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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님의 [아랍혁명을 사유하는 바디우 - 인민주의론, 공산주의론, 그리고 국제주의론] 에 관련된 글.
“For two centuries the only political problem has been how to set up in the long run the inventions of the communism of movement?”
이 문장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해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대중]운동의 최종목적은 국가가 해왔던 일을 국가없이 하는데 있다.
- 공산주의는 [대중]운동 밖에 없다.
- [대중]운동 안에서 가시화되는공산주의가 발견한 것을 지속적으로(!) set-up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문제되어왔다.
공산주의적 발견을 지속적으로 set-up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리고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말이 없다.
믿음 외에 내놓은 것이 없다.
바디우가 말하는 모든 가능성을 창조하는 “joy”는 연애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대항해서 집단적으로 싸워 본 사람들도 다 알 것이고. 5.18 민중항쟁을 바디우와 같이 “ästetisch”하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든다.
대중운동안에서 가시화된다는공산주의를 “지속적으로 set-up”하면 필경 뭔가가 조직화되지 않는가? 제도(Institution) 같은 것이? 그리고 이런 제도화된 것은 필경 운동 밖에 존재하게 되지 않는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속혁명”을 해야 하는가? 옛 것을 다 부수는 “문화혁명”?
모든 것을 운동 안에 있게 하는 것이, 모든 것이 반향하는 „한울림(resonance)“이 된다는 것이 나치파쇼운동의, 하이데거식의„움직여짐의 운동“(Bewegung der Bewegtheit)과 뭐가 다른가? 그리고 모든 것을 자기 안으로 흡수한 운동개념이 배출한 것이 [운동 안에 다시 hierachy를 만드는] 이북의 수령관 같은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제도“(Institution)에 관하여 필사적으로 사유한 헤겔로 돌아가는 편이 낫겠다. 그리고 Vernunft와 Wirklichkeit간의 변증법에 대하여 더 생각해 보는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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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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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문장이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운동안에서 발견(혹은 창조)되는 공산주의의 요소를 운동으로 정립(set up)하는 것이 지난 2세기동안의 유일한 정치적 난제였다.. 이런 뜻 아닐까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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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림이 잘 안 그려지네요. 아직 한번도 그려지지 않은 그림이라 그럴 수도 있겠고. ‘자기 투명성”을 갖는 의식을 앞서가는 그 무엇을, 그런 무엇을 필경 뒤쫓아 가야만 하는 의식(Nachträglichkeit des Bewußtseins)을 가지고 과연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질문도 해보고요. 그래서 철학보다는 문학에 그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사사로운 것을 건지는, 구원하는 문학적인 의식, 아도르노를 따르자면 의식의 ‚자기투명성‘ 안으로 녹아 들어가지 않는 그 무엇을 (아픔과 고통을) 건지는 의식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고요….문제되는 문장으로 돌아가서, 두 가지가 불분명하네요. 우선 ‚in the long run’이 어렵네요.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라고 했던 케인즈를 따라 ‘마침내’란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불분명하고요, 다음에 ‚set up‘을 ‚컴에 프로그램을 깔다‘라는 식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면 reverie님과 같이 ‚바로 세우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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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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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님, 불어 모르세요? 번역문 가지고 이러는 우리가 참 불쌍하네요. T.T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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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인 의식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이 표현도 말이 안 되겠네요. 잘해봤자 ‚접근‘할 수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관련 소위 지성인은 그가 갖춰야 할 ‚자세‘, ‚최소한의 도덕‘이 뭘까라는 질문으로부터 한시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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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님, 불어 모르세요? 번역문 가지고 이러는 우리가 참 불쌍하네요. T.T" 그러게요... 불어를 배우다가 그만 둔것 두고두고 후회합니다.부가 정보
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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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원문에 "all the necessary characteristics for us to call it a communism of movement." 이 부분을 보면 바디우는 공산주의 운동을 communism of movement라고 했기 때문에 저 문장은 "지난 2세기 동안의 유일한 정치적 난제는 결국 어떻게 공산주의 운동을 정립할 것인가였다"라고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부가 정보
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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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러면 번역문을 가지고 얘길 해보겠습니다. T.TThe People, Only the People, Are the Creators of Universal History"
"인민이, 오직 인민만이 온 인류 역사의 창조자다." 이렇게 번역을 하셨는데, 민중이, 오직 민중만이 보편적 역사의 창조자들이다 라고 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Communism” here means: a common creation of a collective destiny.
