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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강신주의 노숙자대하기 3 - 번역: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일부

강신주의 노숙자대하기가 벤야민의 단편 “종교로서의 자본주의”의 일부와 묘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해당 부분을 번역을 통해서 이해해 보려고 한다.

 

원문은 이렇다.

 

“Die Sorgen: eine Geisteskrankheit, die der kapitalistischen Epoche eignet. Geistige (nicht materielle) Ausweglosigkeit in Armut, Vaganten-Bettel-Mönchtum. Ein Zustand der so ausweglos ist, ist verschuldend. Die »Sorgen« sind der Index dieses Schuldbewußtseins von Ausweglosigkeit. Die »Sorgen« entstehen in der Angst gemeinschaftmäßiger, nicht individuell-materieller Ausweglosigkeit.”

 

강신주 번역

 

“걱정(Die Sorgen)은 자본주의 시대에 고유한 정신병이다. 빈곤, 떠돌이-걸인-탁발승적 행각에서 정신적(물질적이 아닌) 탈출구 없음. (…) ‘걱정들’은 개인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는 불안에서 생겨난다.”


이해가 잘 안되어서 이렇게 번역해 본다.


“근심걱정이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보편적인 것인데]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주의에 고유한 정신병이 된다. 이 정신병은 (물질적인 절망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등을 돌리고 거기서 떨어져 나와] 떠돌이-걸인-수도사 등 가난을 수행함으로써 [정신적인 구원을 찾을 수 있었던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와 달리], 이젠 그런 가난수행을 할지라도 그 안에 빠져나갈 구멍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정신적인 절망이다. 이토록 [구원이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서는 빚쟁이/죄인신세가 지속된다. 바로 이런 “근심걱정”이야 말로 [구원이 없는] 절망에 [스스로] 책임이 있다는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자본주의의 정신병으로서의] “근심걱정”은 [어떤 특정한 개인의 결함에서 기인한] 개인적-물질적 절망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빠져 나갈 수 없는] 공동체 전체에 해당하는 절망 앞에서 어찌할-바-모르고-분주하게-움직이기만-하는-심성(Angst)에서 발생한다.“

 

혹시 강신주가 고도의 자본주의의 정신병에 걸린 게 아닐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본주의에서는 탕자의 귀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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