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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러나 이 서술은 단지 무대에 올라와 뭐가 뭔지도 모르고 몸부림하는 지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학문의 모양, 즉 학문 특유의 형태 안에서 온갖 요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모양을 갖추고 있지 않고 또 학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완성된 학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서술은 참다운 지를 향해 몸부림치는[1] 자연적인 의식이 거쳐가야 하는 길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가 있겠다. 또는 혼이 거쳐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혼은 이 도정에서 그 본성이 미리 예비한 일련의 형태를 하나하나 취하고 두루 거치면서 [2],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경험함으로써 본래적인[3] 자신을 알게 되고 마침내 정신으로 순화된다.
[1] 본문
[2] 플라톤의 『국가 』제10권 마지막 부분 에르 신화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에르는 아르메니오스의 아들로서 어떤 전투에서 전사한다. 전사 후 10일째 되는 날 다른 전사자들은 이미 부패한 상태였는데 에르는 그렇지 않게 온전하게 집에 안치되었다. 12일째 되는 날 화장하려고 나무장작위에 갖다 올려놓았더니 다시 살아나고 저승에서 경험한 것을 보고한다. 이 보고내용이 플란톤의 에르 신화다. 주요 내용은 혼이 죽은 후 지옥과 천당에 간다는 것과, 너무 악해서 영원히 타타로스에 던져지지 않은 이상 혼은 다시 이승으로 온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혼이 다시 이승으로 오는 과정인데 제비 뽑기로 순서를 정하고 차레대로 삶의 기본모형(bion paradeigmata, 국가 617d)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재수가 있고 없는 문제는 떠나서 운명은 이렇게 선택의 여지라는 것이다. 쉴러의 『발렌슈타인』에서 피콜로미니가 발렌슈타인에게
[3] an s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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