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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의] 형식적 차원인 <추하다-아름답다>는 내용적으로 사회적 관점을 감추고 있다. [부르주아가] 추한 것을 허용하게 된 동기는 반봉건이었다. 농부들도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랭보에 이르면 그 차원이 보들레르의 <순교자>가 보여준 것보다 더 철저하게 추적된다. 형체가 해체된 시체를 노래한 랭보의 시에서 튈레리엥 궁전으로 쳐들어가는 아낙네는 "그래, 나 병신 악당이다."라고 말한다. 제4계층, 롬펜프롤레타리아트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상황을] 뒤집어엎어 버리기를 욕망할 때 그 모습은 추한 사회의 아름다운 삶의 규범에 비춰보면 거칠고, 원한으로 일그러져 있으며, 강제된 노동, 더욱이 육체노동의 짐에 눌린 굴욕의 상처(Mal)가 깊게 패어있다. [한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서 우아하게]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잔치상을 지불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인권에는 그런 굴욕을 기억하게 하는 패인 상처를, 있는 것을 그대로 긍정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전체에 전쟁을 선포하는 그런 상처를 그들의 [본래] 모습으로 허용하는 [아량도] 얹혀 있다. 예술은 [옛적부터 귓속말로 이어져와] 추하다고 추방된 것을 자신이 다뤄야 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추한 것을 한 구성요소로 짜 맞추거나 좀 부드럽게 하거나 혹은 가장 역겨운 것보다 더 역겨운 유머를 통해서 추한 것과 화해하고 실존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한 것을 자기의 모습에 따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세계를 추한 것 안에서 까발리기 위해서다. 예술이 이렇게 된다고 해도 굴욕에 동의하는 것으로서의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긍정의 가능성이, 깔아뭉개진 자들과의 동정이 쉽게 이런 긍정으로 전복되는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말이다." (ou_topia, 강조역자)
아도르노, 미학이론 (Gesammelte Schriften, Bd. 7, S. 7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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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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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옥 작가의 글<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철의 노동자, 숨죽여 아프다"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0 )
<이코노미 인사이트> "아픈 ‘철의 노동자’ 보듬는 작은 쉼터" -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 치유센터 ‘와락’
(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0 )
<프레시안> "22명의 죽음, 미운 놈은 미워하며 살자"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0510112034§ion=03&t1=n )
하종강 교수 홈피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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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신 글과 인용하신 글이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네요. 아도르노의 글은 예술에 관한 것이고, 이선옥씨의 글은 정치적인 글입니다. 정치는 과학도 아니고 예술도 아닙니다. 바디우는 "정치적 사유에서 매우 중요한 물음은, 물론 어느 정도 우리가 뿌리 박고 있는 민주주의적 요소들 때문에 오늘날 접근하기가 몹시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바로 적들에 관한 물음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적들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적들 말입니다."라고 말합니다.아도르노가 말한 것은 미-추의 분류가 사회적 관점을 감추고 있고 추한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술의 사회전복적 역할입니다. 얼핏 보면 정치는 예술과 같아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정치가 추한 것을 폭로하는 것은 적을 폭로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치는 주로 적의 추함을 폭로하는겁니다. 적은 우리가 추하다고 하고 우리는 적이 추하다고 합니다.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에 대립하는 겁니다. 정치는 이데올로기지만 예술은 이데올로기에 대립하는 겁니다. 마르쿠제는 "예술의 언어는 일상적 언어와 일상적 경험으로는 접근불가능한 것을 소통"시키고 "예술은 새로운 시각, 새로운 지각, 새로운 의식, 새로운 언어를 찾는 요구이며, 기존의 지각형식과 그 대상들을 해체한다"고 합니다. 정치는 일상적 수준에 있는 것이고 예술은 일상에 대립하는겁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에 예술가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되는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하는 것 역시 그들만의 진실한 이유가 있는겁니다. 정치는 증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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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어느 순간 내가 나빠졌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잠을 못 자게 되고, 가장 친한 주변 사람에게 화를 굉장히 심하게 냈어요. 마음에 상처가 될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그게 커져서 아이에게 폭력적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교회를 다니는데 목사님과 식사를 하다가 아이가 밥을 떨어뜨렸어요. 순간 그 사람들 많은 곳에서 식당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어요. ‘야, 이 새끼야!’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가 두려워서 뜨거운 밥을 들고 덜덜 떨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기억이 안 나요. 아이도 치료를 받기 시작했어요. 파업하는 동안 계속 약을 먹었어요. 간헐성 폭발장애, 충동조절장애가 제 병명인데, 충동적으로 화를 내거나 저지른 뒤 후회를 하고, 가끔 공황상태에 빠집니다. 조그만 원룸에서 밤새워 가구 배치를 강박적으로 계속 바꾸거나, 불안감에 잠을 못 자는 거죠.”1년 6개월이 넘는 긴 투쟁은 그와 가족에게 짙은 외상을 남겼다. 지금도 약을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중년의 남자. 남부러울 것 없던 인생에 예기치 않게 날아와 앉은 노동조합·파업·장기투쟁은 되돌릴 수도, 치유할 수도 없는 상처를 남겼다.
