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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첼란은 아우슈비츠에 갔다. Nach Auschwitz.
아도르노의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nach Ausschwitz”-철학이다.
“문화비평은 [오늘날] 문화와 야만 간의 변증법이 다다른 마지막 단계에 맞서있다: nach Ausschwitz 시를 쓴다는 건 야만이다. 이런 문화비평은 오늘날 왜 시를 쓸 수 없게 되었는지 발언하는 인식 역시 부식(腐蝕)한다.”(„Kulturkritik findet sich der letzten Stufe der Dialektik von Kultur und Barbarei gegenüber: nach Auschwitz ein Gedicht zu schreiben, ist barbarisch, und das frisst auch die Erkenntnis an, die ausspricht, warum es unmöglich ward, heute Gedichte zu schreiben.“) („Kulturkritik und Gesellschaft“, (1951). In: Adorno: Gesammelte Schriften, Bd. 10.1. Frankfurt/M. 1980. S. 11-30)
Nach Ausschwitz. 번역하기 어렵다. 아우슈비츠 이후? 아니다. 전치사 nach 뒤에 지역이름이 따르면 보통 방향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Nach Jerusalem!”(예루살렘으로!)에서와 같이 특별한 지역이나 도시이름이 따를 경우에는 그 도시나 지역이 상징하는 것을 취하려 간다는 긍정적인 방향성의 의미가 있다.
“nach Ausschwitz.” 그럼 아우슈비츠에 가란 말인가? 그렇다. „Nach Ausschwitz ein Gedicht zu schreiben, ist barbarisch.“ 아우슈비츠가서 시를 쓰는 행위는 야만이다. 정말 그렇다.
추상과 보편으로 접근할 수 없는 사건이 아우슈비츠다. 정리하여 뒤로 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래서 거기에 가야만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는 아우슈비츠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다. 아우슈비츠가 과연 통과할 수 있는 문인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아우슈비츠에 간 첼란은 ‘우리’가 되어 함께 죽음의 우유를 마신다. 그리고 ‘죽음의 푸가’를 쓴다.
“아우슈비츠가 개별적인 인간성의 역사적인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첼란의 글이 여하튼 여전히 시로서 가능하려면 개별적인 인간성의 지속가능성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또한 출발점으로 삼으면 죽음의 푸가는 그가 말하고 있는 소름끼치는 것을 필연적으로 놓친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필연적인 일탈에 고귀한 도덕적, 감성적 가치를 인정할 것이다. 그 가치는 시에 스며있는 의식, 즉 바로 저 모순이야말로 지양될 수 없다고 철두철미하게 두루 인식하는 의식을 통해서 규정된다. 죽음의 푸가는 제목과 형식에서 이 모순을 받아들였다.” ("Geht man davon aus, dass Auschwitz das geschichtliche Ende der individuellen Humanität bedeutet - doch sie hat viele Enden, sie geht nicht auf einmal zugrunde -, Celans Text ihre fortdauernde Möglichkeit aber voraussetzen muss, um als Gedicht überhaupt noch möglich zu sein, so wird man zwar zugeben müssen, dass die Todesfuge das Grauen, von dem sie spricht, mit Notwendigkeit verfehlt; zugleich aber wird man diesem notwendigen Verfehlen einen hohen moralischen und ästhetischen Wert zuerkennen. Er ist bestimmt durch das volle Bewusstsein, welches das Gedicht selbst von der Unaufhebbarkeit dieses Widerspruchs besitzt. Ihm verdankt die Todesfuge ihren Titel und ihre Form." Peter Horst Neumann: Schönheit des Grauens oder Gräuel der Schönheit? In: Geschichte im Gedicht. Texte und Interpretationen. Herausgegeben von Walter Hinck.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79. Seite 230-237. 재인용: http://www.celan-projekt.de/)
첼란의 죽음의 푸가를 모르고 바흐의 푸가를 즐기는 건 역겹다. 윌프리드 오웬의 시를 소화한 벤자민 브리튼의 ‘전쟁 진홍곡’(War Requiem)을 모르고 카톨릭 ‘진홍곡’을 즐기는 건 역겹다.