"여기서 “공산주의”란 집단적인 목적을 공동으로 창조한다는 의미다." 이 번역은 공산주의란 공동으로 집합적 운명을 창조한다는 의미이다 라고 번역해봤습니다.
This “common” has two specific traits. First, it is generic, representing, in a place, humanity as a whole.
"이런 “공동”은 두 갈래의 특성을 갖는다. 첫째, 일반적인, 인류를 총체적으로 한 공간에서 대표하는 것이다."
이 번역은 "공동"이란 말은 두가지 명확한 특성을 갖고 있다. 첫번째 특성은, 공간속에서,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유적인 것이다.
There we find all sorts of people who make up a People, every word is heard, every suggestion examined, any difficulty treated for what it is.
"그 공간에서 우리는 인민을 구성하는 각종의 사람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거기선 어떤 말도 귀를 찾지 못해서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어떤 제안이라도 검토되지 않아 무관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어떤 어려움이라도 왜곡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루어질 것이다."
이 번역은 그 곳에서 우리는 민중을 구성하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 곳에서는 어떤 목소리도 소외되지 않고, 어떤 제안도 무시되지 않으며, 어떠한 역경도 있는 그대로 다루어진다로 변역해봅니다.
Next, it overcomes all the substantial contradictions that the state claims to be its exclusive province since it alone is able to manage them, without ever surpassing them:
"다음으로 이런 항쟁은 모든 실체적인 모순을 극복한다. 국가가 자기 전용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국가만이 이런 모순을 관리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한번도 극복하지 못한 모순들이다."
이 번역은 두번째 특성은 국가가 결코 해소하지 못하고 관리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독점영역이라고 주장해왔던 모든 실질적인 모순을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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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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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만이 보편적 역사를 창조한다. 이 말은 유물론적 역사관을 부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라고 봅니다.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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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alhistory“하면 얼른 생각나는 사람이 쉴러가 아닌가 합니다. 괴테의 알선으로 예나 대학역사학교수가 되어 1789.5.26에 있었던 취임강연 말입니다. 취임강연의 제목은 „Universalgeschichte [Universalhistory]는 뭐고 뭔 목적으로 공부하는가 (Was heißt und zu welchem Ende studiert man Universalgeschichte?)“였습니다.여기서 쉴러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을 죄다 모아놓은 것과 ‚Universalgeschichte’를 구별하고, 개인을 유적존재로, 인간(Mensch)을 인류(Menschheit)로 등장하게 하는 것이 ‚Universalgeschichte‘라고 합니다. 즉 이런저런 개인, 족속, 민족, 국가들의 등장하는 무대에 [단수로서의] ‚Universalgeschichte’가 무대에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Universalgeschichte를 „온 민족 및 시대의 영원한 시민/eine unsterbliche Bürgerin aller Nationen und Zeiten)“이라고 칭합니다. 바로 이 „시민“이 유럽중심주의적인 보편성이 아닌가 합니다.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한 줄에 줄줄이 꿰어 달아 놓은 것이죠.
