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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빈곤화 여전히 바뀌지 않는 담론....

  • 등록일
    2014/03/07 19:49
  • 수정일
    2014/03/07 19:49

사회적 빈곤화가 가시화 되어 다시금 죽음의 행렬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 빈곤 그리고 그 복지라는 사각 사회적 안전망이 대두되었다.

김대중정권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를 만들어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자 하며 전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사회적 안정망이라는 복지의 증대의 초라한 단상을 발견한다.

복지의 사각이 드리우고 김대중정권의 카드 사용 장려로 국민을 전체 신용불량자로 만들고, 노무현 정권은 개발독재로 모기지론으로 전국민을 깡통아파트로 고생시키고 있다.

가진자들은 IMF 경제위기를 기회로 부동산 사재기 현금 모으기 금 모으기 등으로 자산을 증식하였고, 전국민 신용불량자로 만들며 내수촉진시키는 한편 국민의 공적자금으로 확충한 국가 공공인프라를 자신의 사적소유물로 민영화로 팔 아 제끼더니 노무현 정권들어서는 민영화 그리고 개발촉진으로 전국토를 아파트, 토건 족들의 아파트, 도로 등으로 건설공화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개발이익의 소수액을 지역환수라 말하며, 복지와 사회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데 사용하였다.

서울만 해도 전세가가 안정화 되었고, 그 달동네들이 집들을 리모델링하여 싼 가격으로 주택의 수명을 늘일 수 있지만 개발로 그 정든 터들이 아파트로 흉물화 되었다. 북한산 자락으로 북한산성입구만 가봐도 얼마나 많은 아파트들이 입주하였는 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개발 이익의 일정액을 지역환수로 복지인프라를 확충하였다. 혹자들은 정치자금 및 기업의 사회환원이라는 긍적적 효과를 낳았다 말하지만 빙산의 일각이다.

아파트 주택가의 고공행진 건설업의 규제완화로 대기업들 대다수가 건설업체로 진출하는 쾌거를 김대중, 노무현 정부때 확장되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 그 고공행진하는 아파트 내수적 수요를 증대하기 위한 모기론은 그야말로 작금의 깡통 아파트 그리고 묻지마 개발로 투자해 손해를 보고 울며겨자먹기로 사는 이들... 이명박 정부들어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론의 부실화로 리먼브라더스를 비롯한 여러 금융자본의 붕괴와 국지 기업들의 도산위기로 정체를 더하였다.

그렇게 민영화 그리고 시장화는 과잉생산 과잉축적으로 위기에 치닫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를 개발독재로 내수촉진 노동자 인민의 빚잔치로 이루어낸 산물이고, 그 결과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론과 같은 사태 그리고 전지구적으로의 주택의 거품에 대한 경고를 낳았다. 한국 또한 그렇다. 수도권 난개발 아파트 이에 따른 토지주택공사의 내적부실화 그리고 수요에 비해 팔리지 않는 아파트 들이 대거 임대시장으로 나와 임대주택으로 수요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비용의 과잉은 인플레이션의 거대화로 이루어졌다. 치솟는 아파트 아파트의 고품격화로 40억대 타워펠리스 아파트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 부실화는 이명박 정권들어 팽배해져 작금의 거대 주택위기의 조짐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자본의 토건족과 결탁한 건설이 이명박 정부들어 아파트 시장의 과잉 그리고 토지주택공사의 부채와 내적부실화는 국가 거대 프로젝트 4대강과 도로 건설로 이어진다. 건설로 자본의 살을 찌우는 정부의 토건프로젝트의 부실화가 이어졌다.

복지예산은 코딱지만하게 성장시키고, 그리고 복지라는 것이 체계적으로 국가주도의 공적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지만 적은 예산으로 효과를 증대하기 위하여 민간위탁으로 내적부실화 그리고 전문성보다는 종교, 정부의 친경향적 복지재단의 등장으로 이어져... 그 부실에 따른 사회적 갈등 또한 만만치 않았다. 에바다 그리고 여타 사회복지법인의 시설인에 대한 수탈과 비리, 공금 횡령 등 이러한 현실이 작금의 사태를 낳았고, 실적위주 그리고 효율성 위주의 전시 행정과 맞닿아 그 수혜자들 특히 빈곤화를 겪고 있는 이들이 수혜를 입을 수 없는 지역주민들의 생활여가 공간으로 치닫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요인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의 소외 김대중 정부의 정리해고, 파견법으로 노동시장의 변화 완전고용시장 철폐, 비정규직화, 파견화 그리고 이에 더 나아가 전국민 신용불량자화가 이 사태를 증폭하였다.

노동시장의 불안정화로 노동의 터에서 삶에서 기댈 곳 없는 이들은 전전긍긍 그리고 그 빚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자살행렬과 그 자살행렬에 이어 실직과 사업부도로 인한 노숙인의 과잉증대로 서울역 IMF 전후로 그 서울역과 을지로부터 동대문 지하도의 노숙인들이 늘어 사회적 감당이 안되는 처지에 놓였다..

