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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은 치욕이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자기 안의 모든 것이 죽어버린 것과 같은 심적 상태에 빠진다. 모든 것이 마비되고 행동력을 상실한다.
성폭행 피해자 여성은 대부분 신고하지 않는다. 성폭행을 신고하고 가해자가 처벌받도록 하는 걸 원하지 안 해서 그럴까? ‘정신과 감정이 죽어있어서’ 그런가? 아마 두려움 때문일 거다.
스피노자는 두려움 혹은 겁(metus seu timor)을 이렇게 정의한다.
“겁이란 우리가 보다 큰 해악을 두려워한 나머지 보다 작은 해악으로 [대체하고] 피하려는 욕망이다.” (Timor est cupiditas majus, quod metuimus, malum minore vitandi.)
성폭행 피해자 여성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걸 두고 수치심 없는 뻔뻔스러운 여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성폭행 치욕의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보다 더 큰, 즉 사회가 주는 치욕이 두려워서 그럴 것이다.
스피노자의 수치심(verecundia)은 욕망(cupiditas), 기쁨(laetitia), 그리고 슬픔(tristitia)이란 기본 3대 감정에서 욕망에 소속되는 감정인 겁(timor)의 하위 감정이다. 슬픔에 소속되는 치욕(pudor)과 종을 달리한다.
근데 두려움과 치욕을 결합하면 빠져 나갈 수 없는 덧이 된다. 이런 덧을 고대 로마 폭군 타르퀴니우스의 아들 섹스투스가 몸가짐과 정조로 소문난 루크레치아를 겁탈할 때 사용한다. 완강히 버티는 루크레치아에게 ‘어떻게 할래? 계속 버티면 널 죽이고 또 노예 한명을 죽여서 나란히 놓고 네가 그 노예와 놀아나는 걸 눈뜨고 볼 수 없어서 나와 친척관계인 네 남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죽였노라고 할 거다.’ 이 말을 듣고 루크레치아는 겁탈을 감수한다.
그리고 이후 이 사실을 남편과 가족들에게 알리고 목숨을 끊는다. 'fama'(사회적 명성)을 위해서, 자신의 정조를 달리 증명할 길 없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사건을 이렇게 서술한다.
“그래서 그녀가 강간하지 않았지만 강간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정조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치욕으로 인한 무기력[상황의 애매성, 이중구속 등](pudoris infirmitas) 때문이었다. 덧붙이자면 그녀는 그녀 안에는 [결코] 없고 [오로지] 그녀를 침범하는 타자의 추악한 행위로 인해서 [치]욕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이 로마 여성은 [사회적] 명성을 너무나 귀하게 여긴 나머지, 그 사건이 폭행으로 이루어졌지만 죽지 않으면 그녀가 그 일을 기꺼이 받아드렸다고 사람들이 믿을까 두려워했다.”(quod ergo se ipsam, quoniam adulterum pertulit, etiam non adultera occidit, non est pudicitiae caritas, sed pudoris infirmitas. puduit enim eam turpitudinis alienae in se commissae etiamsi non secum, et Romana mulier, laudis auida nimium, uerita est ne putaretur, quod uiolenter est passa cum uiueret, libenter passa si uiueret. 아우구스티누스, 신국, 1.19/강조는 ou)
돌을 던져라. 어는 쪽으로?
추가: 사족이지만 어떤 사람의 수준은 그가 얼마나 정연하게 논리를 전개하는지를 보면 안 보인다. 그가 누구를 대상으로 삼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 손 비트는지. 강신주를 씹는 나도 강신주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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