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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2/20
    나는 오늘 행복한가...?(13)
    자일리톨
  2. 2005/02/13
    연휴가 끝났다.(11)
    자일리톨
  3. 2005/02/03
    오늘 든 생각(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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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2/01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박노자(2002.6)(3)
    자일리톨
  5. 2005/01/31
    인사발령이 나다(13)
    자일리톨
  6. 2005/01/31
    말아톤 - 정윤철(2005)(7)
    자일리톨
  7. 2005/01/27
    7인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 홍세화 외 6인(2004.6월)(16)
    자일리톨
  8. 2005/01/27
    하얀가면의 제국 - 박노자(2003)(2)
    자일리톨
  9. 2005/01/26
    퇴근하기전(14)
    자일리톨
  10. 2005/01/26
    [펌]김규항의 예수이야기
    자일리톨

나는 오늘 행복한가...?

추운 날씨에 오늘도 자발적인 추가근무를 했다. 시간내에 보고서가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팀은 "혁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혁신을 강조했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다른 이름인 "혁신"은 관료주의와 형식주의에 의해 한번더 변형되어 내가 있는 공간을 강타하고 있다.

 

그리고 난 오늘도 내 목에 칼을 겨누는 보고서를 자발적인 추가근무시간에 '묵묵히' 작성했다. 이짓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담당부장의 방에 끌려가 일방적인 훈시를 들어야했다. 추가 인력구조조정 방안강구, 인센티브라는 당근이 아닌 과감한 채찍을 휘둘러야, 노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타기관 사례에서 배우자... 등등.

 

저녁에는 모처럼 여자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었다. 여자친구도 지난 금요일 인사발령이 나서 새로운 팀으로 가게 되었다. 자신이 원해서 옮긴 부서이건만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에 적응하는 것은 당분간 긴장되고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지난 주부터 부쩍 여자친구의 문자와 전화가 잦은 것은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여자친구를 만나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고 나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 내 여자친구는 실로 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그러는 나는 오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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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끝났다.

길었던 연휴가 끝났다.

생각해보니 연휴에는 나름대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족과의 만남, 블로거들과의 등산, 여친과의 만남, 팽개쳐놓았던 책들을 읽었던 것 등등.

그런데 이제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야 할꼬...?

 

그간 보았던 책과 영화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한쪽 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데, 도무지 할 엄두가 안 난다. 이러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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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든 생각

 오늘 집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가 하신 전화인데, 정년퇴직 후에도 '촉탁'이라는 이름을 달고 일하고 계셨던 아버지의 계약기간이 더이상 연장되지 않아 일을 그만두실 것 같답니다. 오늘 확정통보를 받으셨다고 하는데 사측에서 3개월전에 알려주긴 했으나, 과히 좋은 소식은 아니네요.

어렸을 땐 아버지가 일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아버지는 늘 집, 회사, 간간이 술집이 전부였거든요. 휴일에도 공장에 들러서 기계를 보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그런다고 월급이 더 나오냐”며 욕도 하고 그랬지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버지가 일하는 걸 좋아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직장에 다니는 저도 매일 느끼는 것이지만 직장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빨리 돈 좀 모아서 여길 뜨고 싶다”는 생각을 하쟎아요. 제 생각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할 줄 아는 건 이것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아버지는 공고를 졸업하고 20살에 공장에 들어갔답니다. 그때 들어간 회사에서 올해까지 약 40년을 보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간 회사에서 돈을 조금 모아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태어나자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돈을 벌었던 거지요. 그게 관성이 되어서 지금까지 달려왔던 거에요.

어머니는 아직 형들이 학생인 것에 부담감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는 듯 해요. ‘니네 아버지가 한 2년정도만 더 일하다 퇴직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요.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40년동안 가족을 위해 일했으면 이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여름이 지나면 형들은 취직을 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알아볼테니 아버지로서 해주실 것은 다 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을 해봐요. 제 마음속에 있는 소박한 꿈처럼, 아버지도 젊은 시절의 꿈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지금도 그 꿈을 기억할까요? 제가 7살정도 되었을 때 아버지가 당시로서는 비쌌던 카세트리코더에 뽕짝을 틀어놓고 누워서 쉬시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시끄러운 뽕짝테이프를 돈주고 사는 것에 대해서 질색을 하셨지만, 아버지가 사왔던 테이프들은 제가 어린이날 받았던 종합선물세트 과자상자를 한가득 채울 정도였지요. 전 아버지가 젊은 시절의 꿈까지는 아니래도 지금‘좋아하는 것’을 잘 알게되기를 바랍니다.

몇일후 설을 쇠기 위해서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실 겁니다. 아버지에게 이제 좀 쉬면서 머리도 식힐 겸 지방에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어머니가 “한평생 살면서 남은 건 키워놓은 아이들밖에 없다”라는 말씀을 하실만큼 모아놓은 돈도 없지만 바로 내일 뭘 먹어야하나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참, 저는 오늘부터 새로운 부서로 옮겨 일하게 되었답니다. 이전에 드렸던 말씀처럼 하는 일, 분위기, 그리고 노동강도까지 상당히 황당한 부서라서, 앞으로는 블로그에 예전만큼 들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틈틈이 들르더라도 블로거 여러분들의 좋은 글들을 많이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설에 복 많이 받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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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박노자(2002.6)

 