알랭 바디우의 „Universalhistory“는 최소한 이런 역사관의 비판에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 비판의 중심부엔 „인류/Menschheit“ 대신 „the people“ 서 있는데, 문제는 이 „the people“이 어떻게 출현하는가 설명 하지만, 그 출현 조건으로 제시하는 „determination, stubborness, courage“ 등이 결정론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유물론적 사관에서 멀어지기도 하지만, „the people“을 Universalhistory의 중심에 세우는 것을 보면, 즉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인류/Menschheit“ 대신 구체적인 상황에서 출현한 „people“에게 모든 것을 떠 맡기는 것을 보면 꼭 관념론적 사관으로 떨어진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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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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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the people“을 어떻게 번역하는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독어로는 „Volk“되겠는데, 이것은 원래 „적과 싸우기 위해서 똘똘 뭉친 무리“ 정도로 번역되는 „Kriegerschar“란 의미가 있습니다. 헨리 5세가 프랑스 대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몇몇 남지 않는 무리에게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For he to-day that sheds his blood with me Shall be my brother“ (셰익스피어, 헨리 5세)하면서 용기를 북돋으려고 한 연설에서와 같은 의미로 알랭 바디우는 „the people“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부가 정보
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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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런 심오한 뜻은 잘 모르겠고, 집에 맑스는 있기 때문에...독일 이데올로기!!!
맑스가 이렇게 말하죠. "이처럼 우리의 파악에 따르자면, 역사의 모든 충돌들은 생산력들과 교류 형태 사이의 모순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덧붙이자면 이 모순이 한 나라안에서 충돌들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 나라 자체 안에서 그 모순이 극점으로 추동될 필요는 없다. 확대된 국제적 교류에 의해서 생겨난, 산업적으로 발전된 나라들 사이의 경쟁은 발전된 산업을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한 나라들에서도 유사한 모순을 산출하기에 충분하다(예를 들면 독일의 잠재적 프롤레타리아트는 영국 산업의 경쟁에 의해서 현상화되었다)"
저는 이런 것이 맑스의 독특한 역사관이라고 보는데, 바디우의 글은 제가 꼼꼼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랍의 사회변동들, 그리고 그것과 세계의 다른 지역과의 연관성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공산주의 운동 없이 공산주의는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공산주의 운동을 조건짓는 생산력의 발전, 혹은 교류형태들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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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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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바디우를 많이 읽거나하지는 않았지만 제 생각에는 바디우가 엄밀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를테면 사건에의 충실성을 얘기하죠. 전태일을 알게된 대학생이 그 사건에 충실하는 것, 저는 그런 말들이 의심쩍은 것이 사건이 주체에게 주는 효과는 시간이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감소해요.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사건에 충실할 수 없는 반경향들이 더 많은데, 그런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바디우가 어떤 환상들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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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lain to be stands between …”.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어 이건 누가복음 17장 21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너희 사이에) 있다.“라는 말을 인용한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ntos hymin“(너희 안에, 너희 가운데)라는 표현을 놓고 신학자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Colin H. Roberts는 „너희들 손 안에“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이어 하나님 나라는, 이미 깔려있지만 숨겨져 있기 때문에 „의지와 행위“로 밝혀내는데 있다고 합니다 (Colin Roberts, The Kingdom of Heaven, Harvard Theological Review. Vol. 41, Jan. 1948, 1-8쪽 참조). 알랭 바디우의 공산주의 이해도 이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랭 바디우의 공산주의나 로버츠가 말한 하나님 나라나 „의지“와 „행위“에만 집중하고 삶의 토대를 이루는 물질과는 절단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부가 정보
