음악을 들으면 사랑하는 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누군가의 편지를 들으면서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간접 경험해 보고, 이별한 이의 고뇌에찬 사연 글에서는 슬픔을 읽어냅니다. 사랑과 이별은 참으로 어려운 난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얼마나 그 사람에게 진실했는가 입니다. 

 

사랑의 과정에서 그 상대방에 대한 소유에 대한 욕망은 갈구하지 않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랑이란 신영복 선생의 글을 빌어 말하자면....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 사견을 조심스럽게 밝혀봅니다.

 

도종환 선생의 산문집에 실린 글 하나 올려봅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선한 마음을 갖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데 욕심과 집착에 빠져 있다면 그건 진정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진정으로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의로운 마음이 된다. 마음이 맑고 순해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진짜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다른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는데도 마음이 탁해지고 악한 생각과 계산하는 마음에 빠져 있다면 자신의 사랑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사랑하면 마음이 착해지는데 착해지는 것에도 일곱가지가 있다고 한다.

 

"고난을 만나더라도 버리지 않고,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어려운 일을 상의하고, 서로 도와주고, 하기 어려운 일을 해주고, 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는 것"이 그것이라도 "사분율"에서는 말한다.

 

당신이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한 가지씩 물어보라.

 

서로 사랑하다가 고난을 만나더라도 고난 때문에 상대방을 버리지 않을 것인가. 고난을 함께 겪으며 헤쳐 나갈 자신이 있으면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 때문에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고 약속할 수 있는가.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에서 서로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않고 깨끗한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어려운 일을 늘 상의하는 사람, 그래서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사람, 늘 대화하고 생각이 서로 통하는 사이라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일로 서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이인가. 서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주고 배려하는 사이인가.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기 어려운 일을 해주는 사람인가. 자신의 처지만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처지에 서서 생각하고 상대방을 위해 하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랑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주기 어려운 것을 줄 수 있는가, 내가 가장 아끼던 것을 내 줄 수 있는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그에게 줄 수 있는가.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소중하기 때문에 주기 어려운 것까지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 있다면 그는 지금 사랑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참기 어려운 것을 참을 수 있는가. 내가 참고 있다면 상대방도 지금 참고 있는 것이라 한다. 참을 수 있는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지만 그를 위해서 참기 어려운 것을 참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 있다면 그는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보라,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선해지는가를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도종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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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희덕] 어린 것

  • 등록일
    2004/08/23 00:26
  • 수정일
    2004/08/23 00:26

어디서 나왔을까 깊은 산길

갓 태어난 듯한 다람쥐새끼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맑은 눈빛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고집할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어린것들은

내 앞에서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

나를 어미라 부른다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



젖이 차 올라 겨드랑이까지 찡해온면

지금쯤 내 어린 것은

얼마나 젖이 그리울까

울면서 젖을 짜버리던 생각이 문득 난다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않는

난만한 그 눈동자,

너를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고

갈 수도 없다고

나는 오르던 산길을 내려오고 만다

하, 물웅덩이에는 무사한 송사리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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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이 시는 페미니즘의 여러 유형 가운데 에코 페미니즘에 속한 시이다.

 

에코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과 여성을 동일한 범주와 차원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즉, 남성 억압에 의한 여성의 수난을 인간 억압에 의한 자연의 수난과 동일시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사적 대상에 대한 모성적 측은지심이 체험적 진실에 힘입어 보편적 감동을 유발하고 있다. "갓 태어난 듯한 다람쥐새끼"를 바라보고 있는 시적 자아의 정서는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모성적 사랑이야말로 모든 사랑의 근원이다. 이 시에는 대상과 세계를 유용성과는 거리가 먼, 지고지순한 사랑과 연대의 관계로 파악하려는 거룩한 삶의 태도가 들어있다.

 

어린 다람쥐를 보고 시인은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것이 돈다"라고 말하고 있다. 생명 지닌 것들에 대한 외경을 생활로 삼지 않으면 불가능한 시적 표현이다. 시인은 나아가 이 어린 다람쥐에게 자연스럽게 집에 두고 온 아이를 떠올린다.("지금쯤 내 어린것은/얼마나 젖이 그리울까") 시인은 오르던 산 길(삶, 인생)을 내려오고 마는 것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근원적 사랑을 저버린 욕망의 실현이란 모두가 부질없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체험적 진실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 물웅덩이에는 무사한 송사리떼". 어린 다람쥐와 젖이 그리운 아이와 송사리떼는 여기서 동일한 존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생명의 존재라는 차원에서 그것들은 결코 장애를 겪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될, 더 없이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들이다.

                                                                                                             - 이재무 -

 

69인의 좋은 시를 찾아서 긍적적인 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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