사회주의는 이런 지양불가능한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다 자본주의 아래서만 일어난 일이라고? 여기 일몽님이 레닌의 ‘어쩌고 저쩌고’하는 만트라에 구토하는 이유가 있다. 아우슈비츠에 간 부르주아의 사유에 한 참 뒤져 있다. 사회주의 지속가능성 혹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사유해야 하는 사회주의의 지양불가능한 역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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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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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에서 individuelle Humanität를 개별적인 인간성이라고 옮기지 않습니다. individuell은 "제각각의, 따로 떨어져 있는, 분리된"이란 의미에서 개체적 인간성으로 옮기며 이 말은 헤겔이 현대사회의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개인주의를 비판할 때 쓰는 말입니다. 정신현상학의 이성에서 쾌락의 향유 이 수준에 있습니다. "아우슈비츠가 개체적 인간성의 역사적인 종말을 의미"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개인주의의 종말을 의미하는 동시에 전체주의로의 귀결, 즉 파국을 말합니다. 반면 문학에서 다루는 것은 개체성이 아니라 개별성(Einzelheit, singularité)입니다. 이 개별성은 특수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의 고유한 진실입니다. einzel은 유일하다는 뜻입니다.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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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기면서 망설였던 부분을 정확히 지적해 주지네요. 처음엔 "한사람 한사람 ...' 이렇게 했었는데. 실재론적인 사유, 그리고 이런 사유의 연장선에 있는 "현재론"(Präsentismus)적인 사유를 거부하는 사유는 '인간성'을 타고날 때 부터 가지고 있는(innate) 권리로 소급 하지 않고 '만남의 관계'에서 그때 그때 발현되는 인간성을 이야기 하기 때문에 "한사람 한사람의 인간성"에서 감지되는 모순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좀 고민이었습니다. 헤겔 인용으로 보다 더 정확해졌네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가 말하는 인간성에 대하여 좀 더 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긍정적인 차원에서는 르네상스의 l'uomo universale가 아닐까 하고요. 그리고 이것과 관련해서 부르주아의, 특히 독일 부르주아의 교육/교양(Bildung) 이념을 좀 더 숙고해야 할 것 같구요.
오늘 아침 밥상에서 짝지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렸을 때 짝지의 엄마는 거지가 오면 항상 밥상을 차려 주었다고 합니다. 짝지는 짜증이 났었고. 밥상과 밥그릇이 더럽혀 진다고. 짝지 엄마는 "그럼 땅바닥에 앉아서 먹어야 하냐? 아가, 우리와 다 똑 같은 사람이다. 돈이 없어서 가난해서 그렇지." "거봐, 우리와 같은게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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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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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은 지금 이런 거창한 얘길 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굉장히 극우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합니다. 전세계 빈민들은 단결해야 합니다.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57653.html
"학생, 주부 등 비경제활동인구의 안전사고시 피해배상액 산정 기준이 불합리해 배상액이 너무 낮게 책정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벼운 목숨값’은 안전사고를 간접적으로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는 지적이다."
http://www.technbeyond.co.kr/articleView.html?no=2014100210177173016
"로봇이 정말 위협이 될까?"
우리는 로봇으로 대체되어야 하나요. T_T
http://www.paulcraigroberts.org/2014/10/03/bad-news-jobs-front-paul-craig-roberts/
We are looking at the workforce of a third world country with the vast bulk of the jobs in low-pay domestic service jobs. People working these part-time and independent contractor jobs cannot form a household or obtain a mortgage.