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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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the people“을 어떻게 번역하는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저도 the people을 어떻게 우리 말로 옮겨야할지 고민인데요, 동아시아에서는 "민"이라는 말로 옮기는게 좋겠지만 바디우는 서양사람이니까 그걸 존중해서 바꿔보자면, 서양 정치의 뿌리는 그리스와 로마고, 그리스 폴리스의 정치주체는 시민이고, 로마의 공화정(res publica, 공동의 것이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의 정치주체는 인민이었지만 평민(플레비스)들도 신분투쟁을 해서 인민과 평민이 정치주체가 되었다는 얘길 제가 어디선가 얼핏 읽은 것 같아요. 그런데 맑스는 개인들의 연합, 개인들의 결사체라는 말을 더 많이 써요. 결국 ppl은 개인의 복수잖아요. 개인들인데 앞에 the가 붙으면 "그 인간들" 되겠습니다. 그런데 맑스는 주구장창 "그 인간"을 혐오하기 때문에 개인들의 연합, 개인들의 결사체라는 뜻으로 민중이 어떨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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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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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맑스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표현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유의 문제거든요. 중세의 농노들은 한점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고, 가족도 있었어요. 그래서 전 자본주의적 사회에서는 착취가 아니라 약취(생산물의 일부를 강탈해가는것)가 문제가 되는데,프롤레타리아트는 뺏아갈 것이 없죠. 소유가 없으니까. 프롤레타리아는 대공업의 산물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고 생산수단 즉 자신의 생존을 유지할 원천을 박탈당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the people이라는 표현은 그런 소유관계가 사상되어 있어요. 그래서 별로 좋은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민중도 그렇고, 그래서 자신을 유지할 원천이 없기 때문에 타인의 노동도구들을 가지고 타인을 위해 노동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적절한 표현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노동자라는 말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결국 노동자란 말 그대로 노동하는 사람이잖아요. 자신의 생산도구를 가지고 자신을 위해 노동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노동자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노동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자본주의의 주요핵심인 착취관계가 사상되죠.부가 정보
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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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민중, 노동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어요.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그래서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면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 이 단어를 사용해야한다고 봐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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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ie님이 제시하는 문제는 "소시민" 혹은 "중산층"이란 것의 형성과 함께 살표보고 싶네요. [정리가 되면 더 자세히 ...] 맑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는 찬양하고 "소시민"+ 그 세력에 기대는 각종 이론+이론가들을 혹독하게 비판한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지금까지 "중산층", 혹은 "중도"를 정치의 최대공약으로 삼아 온 것을 살펴보고 싶네요."중산층"이란 애매모호한 현상이 모든 것을 지배할 때 전투에 나서는 "the people"이 그러웠지 않았을까 해보기도 하고요.
다른 면에서는 제국주의와 민족해방운동의 역관계에서 "the people"을 살펴봐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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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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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말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서 이 점도 주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정치적 영역에서, 다시 말해서 뭔가를 쟁취하기 위해서 싸우는 영역에서, 말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을 지시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아방타방을 선명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구호”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구호로서의 말은 역사성을 갖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역사성은 투쟁이 진행중인 현재공간에서, 그리고 미래의 지평을 여는 투쟁 안에서 전수.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민중”이란 말이 이런 구호로서의 역사성을 갖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86년 이었던가, 5.3 인천 집회를 통해서 NL과 PD로 갈라진 진영이 “민중”이란 투쟁구호로 단합되고 87년 6월 항쟁을 가능하게 했지 않나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투현장에 주목하는 알래 바디우에게서 배울 것도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구해다 공부 좀 해봐야겠네요. 