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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알없이 겨만 있는 의식이 이렇게 회의주의를 고수하고 꼼짝달싹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의식이 여러 형태를 취하게 되고 더구나 의식이 취해야 하는 형태를 하나도 빠짐없이 취한다고 할 수 있는지의 문제와 또 그 모든 형태를 서술하는 문제는[1] 의식이 어떤 형태에도 머물러 안주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거기를 떠나 다른 형태를 취해야 하며[2], 또 이 모든 형태들 간에 필연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통해서 자연적으로[3] 해결될 것이다. 이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임시로나마 일반적인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고 넘어갔겠다. 즉, 참답지 않는 의식에게 그가 비진리라고 보여주는 서술이 단지 부정적인 운동만이[4]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운동에 관하여 자연적인 의식은 아무런 다른 이해가 없고 위와 같이 오로지 부정하는 단편적인 입장만을 취한다. 이렇게 단편적인 입장을 본질로 만들어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지는 불완전한 의식의 한 형태다. 의식은 도정에서 반드시 이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그때 가면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언급하자면 이 형태가 바로 어떤 결과에서든지 단지 순순한 무(無)만 바라볼 뿐 그 밖의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는 회의주의다. 이 회의주의는 이와 같은 무가 어떤 것으로부터 나타나는 결과로서[5] 밑도 끝도 없이 막연하지 않고 그 어떤 특정한 것을 부정한다는 것이 새겨져 있는 무라는[6] 사실을 지워버린다. 그러나 무는 어떤 것으로부터 유래되고 이 어떤 것을 부정하는 무라고 받아들여질 때만 비로소 참다운 결과가 된다. 이렇게 무는 제한성을 갖는 어떤 것이며[7] 이와 함께 또한 어떤 내용을 갖게 된다. 그러나 회의주의는 아무런 내용이 없는 막연한 무와 공허로 끝나기 때문에 이런 추상을 떠나 다른 데로 나아갈 수 없고, 다만 뭔가 새로운 것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도사리고 있다가 나타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간에 이전과 다름없는 공허한 심연에 내던져버린다. 이와 달리 결과를, 결과가 참으로 그런 것처럼, 제한된 부정으로 이해하면 결과와 동시에[8] 새로운 형태가 발생한다. 이렇게 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도(過渡)를 통해서 의식이 일련의 행태들을 빠짐없이 취하고 통과하는 전진이 자력으로 이루어진다.
[1] 본문
[2] 본문
[3] 본문
[4] 본문
[5] 본문
[6] 본문
[7] 이러한 제한된 무는
[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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