제3세계와 싸워야하나요? T_T
경쟁력 없는 인간은 멸종하고 말거에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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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사태에서 죽은 사람들의 배생액 산정 기준이 '합리적'이었겠죠. 매니져를 살리러 갔다고 죽은 소방수와 그 매니져의 배상액은 하늘과 땅 차이.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했다면 얼마를 더 벌었을까가 기준이었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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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도 일시적일 뿐...독일 기관사노조 파업 전야에 이런 기사가 있네요. "무인 기차운행 - 파업으로부터 자유로운"(FAZ, http://www.faz.net/aktuell/wirtschaft/unternehmen/frei-von-streiks-unbemannte-zuege-ersetzen-lokfuehrer-13187896.html) 어쩜 "아침엔 낙시하고 오후엔 사냥하는 일"만 남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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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래 기사를 보니 아직 로봇은 비싸서 한국에서는 시기상조일 것 같고 부자들에게나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갑자기 천공의 성 라퓨타가 보고싶네요.http://www.msn.com/en-us/news/world/songdo-south-korea-city-of-the-future/ar-BB674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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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도 한번 보세요. 제가 옛날에 이거 보고 기절했어요. T_Thttp://hongwrong.com/subdivided-flats-hong-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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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갑부 민주주의자베이징의 협박과 중상모략에도 불구하고, 지미 라이(Jimmy Lai)는 홍콩 학생시위에 대한 지지와 왜 그들의 성공을 바라는지에 대해 털어놓는다.
http://online.wsj.com/articles/hugo-restall-hong-kongs-billionaire-democrat-1412375777
중국이 홍콩의 친민주주의 시위를 진압한다면, 언론계 거물 지미 라이가 수배자 명단 상위에 올라갈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소유한 일간지 애플데일리와 넥스트매거진은 보통선거권 운동을 응원한다. 해커들이 훔친 재무기록에 의하면, 그는 홍콩의 친민주주의 정당들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국영언론은 라이가 미국의 지시에 따라 “색깔혁명”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번 주 라이씨의 활동은 추적하기 어렵지 않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는 정부청사 밖의 농성장에 있다. 주로 그는 “물품 진열대”로 분류된 임시공급설비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연설을 듣는다.
금요일 아침에 나는 농성장에서 일본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에세이를 읽고 있는 라이씨를 만났고 근처 푸드코트로 장소를 옮겨 담소를 나누었다. 친중 신문의 사진기자 두 명이 우리의 만남을 가까이에서 촬영했다.
라이씨는 이 운동의 조건을 창출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지만, 대학생들이 확고히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에 만족하고 있다. “저는 학생 지도자들에게 말을 걸지 않습니다” 그가 말한다. “제가 주도권을 쥐면 안돼요.”
2013년 2월 초, 라이씨와 홍콩의 주요 민주주의 운동가들은 교수 두 명과 침례교 목사가 주도하는 느슨한 조직인 센트럴 점거운동을 지지했다. 이 운동은 교육행사와 집회만이 아니라, 중국정부가 약속한대로 2017년에 홍콩인들에게 보통선거권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시민불복종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8월 31일 베이징이 자유선거를 배제한 후, 대학생들이 가장 먼저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센트럴 점거운동과는 달리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교수들은 만 명이 시위에 참여하길 바랐다.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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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씨에게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해커들이 훔친 이메일에 의하면, 그는 “학구적이고 온화한” 센트럴 점거운동 지도부와 약간 어색하지만 항상 잘 어울렸다. 그는 독학자이며, 자수성가한 갑부이고, 활동가 스타일이다. 라이씨가 66세가 아니라 20세라면, 그는 분명히 이 문제 학생들의 가장 선두에 있을 것이다.라이씨 가족은 1960년에 12세였던 그를 중국 광둥성에서 홍콩으로 몰래 데려왔다. 하지만 라이씨는 학교에 가는 대신 공장에서 일하며 버텨야했다. 점점 출세해서 섬유산업에 진출한 라이씨는 갭(Gap)처럼 아시아 지역에 의류체인점을 갖고 있는 지오다노를 설립했다. 그 뒤 언론계에 뛰어든 그는 홍콩에서 베이징을 비판하는 유일한 언론으로서 입지를 확보했다. 그 대부분이 중국 공산당 최고위자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하는 홍콩의 부유한 자본가들 속에서 그는 보기 드문 존재다.
라이씨는 화를 자초한 덕분에 친중 언론으로부터 정기적으로 협박당하고 있다. 그는 이번 주 자신이 홍콩 주식을 공매해서 현재의 혼란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 경쟁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삼합회라고 알려져 있는 현지 폭력조직으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있다. 작년에 라이씨의 주택 진입로에 세워 둔 차 한 대를 부셔놓고 현장에 손도끼와 칼을 두고 간 것은 경고로 보인다. 2008년에 경찰은 본토에서 온 한 남성을 체포했는데, 그는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라이씨를 암살하기 위해 보낸 사람이라고 경찰은 주장했다.