노동의 소외가 낳은 현상이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초래한 사회적 타살로 치닫게 하고 있다. 1998년 노숙인의 증대와 사회적 자살의 증대.... 한강에서 가족의 자살이라는 보도가 하루걸러 하루 나오던 시기 지금도 그때와 사뭇다르지 않지만 그 때보다 더 심각해 졌다는 것이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고착화되었고, 이 땅의 사회적 빈곤계급은 저임금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고 그 저임금 시장에서 이탈하면 사회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조건..... 이러한 굴레에서 더욱 물가는 고공행진하고 그리고 주거비는 IMF이전의 몇십배가 부풀려져 있어 주거공간에서 밀려나는 현상으로 도시에서 더욱더 밀려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사회복지의 증대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사회적 노동의 구현... 그리고 지금 기초생활임금을 이야기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결과의 바탕에는 건강한 노동의 일터와 이에 따른 노동의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기초생활임금이라는 것만을 고민한다면 또하나의 세수를 위한 부유세 논쟁으로 치닫게 되는 과거의 실패에서 논쟁으로 그칠 공산이크다. 조례재정 그리고 그러한 지역에서 특화가 어떻게 미칠지는 현재 중앙정부의 그 의지없는 모습에서 그리고 친자본정권하에서 그만큼의 재원을 마련할 조건이 될 것인지 의구심이다.

기초생활임금을 말하기 이전 우리내 노동의 소외에서 고민하여 출발하여야 한다. 유럽의 실업급여와 사회적 안정망이라는 케인주의적 복지는 투쟁의 산물이다. 그 투쟁 노동과 사회적 인식과 그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하기에 우리내 지금 벌어지는 사회적 투쟁 그리고 노동자투쟁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투쟁의 힘이 우리내 요구를 자본으로부터 쟁취할 것.... 특히 사회적 비용을 국가가 부담할 수 있는 적절한 세법에 대한 사회적 쟁취로 우리내 노동자가 나서야 한다.

자본으로부터 쟁취해야 하고 국가로부터 부유세 성격의 자본의 수탈과 잉여축적물에 대한 요구를 내걸고.... 빗발치는 투쟁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이 시행되어야 한다.

사회적 노동이 되기 위한 고민들이 출발되고, 사회적 빈곤에 대한 일시적 국가의 복지제도에 대한 단발마적 고민은 그 사회적 빈곤의 자살을 방지할 수 없고,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죽음을 또한 부채질 할 것이다.

사회적 노동이 쟁취하였던 유럽의 그 모습들 처럼 우리도 노동의 헤게모니로 그 자본으로부터 노동자 인민의 삶 죽지 않을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사회적 빈곤에 의한 사회적 죽음이 이어지는 작금의 현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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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인가 직원인가 질문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 등록일
    2014/03/06 00:50
  • 수정일
    2014/03/06 00:50

지금 우리내 조직노동운동의 활동가들은 스스로 활동가임을 자임하지만 직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해고노동자가 그 위치를 가름하던 시기는 있었지만 그 현장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지만 그 계급적 한계를 노정한 그들은 직원으로서 계급운동을 각성시키지 못하고 계급적 노동운동의 주체로서 활동가로 서지 못하고 관료적 노동운동에 편승해 있다.

그 길도 인맥이 작용하는 노동현실... 아주 부끄러운 자화상이 우리내 노동이다. 그 현실적 바탕이 작금의 노동을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노동도 현장과 동일하게 선택적 활동가 조직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곳에서 활동가들이 점철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 우리 민주노총 인천본부 사태에서 그 상근자 해고 투쟁도 하였지만 여전히 그 문제는 물타기하고 있고 자기 입맛에 맛는 이들이 조직적 발전을 고려하지 않고 그 길을 가고 있다.

난 어떠한 조직이던 투쟁을 조직을 그리고 민주노조 깃발 시켜 세워 노동해방 깃발을 세울수 있는 이가 그 자리에서 그 위치에서 현장과 소통하고 연대하고 단결하는 길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 보지만 우리는 그 경향성과 조직으로서 그 자리를 아니 직장을 마련하는 활동하고 있다.

그것이 작금의 노동의 단절과 분절 현장의 경향성 뿌리의 태초이지 않을까 생각되어진다. 그 출신에 따라 위치를 지워져야 한다, 민주노총을 위시한 조직은 노동자 조직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학습, 조직, 실천하고 그 경험들을 노동자를 둘러싼 단체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민주노총을 위시한 그 산별에 학출 그리고 노동자 출신이라 말한 이들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생각한다, 작금 그러하지 않지만 앞으로 그 경향들을 바꾸어야 한다. 노동조합부터 노동부터 노동운동부터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주적으로 단결연대투쟁을 이끌어가야 한다. 이것만이 이 분절된 노동을 바꿀 희망이다, 정치를 염두한 인간들과 정치적 무르익은 경향성과의 투쟁이다 할 수 있다.

민주노총 산별은 노동자 그리고 무르익지 않았지만 노동자계급의 노동자 주체가 세워내고 만들고 각성하고 투쟁하고 실천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각성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이전부터 햇지만 지금은 절실하다.

운동의 피폐와 정파의 전투장이된 현장을 보면서 아래로부터의 조합원운동 그리고 사유를 하지 못한 활동의 졸속함을 보면서... 더욱더 절감한다.

그 사유와 사고도 하지 못한는 저열함을 보고 있는 나로서는 그것이 누군가에겐 대의겠지만....나도 그 중의 하나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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