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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와 같이 꼰대를 세우고 있는 축과 거기에 들러리 서 있는 것, 즉 직접성과 매개성 간의 차이는[1] [등장하는 지를 관조하는] 우리만이 구별하는, 즉 우리만이 [억지로] 만든 차이가 아니라 감각적 확신에 [바짝 다가가] 그 자체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앞 단락에서 규정한 형식을 적용하지 않고 감각적 확신이 그 자체에서 스스로 그 차이를 보여주는 형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감각적 확신을 들어다 보자.] 그럼 그 내부의 한편은 <있다>는 것 외 아무런 주름이 없는 직접적인 것, 달리 표현하면 꼰대로[2] 설정되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은 감각적인 확신 내부에서 <자력으로>[3] 존재하지 못하고 타자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비꼰대적이고[4] 매개된 것, 즉 대상을 알기는 하지만 대상의 존재에 완전히 달려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지>로서의 자아로 설정되어 있다. 이런 지와 달리 대상은 [항상] 존재하고, 이런 <있음>으로서의 [흔들리지 않는] 참다운 것과 꼰대로, 지가 알든 말든 이것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대상은 지가 모른다고 해서 사라지는 법이 없고, 반면 지는 대상이 사라지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원문 <diesen Unterschied des Wesens und des Beispiels, der Unmittelbarkeit und der Vermittlung>. 여기서 <Wesen>과 <Beispiel>을 형이상학이 주조한 <본질>과 <부수적인 것>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헤겔 전후의 형이상학과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1 전통 형이상학의 개념을 사용하면 사태를 두루뭉실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그래서 <Wesen>을 <꼰대를 세우고 있는 축>, <Beispiel>을 <들러리>로 번역하였다. 맑스의 <자본론> 첫 부분을 읽으면서 <본질과 현상의 변증법>을 형이상학적인 개념에 기대어 이해하고 들어가는 오류도 볼 수 있다.
[2]원문<Wesen/본질>
[3]원문 <an sich>
[4]원문 <unwesentlich/비본질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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