<철의 노동자, 숨죽여 아프다>
이 부분에서 아도르노가 생각나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여기에 또 이곳 블로거 mars님의 플라톤 미학에 대한 반발이 겹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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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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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인용하신 글 중에서 제가 읽은 것은 "22명의 죽음, 미운 놈은 미워하며 살자"뿐이지만.. 댓글에 옮겨놓은 이 부분만 보면 이건 그냥 글이잖아요. 이게 아도르노의 예술이론과 무슨 상관인데요. 글을 잘 쓰는 블로거들도 많고 기자도 글을 잘 쓰고 교수 중에도 감동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글을 예술이라고 하진 않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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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바디우나 칼 슈미트처럼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타를 분명하게 하는 게 혁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매우 중요한 카테고리라고 생각하지만, 정치는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를 일반적으로 다루는 거라고 생각합니다.추한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추한 것을 실체화(본질화)하는 글 표현입니다. 아도르노는 바로 그게 아니라는 거죠. 추한 것을 추한 것 말하기 비판을 통해서 비판합니다.
고급호텔, 은행 인테리어는 예술작품으로 넘쳐납니다. 어디에서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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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에 따르면 "예술은 [옛적부터 귓속말로 이어져와] 추하다고 추방된 것을 자신이 다뤄야 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추한 것을 한 구성요소로 짜 맞추거나 좀 부드럽게 하거나 혹은 가장 역겨운 것보다 더 역겨운 유머를 통해서 추한 것과 화해하고 실존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한 것을 자기의 모습에 따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세계를 추한 것 안에서 까발리기 위해서"입니다.고급호텔과 은행 어디에 이런 예술작품으로 넘쳐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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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한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추한 것을 실체화(본질화)하는 글 표현입니다. 아도르노는 바로 그게 아니라는 거죠. 추한 것을 추한 것 말하기 비판을 통해서 비판합니다."이게 무슨 말인지 다시 한번 물어봐도 될까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추한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설마 예술은 아니겠죠. 그렇다면 바바리맨도 예술가겠죠. 아도르노는 바로 그게 아니다. 뭐가 아니라는건지. 추한 것을 추한 것 말하기 비판을 통해서 비판? 무슨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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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호텔과 은행 어디에 이런 예술작품으로 넘쳐나고 있나요?"거기에 님이 마르쿠제를 인용해서 예술이라고 한 작품들이 수두룩하죠. 창의력을 돋군다고...
님은 아도르노를 "아도르노가 말한 것은 미-추의 분류가 사회적 관점을 감추고 있고 추한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술의 사회전복적 역할입니다"라고 하셨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아도르노의 접근/우선, 추한 게 본질적인 게 아니라는 거죠. 어떤 사람이 추한 본질이 있어서 추한 게 아니라는 거죠.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조상이 늘 했던 말이죠. "가난이 죄라고..."
둘째, 그럼 추한 현실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인데, 아도르노는 추한 것의 생산과 재생산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
글이, 그림이 예술인지 아닌지는 전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구분이 있는지도 관심이 없고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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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호텔이나 은행에 예술작품이 넘쳐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때문이 아니라 상품가치때문일겁니다. 고가이기 때문이죠.무엇이 예술인지는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예술에 대한 과학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술론만이 있을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자본론이라는 번역은 유감스러운 것입니다.
아도르노의 미학이론은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번역하신 부분만 봐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주체의 감성을 바꾸어서 타자와 교류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을 합니다.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예술가들이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는게 아닐까요. 오히려 그런 곳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사람들에게 이런게 예술이다고 말하는게 아닐까요. 물론 그 작품들의 대부분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을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당대에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과 고독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나요. 영화제에서 상을 타고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작품들이 대중에게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요. 지루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옛날에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비디오로 빌려서 본 기억이 나네요. 지루해서 보다가 30분만에 껐어요. 전 지금도 타르코프스키가 영화 잘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바흐의 평균율이나 마태수난곡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음악을 저처럼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뭔가 통하는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음악이 왜 좋은지 설명하긴 힘들어요. 하지만 소개하신 칼럼이 예술이 아니란건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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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수정/ "나는 병신이다"의 원문은 "Je suis crapule"이다. 랭보의 시 <대장장이/ le forgeron>에서 인용한 표현이다. 라틴어랭보의 시 [le forgeron] 일부
"C'est la Crapule,
Sire. Ca bave aux murs, ça monte, ça pullule :
- Puisqu'ils ne mangent pas, Sire, ce sont des gueux !
