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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단상 2

<의자놀이>를 놓고 진행되는 의자놀이를 어디까지 마르크스 <자본론> 1권 마지막 부분 “이른 바 본원적 축적”에 기대어 해석할 수 있을까?

- “enclosure of commons”가 지적-문화적 공간에서도 진행된다.
- 지적-문화적 공간의 “식민지화”도 땅차지하기(Landnahme) 및 토지분할(Parzellierung)과 유사하게 진행된다.
- 똑같이 나눠주면 본원적 축적의 의미가 사라진다. 한곳으로 몰아주어 땅으로부터, 땅이 없는, 그래서 빌어먹을 수밖에 없는 “자유”가 필연이다.
- 역사적인 사실일 뿐이 배타적/독점소유를 역사 외의 혹은 이전의 사건으로 돌려 법규화하여 신성한 것으로, 손댈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 시민사회/자본주의하의 인간관계는 인격체간의 관계가 아니라 배타적/독점소유관계로 매개된 법규화된 관계다.
- 이런 법규화된 관계의 현상이 계약이다.
- 계약을 통해서 타자의 배타적/독점 소유물이 아니라 이와 관련된 타자의 약속 (사용허락, 양도 등등)을 취득한다. (칸트, 도덕형이상학, 1부,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시원, §20)
- 자유로운, 자유의지만을 갖는 자본주의하의 가상 주체(Subjekt)는 사회현실에서 깔아뭉개진 자(Subjekt)일 뿐이다.

- 이런 상황에서의 주체성고집은 법체계의 기능과 작동에 기댈 수밖에 없다.

- 이런 법체계를 파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진정성의 문제가 아니다. 대의의 문제도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공지영, 혹은 하종강의 인품을 논하거나 둘이서 잘 이야기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자본주의/시민사회의 의식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힘을 보지 못하는 천진난만하고 낭만적인 생각이다. 그 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 힘에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 진정성, 진심, 헌신 등의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인 카테고리들이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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