최근 라이씨는 학생 시위의 열정적인 이상주의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지만, 그는 현재 상당히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교착상태의 준비작업을 한 것은 센트럴 점거운동이라고 믿고 있다. 라이씨는 지난해 시작된 소규모 점거운동 덕분에 보수적인 홍콩인들이 시민불복종이라는 관념을 더 수용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많은 중산층 주민들은 (인간이 정한 법률보다 한층 높은 것으로 여겨지는) 도덕률을 지키기 위해 법을 위반하는 것조차 본능적으로 꺼린다. 지난 18개월간 교수들, 라이씨의 언론, 조셉 젠(Joseph Zen) 추기경은 평화적 반란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사람들은 저항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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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젊은이들은 행동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었는데, 부분적으로는 문화적 이유 때문이었다. 현대 중국의 모든 학생운동은 천안문 광장에서 있었던 최초의 친민주주의 시위인 1919년 5.4운동으로부터 도덕적 권위를 끌어낸다. 이 운동은 정치적 각성의 시작이었으며, 일본 침략과 그 뒤 공산주의 혁명에 의해 짓밟히기 전까지 20년간 번성했다.그 빛나는 모범은 공산당이 학생들과 그 지지자들에게 탱크와 기관총을 사용했던 1989년 6월 학살로 상쇄되었다. 1997년에 영국이 반환한 뒤 중국의 특별행정구역이 된 홍콩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까? 도시는 희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 경찰이 정부청사 인근 해군본부 구역에서 시위대를 봉쇄하면서 운동은 소름 끼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결국 많은 시위자들이 포기하고 홍콩섬 주간선도로 한복판에 주저앉았다.
그 날 늦게, 진압경찰은 후추스프레이와 최루가스로 도로를 점거한 학생들을 해산시키려 했고 고무탄을 쏘겠다고 위협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소식이 즉시 알려지면서, 더 많은 학생들이 현장으로 몰려 왔고, 그 중 다수가 후추스프레이를 막기 위해 우산을 가져왔다.
최루가스의 공격을 당한 사람들 중에는 라이씨와 홍콩 수석변호사 서열 1위이며 오랫동안 친민주주의 국회의원으로 알려진 마틴 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정부청사본부로 진입하려고 했다”고 라이씨는 말한다. “우리가 멈추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우산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군중이 자리를 잡자마자 경찰이 경고도 없이 최루가스를 쐈다고 말한다. “쿵하는 소리를 내면서 최루가스통에 등을 맞았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어요. 너무 놀라서 숨을 헐떡였어요. 그 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군중은 50야드 정도 밀려났지만, 충격과 고통이 가라앉자 다시 몰려들었다. 라이씨는 이런 광경이 약 스무 번 반복되었다고 추정한다. 세 번째 공세 후에는 모두 가스에 대한 두려움을 잃었고 최루가스를 피하기 위해 불과 몇 야드밖에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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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학생들 일부가 해군본부 구역에서 물러났을 때, 홍콩의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위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센트럴 점거 지도자들이 시위대의 안전을 위해 해산하라고 요청했지만, 학생들은 거부했다. 오히려 과도한 무력 사용에 격분한 평범한 시민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월요일에 정부는 대중적 지지를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경찰을 철수시켰다. 그 후 며칠 동안 부모들이 민주주의의 실천을 구경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데려오면서 시위장소는 주민들의 모임장소로 변했다. 젊은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를 모으고 거리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시위는 익명의 시민들이 기부한 산더미 같은 물건들 덕분에 유지되고 있다. “이 운동에 한 푼도 쓰지 않았지만, 물품이 저절로 계속 오고 있다”고 라이씨는 말한다. 학생들은 둘 곳이 없다는 이유로 시위용품으로 가득 찬 트럭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시위의 주목할 만한 측면 중 하나는 자발적 청소에서부터 평화적 시위를 촉구하는 연설까지, 규율을 보여주는 조직적 감각이었다.
“이 운동은 지도자가 필요 없다”고 라이씨는 요약해서 말한다. “경찰의 어리석음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해요.”