Je suis un forgeron : ma femme est avec eux,
Folle ! Elle croit trouver du pain aux Tuileries !
- On ne veut pas de nous dans les boulangeries.
J'ai trois petits. Je suis crapule. - Je connais
Des vieilles qui s'en vont pleurant sous leurs bonnets
Parce qu'on leur a pris leur garçon ou leur fille :
C'est la crapule. - Un homme était à la Bastille,
Un autre était forçat : et tous deux, citoyens
Honnêtes. Libérés, ils sont comme des chiens :
On les insulte ! Alors, ils ont là quelque chose
Qui leur fait mal, allez ! C'est terrible, et c'est cause
Que se sentant brisés, que, se sentant damnés,
Ils sont là, maintenant, hurlant sous votre nez !
Crapule. - Là-dedans sont des filles, infâmes
Parce que, - vous saviez que c'est faible, les femmes, -
Messeigneurs de la cour, - que ça veut toujours bien, -
Vous leur avez craché sur l'âme, comme rien !
Vos belles, aujourd'hui, sont là. C'est la crap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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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옛적부터 귓속말로 이어져와] 추하다고 추방된 것을 자신이 다뤄야 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아도르노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죠. 현존질서 내에서 추하다고 추방된 것을 다루는 것이 예술의 과제라고 합시다. 라깡은 "분석의 유일한 목표는 진정한 말의 도래이다"라고 합니다. 사람은 아무 말이나 할 수 없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은 사회의 가치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거리낌없이 해서 고립을 자초하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아도르노 역시 사회에서 문화적으로 추하다고 분류된 것들, 그래서 보기 싫으니까 추방된 것들을 예술이 다루어야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이선옥씨 글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니까 님은 글이 예술인지 아닌지 별로 관심없다는듯이 말합니다. 님은 사회를 보는 예술가의 관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는 허구를 창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창조하는 허구는 제2의 현실입니다. 그 허구속에서는 사회에서 추하다고 추방되었던 것들이 복권됩니다. 우리는 타인의 진심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가능하지 않나요. 우리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진실을 알게 되고 그 진실이 나와 너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나요. 김연수 작가의 신작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고 하더군요."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 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날개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면,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테니까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생각도 없었을 테지요."
김연수씨는 현존 질서 내에서는 언어화되지 못하는것,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소통을 가로막는 심연, 그리고 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해 말합니다. 날개는 희망을 의미하고 희망은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이 소설에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 <희망은 날개달린 것>이 인용되었다고 합니다.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영혼에 둥지를 틀고/ 말이 없는 노래를 부른다네,/ 끝없이 이어지는 그 노래를,”
하지만 예술가들은 부질없이 희망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김연수씨의 책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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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 역시 심연을 뛰어넘어 타자의 진실에 가닿으려는 날개/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김연수씨의 말은 정치에 더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해요. 정치는 항상 나의 입장이 있고 너의 입장이 있지 않나요. 그 입장들은 서로 양립불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좌파들은 '깜둥이는 다 게으르다'는 인종주의적 견해에 반발하는데 그런 견해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좌파들은 인종주의자에 대한 견해를 갖고 있죠. 그리고 인종주의자가 그 입장을 포기하지 않는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그도 나와 다를바 없는 사람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지 않나요. 나와 전혀 다른 성장배경을 갖고 있고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나처럼 평균율을 듣고 어느 순간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린다면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이유 외에는 달리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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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치적 지혜가 정확한 의미에서 정치적 지혜라면, 정치적 지혜는 정치의 한계 내에서만 사고할 뿐이다. 정치적 지혜는 더욱 치밀하고 더욱 생동할수록, 사회적 문제들의 성격을 잡아내는데 더욱 더 무능력해진다.""사회적 비참이 정치적 지혜를 낳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반대로 사회적 유족함이 정치적 지혜를 생산한다. 정치적 지혜는 정신주의적인 것이며, 이미 부유한 자, 이미 발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있는 자에게 주어져 있다. ... 한 민족의 정치적 지혜가 더욱 발전되어 있고 더욱 널리 퍼져 있을수록, 프롤레타리아는 - 적어도 운동의 초기에는 반성되지 않고 무익한, 그리고 곧 피로 물들게 되는 반란들 속에서 자신의 힘을 더욱 더 낭비한다. 정치적 방식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는 모든 사회적 악들의 원인을 의지 속에서 찾고, 그러한 악들을 치료할 수 있는 수단을 일정한 국가형태의 전복 속에서 그리고 폭력 속에서 찾는다."
