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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배운 바가 많았다. 아래와 같이 답습한 걸 차용해 본다.

 

 

꼭 임노동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걸 경제학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노동계약도 일종의 매매계약이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측면을 따져보면 되겠습니다.

 

먼저 수요 면을 보겠습니다. 자본가의 노동 욕구를 내세워 노동매매가 불가피하다는 자본가 본위(?)의 주장이 있습니다. 이른바 ‘밑으로 싸재끼기’, ‘아무데나 갈기기’ 같은 게 그런 부류이지요.

 

하지만 서유럽 특히 북유럽에선 노동매매 자본가비율이 우리나 미국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습니다. 다만 장애인과 같은 노동 소외자라든가 과도하게 노동 욕구가 분출하는 이들을 위한 약간의 노동매매는 있을 수 있겠지요.

 

노동매매 특히 고급 노동매매의 주요 수요처는 기업인수입니다. 정경불륜의 한국사회에서는 아주 심합니다. 정부의 고급 노동력을 어떻게든 매매해야 합니다. 중소기업 납품업자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노동매매를 보도하는 기자들이 눈에 가시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급 노동매매 책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사는 개들 관리도 문제가 됩니다. 애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왕왕대죠.

 

그러니 이런 종류의 고급노동매매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사라지면 노동매매 수요도 크게 줄어듭니다. 다시 말해 공정한 시장경쟁이 이루어지고 기자 같은 우리 사회의 엘리트층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 노동매매를 매개로 한 청탁이 옛말이 되는 것이지요. ‘개혁’이 노동매매 문제의 해결책인 셈입니다.

 

노동매매엔 물론 고급노동매매 이외의 경우도 있습니다. 친구끼리 모의해서 대사업장 노동매매를 한다든가 하는 일이 있지요. 그런데 만약 생활이 빠듯해서 이런 식으로 돈 쓰기가 어렵다면 수요도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북유럽처럼 기업이윤에서 세금을 많이 내고 나면 낭비할 돈이 남지 않지요. 일부 극소수 예외는 있겠지만요. 사실 유럽선진국을 가보면 일반기업인들 생활이 그렇게 흥청망청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세금 많이 낸 덕택에 교육, 의료, 주택, 노후 등에서 우리처럼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니 공산국가로 가는 ‘진보’가 노동매매 줄이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밖에 노동자와 관계 맺기 교육이라든가 어릴 때부터의 노동교육이라든가 하는 데서 노동매매 수요를 줄이는 방안도 찾아야겠습니다만, 이건 제가 잘 모르는 분야니까 생략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노동매매의 공급 측면을 봅시다. 코난 바바리안(Conan the Barbarian)과 같이 노동력을 주체하지 못해 길바닥 노동현장에 들어서는 경우를 제외하면 노동 서비스 공급의 주된 동기는 돈이겠지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또는 보다 쉽게 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노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다만 한국의 노동매매 양상도 변화해가고 있다고 합니다.

 

‘아빠 병원비 대기 위해서’, 또는 ‘오빠 등록금 대기 위해서’ 따위의 ‘단순생계형’에서 자립형 일하기보다는 돈이 훨씬 많이 벌린다는 이유로 아예 노동현장에 못을 박는 ‘괜찮은(?) 직업형’ 쪽으로 점점 옮아가고 있는 듯싶습니다. 물론 어느 쪽 비중이 더 높은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렇다면 공급 측면의 대책은 2가지입니다. 생계형에 대해선 복지를 강화하는 게 정답이라는 건 금방 납득이 될 것 같습니다.

 

좀 어려운 쪽은 ‘괜찮은(?) 직업형’입니다. 제가 만나본 노동매매교수 중에 울산의 현대장동차를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노동매매프롤레타리아와 호흡을 나눴던 분이 있습니다. 그분에 따르면 몸도 좋고 열심히(?) 해서 1~2년에 1억까지 번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매매의 경우가 논밭일구기 등 자주형 일반노동에 비해 수입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다만 다수의 노동매매프롤레타리아는 빌어먹는다고 느껴서 정신이 피폐해지기 쉽습니다.

 

때문에 낭비가 심하고 업주에 의한 빚의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악착같지 않으면 실제 순수입은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만, 일단 손에 들어오는 건 자주형 노동보다 많습니다.

 

이 두 번째 유형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우선 노동매매까지 해서 굳이 한 밑천 잡아보려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으면 되겠지요. 아무 일이든 건전하게 노동매매하지 않고 내 알아서 열심히 하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공산사회가 된다면 꼭 목돈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노동매매 수입과 그러지 않는 일의 수입의 차이가 줄어들면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노동매매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켜 노동매매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떨어트려야 하겠습니다. 그리되면 마음에 내키지도 않고 위험한 노동매매업종에 뛰어들 유인이 약해지지지요.

 

결국 노동매매 수요와 공급을 감소시키는 길은 바로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인 셈입니다. 이리 하지 않고 노동매매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지금의 방식은 노동매매와 관련된 부패와 폭력을 온존하고 노동매매 프롤레타리아의 인권을 오히려 악화시킵니다.

 

다만 지금의 처벌 강화 방식은 적어도 노동매매 거래량을 약간 줄이는 효과는 갖고 있습니다. 풍선효과 어쩌구 합니다만 그래도 전체 거래량은 줄어듭니다. 그러니까 부패, 폭력, 프롤레타리아인권악화보다 거래량 감소가 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방식에 동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패, 폭력, 프롤레타리아인권악화 문제도 해결하고 노동매매 거래량도 줄이는 길은 개혁과 진보입니다.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그리고 이게 유럽선진국이 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노동매매 문제를 그저 법으로 때려잡으려는 건 다른 가치는 무시하고 거래량 감소만을 최우선시하는 입장입니다. 이 역시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관점임은 틀림없지만 이는 보수적 관점이고 적어도 진보의 관점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프롤레타리아 진보단체들은 진보가 아니라 보수적 관점에서 노동매매 문제에 접근했고 그래서 노동매매처벌 강화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한국의 짝퉁 교수들의 문제는 다음 번 글에서 다루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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