금요일 밤에 어리석은 일이 또 벌어졌는데, 이번에는 친중 폭력배들이 홍콩섬과 홍콩의 또 다른 중심지인 구룡반도에 있는 학생들을 동시에 공격했다. 폭력이 민주주의를 위해 더 많은 지지를 결집할지 아니면 사람들을 위협해서 쫓아낼지는 여전히 두고 볼 일이다.
또 금요일에는 학생들이 홍콩정부 서열 2위인 캐리 람(Carrie Lam) 정무부총리와 협상을 시작하기로 동의했다. 라이씨는 정부가 이 협상을 질질 끌어서 시위대가 지치게 하거나 혼란 때문에 대중이 점점 더 짜증을 내게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화가 결렬되면 학생들은 다시 기지개를 펼 수 있을 것이다. “협상이 실패하면, 사람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라이씨는 말한다. “이 운동이 유지되는 건 실망이 계속되고 약속을 어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일반 주민들의 불편을 덜기 위해 처음 시위가 벌어졌던 해군본부 구역과 통합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언제라도 난로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는 점화용 불씨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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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베이징이 양보해서 2017년에 민주주의를 승인하다 하더라도, 지난 주의 경험은 한 세대를 영원히 바꾸어놓았다. 투쟁의 공유는 그들이 결코 공산당이 원하는 말없고 순종적인 시민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라이씨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지금까지는 베이징 식당이 주는 대로 먹을 수밖에는 없는 손님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모두 주방에 들어가 스스로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건 완전히 다른 겁니다.”중국의 새로운 최고지도자 시진핑은 민주화의 영향력이 본토에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홍콩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라이씨는 불만과 공개적 저항이 시씨의 권력에 훨씬 더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내부 투쟁이 지속되면 그는 홍콩 사태를 빨리 해결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씨는 시씨가 유혈진압 없이 타협을 추구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렇게 되면 실용적 변화를 기꺼이 수용하는 계몽적 지도자로서의 자격은 더욱 상승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라이씨는 가능한 최상의 거래와 홍콩인들의 동원을 위해 대결을 지속하는 것을 선호한다. “우리는 행동을 통해 사람들을 움직이는 상을 그려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설득을 해서 사람들을 행동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탱크가 홍콩에 들어온다면? 라이씨는 이런 위기일발의 순간에 홍콩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몇몇 나이든 친민주주의 지도자들 중 하나다. 지금의 상황이 1989년 천안문 광장 학살과 유사하기 때문에 등골이 오싹하다. 25년 전 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에서 왜 전술적으로 후퇴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중이다.
라이씨는 홍콩학생들이 더 세련되고, 집합적으로 보면 홍콩의 친민주주의 진영에 대기선수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가 오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노장들은 운동의 분위기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씨를 비롯한 구세대는 학생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주장을 듣는 것으로 만족한다.
최근의 사건으로 계속 논쟁이 유발되면서 친구들과 심지어 가족 사이에도 시위를 지지할 것인지를 놓고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홍콩인들이 동의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이상주의적인 학생들이 다치지 않게 보호하는 것이다. 사반세기 전 베이징에서처럼, 젊은 세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바치려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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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세계의 빈곤(Das Elend der arabischen Welt)FAZ 사설, 마르쿠스 비켈(Markus Bickel, 구동독 청년/청소년 조직 FDJ의 기관지 "웅에 벨트'(Junge Welt)에서 분리에 나온 "정글 세계'(Jungle World)에서 기자생활 시작.
http://www.faz.net/aktuell/politik/ausland/naher-osten/kommentar-das-elend-der-arabischen-welt-13190924.html
“이슬람 국가”에 대한 투쟁에서 서방은 [다방면의] 압박에 처한 저항세력을 지원해야 한다. 아랍 자유투자들이야말로 그들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이슬라파시스들의 살인적인 광기에 대항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요새다.