이러한 말에 비추어 볼 때 맑스는 정치가 지배계급의 도구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맑스의 입장은 정치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피지배계급은 지배계급의 술수인 정치의 한계 밖으로 나가야한다는겁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의 한계 내에서 사고하는 자들은 정치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예술을 가차없이 밀어붙어야합니다. 예술을 예술의 영역에 가두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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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길어지고 있네요. 저도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라깡은 "꿈을 깨우는 것은 외부의 소음이 아니다. 실상의 핵심에 접근해가고 있기 때문에 꿈을 깨는 것이다"고 합니다. 라깡에게 실상이란 억압된 무의식을 가리키는 것이고 기존의 상징적 질서로부터 배제된 것입니다. 아도르노가 문화적으로 추하다고 분류되어 추방된 것을 다루는 것이 예술의 과제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여년 전 저는 제 주변의 남자들이 하나같이 <파이란>이라는 영화를 보고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애인과 헤어졌던 한 친구는 이 영화를 보고 거의 울먹이기까지했다고 합니다. 저는 나중에야 이 영화를 사무실에서 혼자 봤습니다. 그런데 제겐 영화 속의 파이란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여성. 그런데 파이란이 강재를 사모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당신이 가장 친절합니다. 저와 결혼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술영화들이 죽어라고 울궈먹는 구원을 조롱하는 것 같았습니다. 파이란 덕분에 강재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갑자기 자기 자신이 싫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강재는 죽죠. 비디오로 파이란의 미소를 보면서. 감독은 강재의 새출발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그냥 끝냅니다. 하지만 많은 남자들은 파이란을 보고 강재와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파이란의 순수한 사랑때문은 아닐겁니다. 파이란은 새로운 시작을 하고싶지만 할 수 없는 한 남자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님은 예술을 모릅니다. 파이란이 예술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예술은 존재의 욕망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현존 질서 내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의 도움으로 현존 질서 밖으로 나가려는 욕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주체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먹고 사는 문제로 끊임없이 억압당해왔을 뿐입니다. 잘못 알고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모르면서도 뭔가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면 그건 일종의 강박증입니다. 님은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느껴집니다. 예술에 대해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걸 보면 예술이 뭔지 모르고있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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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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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이 늦었네요. 많은 걸 이야기해 주셨는데 솔직히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라캉을 인용한 부분에서 아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의 '마리와와 그리스도의 시신(피에타)"와 카라바지오의 "도마의 의심"이 오버랩됩니다. 링크를 겁니다.부가 정보
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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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쉬는 시간이라 보고있는데 말이죠 제 댓글과 링크한 그림이 무슨 상관인데요? 말로하면 안되는 심각한 사연이라도 있나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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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화가 안되서....부가 정보
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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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가 10년전 안더레흐트에서 영입한 루카쿠를 다시 데려오는 것에 관심을 보이자, 루카쿠가 인터 밀란을 떠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인테르는 €120m(약 £100m)~130m 사이에서 버티고 [ https://mtpolice7.xyz ] 있으며, 딜이 성사되면 맨유는 최소 £5m의 소소한 횡재를 볼 수 있다.
당초 루카쿠는 인테르에 머물고 싶어했지만 첼시가 엘링 홀란드를 포기하고 그에게 관심을 돌리게 되자 마음을 바꿔 첼시 재입단을 열망하고 있다.
2011년 첫 영입 후 14년도에 £28m의 금액으로 에버튼에 매각된 뒤, 2017년에도 재영입을 시도한 바 있지만 그는 £75m으로 맨유에 이적하는 걸 택했고 그렇게 2년간 맨유에 머물다 £2m 낮은 £73m으로 인테르에 이적해왔다.
또 자하는 크리스털 팰리스에서의 미래를 재고 중인데 맨유는 추후 발생 가능한 이적료의 25%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맨유가 15년도에 자하를 £6m에 크팰로 보낸 후, 자하는 계속 [ https://mtpolice8.xyz ] 떠나려는 시도를 했었고, 현재 자하의 계약은 23년까지다.
한편 맨유는 선수단이 꽤나 비대해졌지만 이적시장이 열린 첫 4주동안 별다른 판매는 하지 못했다.
올해 맨유는 이적예산 마련에 노력하고 있고 특히 산초와 바란을 데려온 이후부터 선수를 파는 쪽에 중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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