레닌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연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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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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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부분을 아랍혁명과 연관시켜 얘기해보면, 아랍혁명의 구호는 거의 대부분 Free Egypt, Free Bahrain .. 이런 식이거든요. 결국 독재자를 퇴진시키자는 얘기인데, 실업율, 빈곤이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해도 아랍혁명의 본질은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혁명의 전선에 중간계급이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랍혁명이 민족해방운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무바라크를 지지하는 사람도 미국을 증오하고, 무바라크의 퇴진을 원하는 사람도 미국을 증오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무바라크가 친미 독재자였기 때문에, 이집트 혁명은 반미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도 없거든요. 왜냐면 시위대 다수가 친미 정치인을 선호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아랍혁명에서 많이 나타는 구호는 독재자에게 죽음을,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원한다.. 이런 구호가 그렇게 급진적인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실업 해소하라, 임금 올려달라, 이런 구호도 그렇게 급진적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그래서 사실 이 혁명은 급진 부르주아지들도 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랍은 주요 산업이 석유나 가스 같은 것들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이 그렇게 강력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노동자들을 포섭할 만한 자원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지배비용이 더 많이 들 수도 있거든요. 이런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는 아랍에서 어떤 세력이 반동적이고 어떤 세력이 혁명적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 나라가 자본주의가 잘 안돌아가면 당연히 자본가들은 힘이 없을테고, 거기 자본가들이 힘이 없다는 것은 노동자들도 힘이 없다는 뜻이겠죠. 자본과 노동은 한 몸이잖아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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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드는 생각은 우리 87투쟁도 그렇고 구호가 민중(People), 민주주의, 개헌, 이런거면 아직 그 사회는 민주주의로 가는 길목에 있다고 생각하는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도 87투쟁 이후에 전국적인 노동자조직이 생겨나고, 그 다음에 민주노총이 생겼으니까 아마 아랍에도 곧 봄이 오지 않을까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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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가지 드는 생각은 아랍 자본주의를 보통 crony capitalism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세계자본 입장에서는 이게 굉장히 문제가 되나봐요. 자본이 독재자 그 주위 몇몇 인간들 수중에 놓여있는게. 그래서 제 생각에는 세계자본 입장에서는 아랍 혁명이 반가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랍혁명이 자본주의와의 투쟁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이번 기회에 아랍자본주의가 더욱 건재해지고 더욱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나라 국민이 너무 못살면 팔게 없잖아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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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서방세계의 금융자본이 위기에 처했는데, 시끄러워야 할 미국과 유럽은 조용하고, 왜 아랍이 들고 일어서는지...국제금융자본의 위기와 아랍봉기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궁금해요. 헝가리 등 국가를 부축하기 위해서 엄청한 자본을 소모한 IMF의 잔고를 채우기 위해서 브라운 영국 총리가 아랍국가를 돌아다니면서 금융자본을 IMF에 좀 주라고 구걸한 것도 겹치고... 뭔가 헷갈립니다. 아랍봉기가 국제금융자본 재편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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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표적인 기업인 100명을 대상으로 하여 아랍세계의 불안정화와 관련 롤란드 베르거(Roland Berger) 컨설팅사가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1. 설문조사대상 기업 약 43%가 북아프리카와 근동에 진출. 이중 21.9% 이 지역에서 원자재와 반품 수입. 18,8% 는 현지생산. 이 지역에 상품수출과 서비스부문을 보면 75% 정도가 이 지역과 관계. 27%가 이 지역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고, 중장기적으로 50%이상이 이 지역이 매우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함
2. 70% 이상이 아랍의 불안화로 인한 직접적인 타격이 없다고 하고 긍정적인 발전의 지속 기대. 16.7%만 동 지역에서의 성장계획 보류
3. 차후 아랍세계의 경제진로에 대한 3가지 가능 시나리오[아래 참조] 관련 53% 이상 온건한 „사풍“을 기대
시나리오 1 – 오아시스 (31%)
긍정적인 경제발전. 민주주의적인 구조 정착. 견고한 중산층 형성. 독일과 의 경제 관계 심화
시나리오 2 – 사풍 (53.6%)
사풍과 같이 먼지를 일으키나 기본적인 구조에는 변화가 없음. Business as usual
시나리오 3 – 사막 (4.5%)
정치적, 경제적으로 [독일에] 부정적인 발전. 사회갈등 심화, 카오스. 이슬람화. 독일 기업 철수 강화.
