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정신현상학 서론 §5

(§5) 그러나 이 서술은 단지 무대에 올라와 뭐가 뭔지도 모르고 몸부림하는 지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학문의 모양, 즉 학문 특유의 형태 안에서 온갖 요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모양을 갖추고 있지 않고 또 학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완성된 학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서술은 참다운 지를 향해 몸부림치는[1] 자연적인 의식이 거쳐가야 하는 길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가 있겠다. 또는 혼이 거쳐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혼은 이 도정에서 그 본성이 미리 예비한 일련의 형태를 하나하나 취하고 두루 거치면서 [2],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경험함으로써 본래적인[3] 자신을 알게 되고 마침내 정신으로 순화된다.



[1] 본문 . 아리스토텔레스의 oregesthai (형이상학, 980a 21), ephiesthai (니코마코스 윤리학 1094a)의 <무엇을 향해 뻗어 나가다>의 의미로 번역했다.

[2] 플라톤의 국가 10권 마지막 부분 에르 신화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에르는 아르메니오스의 아들로서 어떤 전투에서 전사한다. 전사 후 10일째 되는 날 다른 전사자들은 이미 부패한 상태였는데 에르는 그렇지 않게 온전하게 집에 안치되었다. 12일째 되는 날 화장하려고 나무장작위에 갖다 올려놓았더니 다시 살아나고 저승에서 경험한 것을 보고한다. 이 보고내용이 플란톤의 에르 신화다. 주요 내용은 혼이 죽은 후 지옥과 천당에 간다는 것과, 너무 악해서 영원히 타타로스에 던져지지 않은 이상 혼은 다시 이승으로 온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혼이 다시 이승으로 오는 과정인데 제비 뽑기로 순서를 정하고 차레대로 삶의 기본모형(bion paradeigmata, 국가 617d)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재수가 있고 없는 문제는 떠나서 운명은 이렇게 선택의 여지라는 것이다. 쉴러의 발렌슈타인에서 피콜로미니가 발렌슈타인에게 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하늘이 아니라 <네 가슴속에 네 운명의 별이 있다>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자업자득이라는 것이다. 플라톤도 모든 것이 원칙적으로 자업자득이라는 면을 강조하는데 <다이몬이 너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자신이 [너희 삶을 주관하는 신인] 다이몬을 선택한다.>(국가, 617e). 결국 선택한 삶을 선택한 다이몬의 주관아래 살게 된다는 것이다. 선택이 다 끝나면 혼은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레테 강물을 마시고 새 몸으로 이승에 다시 오게 된다.    

[3] an sich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