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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설 §27

 

(§27) [의식이] 이렇게 학문의 [추상적인] 바탕인 보편성의 경지로 올라오는[1], 달리 표현하면 지의 생성을 서술하는 것이 <정신현상학>이다. 지가 취하는 첫 모습, 달리 표현하면 덜 떨어진[2] 정신이 취하는 모습은 감각적인 의식으로서 정신과 완전히 단절되어[3] 있는 모습이다. [사태가 이렇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의식이 본래적인 지가 되기 위해서는, 달리 표현하면 의식이 학문이 향유하는 터전인 순수한 개념을 [잉태하고] 출산하기 위해서는 머나먼 길을 떠나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들과 함께] 자신을 챙기고 또 챙기는 노고를[4]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 이와 같은 [의식이 스스로 하는 운동인] 생성[을 서술하는 것]은 의식이 취하는 내용과 [이와 함께] 의식 안에서 드러나는 [의식의] 여러 형태를 진행순서에 맞춰 차례차례 정리해놓은 것이 될 터인데, 영리하고 잽싼[5] 혹자는 이것을 비학문적인 의식에 고삐를 채워 학문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쯤으로[6] 생각할 수야 있겠지만,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 또 혹자는 [이 서술을] 학문의 초석을 다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학문에게는 [이 서술이][7] 뭔가 좀 다른 것이다. 더구나 학문의 초석을 다진다는 것을[8] 잘못 이해한 나머지 절대적인 지의 출발점을 알아차려 학문에 바로 탑승했다는 신바람에 총알 날리듯 선언을 펑펑 날리면서 다른 입장에 대해서는 아예 거론할 필요조차 없고 이런 총알 같은 선언으로 그런 것들은 이미 다 처리됐다는 식의 신바람은 더욱 아니다.



[1] 원문 überhaupt>. <überhaupt/자세한 것들은 다 빼놓고, 어쨌든>는 우리말로 번역하기 힘든 독어에 속한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쓰여질 때  더욱 그렇다. 이 낱말은 <über houbet>란 숙어가 한 낱말이 된 것인데, <머리 없이/위로, 하나하나 자세한 것을 빼놓고, 통째로>라는 의미다. 이런 의미로 원래 가축매매에서 사용되었고, 17세기까지도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다. 당시 <überhaupt kaufen>하면 고기를 한 근, 두 근 사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를 <통째로 사다>라는 의미였다.

[2] 원문 . <덜 떨어진 놈>이란 의미.

[3] 원문 . 의 어원은 <단절>을 의미하는 인도게르만어 . 

[4] 원문

[5] 원문 ächst>

[6] 원문 . 공장노동자는 숙련면에서 두 갈래로 구분되는데 전문.숙련노동자> 가 그것이다. 여기서 이란 보통 컨베이어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작업자리에서 직접 어떤 동작을 해야 하는가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접두어 에 이런 의미가 있다. 그래서 <고삐를 채우다>라는 표현을 첨가해 번역해 보았다.

[7] 원문 Begründung, der Wissenschaft>. <또박또박 읽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한 대목이다. 처음에 ündung> 다음에 오는 쉼표를 그냥 잘못 찍은 쉼표로 생각하고 <Βegründung der Wissenschaft/학문의 초석다짐>으로만 이해하였는데, 꼼꼼한 헤겔이 아무런 생각 없이 쉼표를 찍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겨 자세히 살펴보니 내용이 정확하게 잡힌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헤겔이 이야기하는 참다운 <학문>에게 뭔가 좀 다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쉼표가 반드시 필요하다. 요는 <정신현상학> <학문>과의 관계가 특별한 것이라는 점이다. 헤겔이 말하는 학문을 <논리학>으로 이해하고 <논리학> <정신현상학>의 관계, 달리 표현하면 <정신현상학>이 헤겔의 철학체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논란이 있다. 혹자는 [특히 Pöggeler] <정신현상학>의 서론과 서설간에 체계적인 단절이 있다고 주장하고 <정신현상학>을 헤겔 철학시스템에서 제외하는 경향도 있다. 이 문제는 의식의 운동이 정말 스스로 하는 운동인가라는 질문과도 연계되어 있다. 지나가는 말이지만 <또박또박 읽기>와 인문과학발전은 정비례관계인 것 같다. 독어로 <읽다>인데, 이 낱말을 원래 이삭과 같이 흩어져 있는 것을 <주워 모으다>라는 의미다. 옛날 배고픈 시절에 추수한 논밭에 흩어져 있는 씨알 하나를 놓칠까 봐 눈을 부릅뜨고 찾아 헤맸던 배고픔으로 책을 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독일 학자들은 이런 배고픔으로 책을 읽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라는 낱말에 스며있는 의미 때문일까?   

[8]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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