http://www.rolandberger.com/company/press/releases/Fuehrungskraefteumfrage_Unruhen_arabischen_Welt_d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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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보잘것없는 지식으로는 이집트는 1번에 해당하지 않을까하네요. 무슬림형제단이 이번 혁명은 세속주의 혁명이지 이슬람혁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미국의 승인을 받으려는게 분명하고, 이란도 국민정서가 실제로는 친미라는 얘길 들었어요. 이란 국민 중 상당수가 미국과 유연한 관계를 원하고 미국식 삶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들었어요. 바시지 민병대가 폭력적으로 억압을 하지만 실제로는 사복 차림의 노인네들이 미국식으로 옷을 입은 젊은이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일이 훨씬 더 문제인데 사실 승패는 이미 결정났다고 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다른 지역은 아직 예측을 전혀 못하겠어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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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경제개발협력부장관의 장담에 따르면 북아프리카 중동지역의 "시민사회"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독일 밖에 없음. 독일 외무부하 소위 "가교역할을 하는 조직"(Mittlerorganisation), 즉 각종 정치재단, 전통적으로 오리엔트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학술재단 (베이루트, 이스탄불 등) 등을 통해서 특히 이집트 등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함. 리비아 침공관련 독일과 프랑스/영국과의 이해관계 굴절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분석될 수 있을 것 같네요.근데 문제는 아랍혁명이 자본과의 싸움이라고 하면서 적인 자본이 지금 이 시간에 어떻게 움직이는지 거기에 대한 분석이 없네요. 우리에게 아직 맑스의 정신이 덜 박혀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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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경우에는 아마디네자드가 빈민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강력한 보조금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것 때문에 중산층의 불만이 심했다고 해요. 차라리 그 돈을 풀면 경제가 활성화될텐데. 그리고 아랍지역은 독점과 규제가 심해서 해외투자가 힘들었는데 앞으로는 시장이 개방될 전망이어서 해외투자붐이 일어날 거라는 예측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도 박정희의 죽음을 경제적으로 해석하면 박정희 식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듯이, 아랍에서 퇴진한 독재자들 이후에 들어서는 정부는 실업해소와 물가안정을 이유로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적극적으로 해외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관광, 통신, 금융부문이 개방화될 거라고 하는데, 이미 신흥시장은 이동통신이 포화상태에서 더 이상 팔게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투자자들이 프론티어 마켓이라고 해서 다른 지역을 지금 눈여겨 보고 있다고 하네요.부가 정보
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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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As Jean-Marie Gleize poetically said: “The dissemination of a revolutionary movement is not carried by contamination. But by resonance. Something that surfaces here resounds with the shock wave emitted by something that happened over there.” Let’s name this resonance “event.”"장마리 글레즈는 시적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혁명적인 운동의 확산은 감염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울림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여기서 표면에 부상하는 것은 저 건너편에서 일어난 그 무엇이 발사한 쇼크웨이브에 반향하여 한울림을 이루는 것이다.” 이 울림을 “일어섬”(event)이라고 하자. "
다시 번역했습니다.
아니다. 장마리 글레즈의 시적 표현에 따르면 "혁명운동은 전염을 통해서 확산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진(resonance)의 힘이다. 이 곳에서 수면위로 올라오는 것은 저 너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발생시킨 충격파와 공명하는 것이다." 이 공진을 "사건"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공진(resonance)이란 같은 주파수의 소리가 만나서, 서로 공명하면서 더 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왠지 에로스 현상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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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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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t“도 참 번역하기 어려운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어 „Ereignis“도 마찬가지고요. 출현하는 어떤 현상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 태(Modus)가 수동도 아니고 능동도 아닌 그 중간형태, 수동-능동에 견주어 ‚중동‘이라고 할까요, 고대희랍문법에서 말하는 medium의 형태로 출현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사건‘하면 능동적인 면이 사상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일어섬“하면 너무 능동적인 면이 강조되고. 그냥 구경거리와 같은 것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자기반성적인 출현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우리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 같네요.부가 정보
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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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시는 얘기를 제가 이해할거라고 생각하세요. OTL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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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말해 놓고 뭔 말이지 하고 있는데... 주서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 저걸 다 이해하려면 현상학에 가서 물어봐야 하고 레비나스 등을 통해서 현상학이 불어권에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등등 알아봐야 한다는 잡생각을 하다가 한숨 잠.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