아랍의 수니 종교지도자들은 “이슬람 국가”의 도전에 필적할 수 없다. 얼마 전에 아랍 세계를 파괴하기 위한 “시온주의자들의 공모”라고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 사원 대주교(최고 셰이크)는 바로 이 테러그룹을 들먹였다. 황당무계한 일이다. 절멸전쟁 확대전에서 그 어떤 소수민족도 가만두지 않는, 미국과 영국 국민들 외에 이슬라엘인 한명을 참수한 테러그룹을 두고서 말이다. 사우디 아랍의 최고종교지도자 (대무프티)는 이 테러그룹을 “이슬람의 적 일번”으로 삼는다. 살인을 자행하는 “신의 군사”들에 의해서 기독교인들과 야지디인뿐만 아니라 시아와 수니 “이탈자”들까지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우물안 개구리적인 태도(Selbstbezogenheit)가 새로운 게 아니다. 수니 이슬람은 깊은 정체성위기에 빠져 있다. 수니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최종심급이며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지하디스트를 격퇴하기 위한 수단으로 텅빈 판박이 말과 천박한 공모이론 외에 아무것도 떠 오를지 않는다는 건 징후적이다.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튀니지아, 바레인, 그리고 예멘에서 사람들이 일어나 그들의 욕망을 표출하기 시작한 지 1000날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근데 이상하다. 아라벨리온의 시작이 수십년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이건 봉기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시계를 다시 0시로 돌려 맞춘 권위주의적인 지배자들 때문이다. 최고 수니 종교학자들은 저런 지배자들의 행동거지에 손을 얹고 축복하지만 도덕적인 교정 기제로는 탈락한다.
군사적 이슬람주의자들과의 이데올로기 전쟁에서의 승리여부는 종교적인 세력이 아니라 정종분리를 원하는 세력에 달려있다. (...)
대 이슬람파시스트 요새
(...)“이슬람 국가”의 부상은 아랍 세계의 빈곤의 표현이다. 무제한 “대테러전”은 이집트 대통령 시시, 사우디 아랍 왕 압둘라, 그리고 시리아 아사드의 물레에 물길을 터주는 일일 것이다. 반혁명의 동맹은 지하디스트들의 범죄행위를 지적하면서 다시 반복되는 억압의 물결을 정당화하고 대중에게 “신의 군사”들은 아무런 결함이 없는 이슬람국가의 이질물이라고 호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외부로부터의 침입자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테러리스트들과 합류한 아랍 수니가 다수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라케쉬에서 마나마에서 이르기까지 호의를 얻고 있다. “이슬람 국가”는 오로지 아라벨리온을 야기한 이유들이 존속하기 때문에 저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정부의] 비리, 비투명성, 기능장애 및 인권경멸이 아직 아랍 정권들의 특징이다. [이집트에서의] 억압이 시시 정권아래 다시 국가공론이 된 지금 이집트의 감옥에서는 이미 차세대 지하디스트들이 자라나고 있다.
이건 아랍의 자유투사들이 그들의 취약성에서 불구하고 가장 신뢰할 만한 對이슬람파시트 요새가 되기 때문에 더욱 비극적이다. [아라벨리온의] 결과는 분명 [정종분리가 아니었다]. 무슬림형제들이 이집트에서 혁명의 승자로 출현했다. 튀니지아와 리비에서도 역시 정치적 이슬람이 우세를 획득했다. 그러나 또 분명한 것은 무하마드 무르시의 축출을 위한 구데타의 과정에서 일어난 대학살 이후에 비로서 수많은 사람이 호전적인 세력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것이다. 이후 이 지역은 불에 타오르고 있다. 서쪽 끝 리비아에서 시작해서 시리아와 이라크를 넘어서 동남 끝 예멘에 이르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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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이슬람주의자들과의 이데올로기 전쟁에서의 승리여부는 종교적인 세력이 아니라 정종분리를 원하는 세력에 달려있다"고 하지만 이슬람 국가는 군사조직인데 이데올로기 전쟁이 아니죠. 정종분리를 원하는 세력은 자유주의자들을 말하는 것 같은데 정규군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어떻게 IS와 싸우죠? 잘 이해가 안되네요.부가 정보
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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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현대판 카와리즈파라고 해요. 아래를 보면 카와리즈파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http://www.islammission.org/islam/history/sects2.htm
그러나 IS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복종을 요구한다기보다는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서 살인행각을 저지르는데 파시스트는 이런게 아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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