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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설 §31

(§31)[1] [대상을 찍어 올려 박제하는 식으로] 확인한 것은[2] 바로 그렇게 겉으로만 접해본 것이기[3] 때문에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이[4] 아니다. 인식하는데 있어서 무언가를 이미 접해보고 알려진 것으로[5] 전제하거나 또는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자신을 속일 뿐만 아니라 남을 기만하는 아주 천박한 행위다. 이러한 지는[6] [앞으로 나아가려고 무지 노력하고] 우왕좌왕하는 온갖 논설을 갖다 대지만 웬일인지 발전은 하나도 없고 제자리걸음만 한다. [이런 지가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 [모든 것을] 주관이니 객관이니 하는 식으로 갈라놓고, 그리고 [이런 구분 안에서] 신이니, 자연이니, 오성이니, 감성이니 하는 것들을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라고 텁석 물어[7] 바탕으로 삼고, 그렇게 갈라놓은 것을 확고한 출발점과 귀착점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때 운동은 고정되어 있는 두 점 사이를 왔다갔다하는데 그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만 뭔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을 갖게 할 뿐이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파악이나 조사란 각자가 따로따로 하는 일로서 고작 자신이 말한 것을 자신의 표상에서[8] 찾아볼 수 있는지 그것이 그렇게 보이는지 또는 접해본 일이 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는지 따져보는 일일 뿐이다.



[1]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헤겔은 항상 누군가를 겨냥하여 말을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그 대상이 누군가 정확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만 정확히 잡히면 이해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문단에서는 §30에서 이야기 된 두 가지 ür-Sich 의식형태>, <덜 떨어진/unmittelbar> ür-Sich 의식형태>와 자신을 보편성으로 이해하는 ür-Sich 의식형태>에서 먼저 덜 떨어진 ür-Sich 의식형태>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진다.

[2] 원문 . 실증론자들이 내놓는 지식을 허섭스레기>라고 비판한 아도르노를 참작한 번역이다. 스트로슨의 <개체: 기술적 형이상학 시론>도 한번 살펴보면 좋겠다.

[3] 원문

[4] 원문 . 접두어 는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5] 원문

[6] §30에서 자신을 <보편적인 지>로 알아보지 못하는, <덜 떨어진/unmittelbar> ür-Sich 의식>

[7] 원문

[8]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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