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주체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1/04
    차라리 하지 말자
    PP

차라리 하지 말자

관성화된 집회문화
한국이라는 나라는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 중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 들이 아주 많은 고약한 나라다. 공식적인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시민, 노동, 사회단체 등이 1년에 하는 집회 숫자를 비교해보면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충분히 들 것이다. 왜 그렇게 집회를 많이 하는 걸까? 억울하고, 분해서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권력자들에게 읍소하고, 협박하고, 청원하고, 사정하는 것일 게다. 집회 말고 다른 방법이 없을까?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도 제대로 성숙되지 않은 후진 한국에서는 특별한 방법을 찾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집회공화국이다.
노동단체의 집회는 의례화 되고, 관성화 되어버렸다. 정해진 순서, 의례 하는 행진, 더 이상 긴장감도, 진지함도 없다. 특히 노동절이나 전국노동자대회처럼 대형화 되고 고정된 행사는 더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다. 위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선 많은 숫자를 참가 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하는 주최 측은 대대적인 동원령을 내린다. 지도부가 순회를 하기도 한다. 어떤 산별노조는 동원되는 숫자만큼 일당을 챙겨주기도 한다. 그렇게 모인 조합원들이 행사에 녹아들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해의 주요한 이슈나 쟁취할 목표에는 별로 관심도 없다. 집회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옛날 얘기나 하면서 술 한잔 하는 걸 더 원한다. 집회 규모가 점점 커지고 무대가 높아갈 수록 참가자들의 관심은 더 떨어진다.
주최 측은 모처럼 모은 군중들을 이용해서 최대한의 효과를 내려 한다. 언론을 위해서 억지 그림을 만든다. 단체로 만들어 나누어주는 손 피켓은 관례가 되어버렸다. 재미없는 집회를 보완하기 위해, 더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문화선동도 준비한다. 문화선동대는 이것  저것 새로운 것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별로 효과가 없다. 조합원들의 눈은 높아져 버렸고, 관심도도 떨어져버렸다. 이젠 문화선동대를 꾸리기도 버거워졌다. 대부분의 집회 주최자들이 문화선동을 잠시 쉬어가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문화는 의미와 가치를 생산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영역이지만 집회 주최자들에게는 이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원래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니까.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길 원한다
조합원들은 이젠 예전의 조합원이 아니다. 깃발만 꽂으면 굳은 신념과 의지로 눈을 빛내며 모여들던 예전의 조합원이 아닌 것이다. 세상은 이미 변했고, 신자유주의 정책 속에서 조합원들도 이젠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이제 그들은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길 원한다. 촛불 시위를 봐라. 그들은 스스로 조직하고, 선전하고, 연설하고, 행진 방향도 정한다.
지도부가 주연이 되는 행사는 이젠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재미없고 식상하다. 지도부만 올라가는 무대, 이제는 신물이 난다. 도대체 집회를 왜 하는지, 요구조건을 관철시키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지 곰곰이 따져 봐야한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이제 재미없는 집회는 그만 하자. 화면발을 잘 받는 게 목적이라면 차라리 집회를 하지 말고 그 돈을 가지고 다른 걸 하면 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형 현수막을 만들어 걸든지, 애드벌룬을 띄우든지, 경비행기를 날리든지, 상징물을 만들어 설치하든지...
 

박선봉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