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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kter]
‘성격(性格)’으로 번역해 놓고 무슨 말인지 잘 안 잡혀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소갈머리’(=속알머리)로 번역했다.
개별인의 인품/성품이란 의미로서의 ‘Charakter’는 독일에서, 특히 공론장에서, 이제 거의 사용되지 않고 ‘Persönlichkeit’(personality)로 대치된 것 같다. 나치가 게르만 ‘민족의 성품’(‘Volkscharkater’)과 함께 그 구성원 하나하나 ‘성품’의 우월성을 운운하고, 반면 게르만 민족 외 타 민족과 그 구성원들을 ‘charakterlos’(‘Charakter’가 없는)로 규정하고 다 싹 쓸어버리려고 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한다. ‘Charakter’란 말의 맛이 비리다.
이젠 축구 선수들이 즐겨 쓰는 단어가 된 것 같다. ‘이번 경기에서 우린 Charakter'를 보여주었다.’ 흔히 듣는 문구다. 상대의 월등한 실력 혹은 자기 팀 선수의 퇴장 또는 부상 등으로 힘겨운 경기였지만 투혼했다는 정도의 의미다.
암튼, ‘Charakter’란 말은 이렇게 상대와의 겨루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그 ‘무엇’을 명시하는 것 같다.
‘Charakter’가 이렇게 겨루기 등 상대/타자와의 관계에서[만] 드러나는/나타나는 것이라면, 흔한 의미로서의 ‘성질’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쁜 것을 보고 분노하는 사람을 두고 ‘저 사람 성질 더럽다’하면 뭔가 좀 이상하다. 분노하는 사람이 분노하는 것은 그 사람의 속성이 ‘분노’여서가 아니라, 나쁜 것을 대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나쁜 것을 대하는, 나쁜 것과 관계하는 상황에서[만] 표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표출은 일반적인 ‘기체-본질/성질’이란 서술구조(predicative structure)로 설명이 안 된다. [기독교]신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Manifestation(현현)에 가까운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엔치클로페디아>에서 헤겔은 정신을 Manifestation이라고 하기도 한다. [벤야민이 말하는 <신적 폭력>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겠다.]
이런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어쩜 <자본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가치형태분석(Wertformanalyse)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 개 사물의 속성이 아니라 두 개 사물의 관계에서[만] 드러나는 것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분석한 사람은 주지하다시피 아리스토텔레스다. <범주론> 7장에서 ‘관계자’(pros ti)를 분석한다.
헤겔이 이야기하는 ‘Charakter’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주론>에서 이야기하는 ‘pros ti’는 내용상 같은 것 같다. 양자가 같다는 힌트는 <범주론>을 주해한 심플리키우스에서 얻을 수 있다. 그는 ‘pros ti’와 ‘χαρακτήρ’(Charaktér)를 동의어로 사용한다(Karl Kalbfleisch (Hrsg.): Simplicii in Aristotelis categorias commentarium. Berlin 1907, S. 166 14ff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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