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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자연적인 의식은 단지 지의 껍데기[1]일 뿐이지 실제적인 지가 아니라는 것이 자연스럽게[2] 입증될 것이다. 그런데 자연적인 의식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부터[3] 자기 자신 그대로가 오히려 실제적인 지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에게 이와 같은 도정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며, 개념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자기상실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의식은 이 도정에서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진리라는 논증의 힘을[4]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길을 회의에 빠지는 길로[5] 볼 수 있겠는데, 더 엄밀하게 살펴보면 사실 절망에 빠지는 길이다[6]. 그 이유는, 의식의 도정에서 일어나는 회의는 사람들이 흔히 이해하는 회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회의란 보통 진리하고 여겼던 것을 이러 저리 한번 흔들어 본 다음 <어 진짜네>하고 회의를 걷어버리고 다시 착실하게 원래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되돌아가 사태를 처음과 다름없이 다루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의식의 도정에서 일어나는 회의란 현상뿐인 지가 사실[7] 실현되지 않은 껍데기[8]뿐인 것을 가장 알찬[9] 것으로 여겼던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고 자기가 진리가 아니다라고 뼈저리게[10]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이와 같이 회의의 본질까지 파고드는 회의주의는[11] 진리와 학문을 놓고 분주하게 떠드는 자가 진리와 학문의 무기로 마련했다고 자부하는 회의주의와는 다르다. 이런 회의주의는 학문하는데 있어서 권위에 눌려 타인의 사상에 항복하지 않고, 대려 모든 것을 스스로 따져보고 자신이 확신하는 것만 따른다는, 더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모든 것을 스스로 재현.창출하고 오직 자기가 직접 주도하는 행위만을 진실된 것으로 여긴다는 결단과 같다. 그리고 이런 회의주의는 이런 결단을 통해서 자신을 충분히 가다듬어 진리와 학문에 적합한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회의주의는 나중에 더 자세히 보겠는데 의식의 도상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의식은 그 형태 하나하나를 두루 거치면서 학문으로 자기 자신을 다듬어 나아가는데, 이런 모든 형태를 모아 논 것이 의식이 교양을 쌓아가는[12] 상세한 역사다. 그런데 의식은 위와 같은 결단만을 가지고 자기자신을 학문하기에 알맞게 다듬는 일을 단번에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식이 들어서는 도정은 이와 같이 한자리에 한가하게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자기착각에[13] 반하여 길에 올라 실질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길이다. 자신의 확신을 따른다는 것은 물론 권위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뭔가 좀 다른 것이 있다. 그러나 권위에 눌린 판단을 자신의 확신에 따른 판단으로 교체했다고 해서 꼭 판단의 내용이 달라지거나 오류가 있던 자리에 진리가 들어선 것은 아니다. 타인의 권위에 눌려서 사념과 편견의 체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든 아니면 스스로 확신하여 그렇든 양자간의 차이에는, 자신의 확신에 기초해 있는 편이 좀 우쭐거린다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 이와 반대로 현상뿐인 의식 전반에 회의의 화살을 돌리는 회의주의는[14] - 의식 스스로가 그렇든 아니면 타인이 그렇든지 - 자연적인 것이라고 내세워지는 관념, 사상, 사념에 대한 절망감을 일으켜서 정신이 비로소 진리가 무엇인지 진위를 가름하는데 도전하게[15] 한다. 사태가 이러한데 의식은 앞서 언급한 결단만을 가지고 진위여부를 따지려 든다. 그러나 위와 같은 관념, 사상, 사념으로 가득 차 있고 또 거기에 얽매여 있는 의식은 사실 그가 하려고 하는 일, 즉 진위여부를 따질 능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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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첫째철학에 대한 성찰>은 바닥만 남기고 모든 것을 쓰러뜨리고(evertenda)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리겠다는 결단(inchoandum)으로부터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inchoo (또는 incoo)라는 낱말이 농부들이 사용했던 말로서, 우리환경에 옮겨 말하자면 <소에 멍에를 얹다>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소에 멍에를 얹어서 쟁기질 할 모양새만 갖추지 실지로 쟁기질로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inchoho는 아주 추상적인 시작을 의미한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