"박노자의 북유럽탐험"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노르웨이에 머물고 있는 박노자의 눈을 통해 본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의 모습을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의 초반부에는 사민주의, 복지국가로서의 노르웨이의 모습이 꿈과 같이 그려진다. 부의 재분배를 통해 정치경제적, 성적, 문화적 평등을 실현해가고 있는 노르웨이인들의 모습... 그건 우리로서는 아직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에서 박노자는 노르웨이사회의 암울한 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제3세계에 원조라는 이름으로 코딱지만한 원조를 하며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지만,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구조적인 위계문제에 대해서는 안티를 걸지 않는 노르웨이사회의 모습. 반전과 비폭력을 외치면서도 대테러전이라는 미명하에 아프간전쟁에 군대를 파견하고, 독재국가인 아제르바이잔 유전에 투자하여 초과이윤을 착취하는 모습들...

이러한 이야기를 나열한 후 박노자는 도대체 "좌파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그는 "기존현실과 질서에 대한 부정과 비판, 개선, 개혁, 혁명의지""현실 순응과 안주"라는 일견 모순적인 답을 내놓는다. 즉, 좌파란 존재하는 억압에 맞서 싸우는 이상주의자들을 일컫는 말이지만, 그들은 또한 체제내화라는 끊임없는 유혹을 받을 수 밖에 없고 현실에 순응하고 안주해 버리는 순간 그들은 "좌파"라는 본래의 초발심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며, 역사상 좌파의 그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는 거다.

우리가 보는 북유럽의 모습은 경이로우며, 그들은 우리의 모델일지도 모른다. 또한, 어느 정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우리를 버마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모델로 생각할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의 체제와 관념 때문에 불합리한 억압이 존재하는지의 여부에 항상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을 때만이, 남한사회이든 북유럽사회이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탄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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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발령이 나다

오늘 인사발령이 났다.

나는 그동안 일하던 팀에서 나와 다른 팀으로 배치되었다.

앞으로 할 일은 부르주와를 위한 논리개발...

앞으로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고민이다.

오늘 발령받은 팀으로 가 인사를 드리는데,

하는 일도 그런데다 분위기도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에

자발적인 추가근무를 해야하는 분위기여서 한숨만 나왔다.

호시절은 다 갔나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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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 - 정윤철(2005)

* 이 글은 알엠님의 [말아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여자친구(내 여친은 조승우 광팬-_-;;)한테 끌려가서 봤는데, 우연히 영화 시작하기 전에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나와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팬서비스까지 받았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아한 매력이 더해가는 김미숙씨를 보며 헤벌레해 있던 나는 다른 주연배우들에게 조금 미안한 감정까지 들었는데, 그 이유는 조승우가 등장하니까 상영관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아톤은 매우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단순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동적인 에피소드들을 군데군데 삽입해놓아서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고, 특히 조승우와 김미숙의 뛰어난 연기덕에 많은 관객들이 울고 웃으며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조승우... 데뷔후 놀라울정도로 성장해 버린 것 같다. 오늘 영화를 보며 앞으로 주목해야 할 남자배우 1순위에 올려놓았다. 물론 나의 0순위에는 벌써 이얼, 김강우, 박해일, 김병석라는 4명이 들어차 있지만 말이다. ㅎㅎㅎㅎ

 

오늘 관객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예술의 힘'이랄지 그런 것도 생각해봤다. 글이나 인터넷홍보 등을 통해 "자폐는 병이 아니에요. 장애일 뿐이에요", "장애우를 위한 부담을 그 가족에게 모두 떠넘기는 것은 불합리해요"라고 아무리 외쳐도 들은 척도 안 했던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이 영화 한방이 많이 바꾸어 놓은 것같다. 소설, 연극, 영화 등등의 내러티브 장르는 대중들의 감동체험을 그 목적으로 한다. 감동에서 인식의 전환을, 그리고 행동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작품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의 모든 영화인들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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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 홍세화 외 6인(2004.6월)

 

04년 3월에 있었던 한겨레신문사 주최 강연회 내용을 정리하여 펴낸 책이다. 기획이 괜찮다. 덕담이나 몇마디 내뱉으며 시간을 보내거나, 말도 안되는 토론을 벌이다 시간핑계를 대고 어중간하게 끝내버리는 토론회 내지는 포럼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이런 종류의 대담집, 강연회정리집은 꾸준히 나와야 한다. 퍼슨웹과 같은 인터뷰중심의 글들도 그래서 높이 평가해주고 싶다.

 

04년 3월이면 한창 탄핵정국으로 시끄러웠을 때다. 그래서인지 중간중간에 "이 바쁜 와중에도 나와주신 방청객들께 감사드립니다.."등등의 말이 많이 나온다. 연사로 나온 사람들은 박노자, 한홍구, 홍세화, 하종강, 정문태, 오지혜, 팔레스타인에서 온 다우드 쿠탑이라는 언론인 7인이다. 7명의 연사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하종강, 박노자였다.

 

하종강 선생님은 가끔 한겨레21에서 칼럼만 읽었을 뿐 잘 몰랐던 사람이었는데, 노동문제에 대해서 알기 쉽게 청산유수로 뿜어내던 그의 말을 듣고 놀래버렸다. 사무실에서 신문을 보고 너무 맥이 빠져 있었는데 하종강 선생님의 "고통스러울 때는 우리 역사를 긴 호흡으로 지켜보세요. 그러면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라는 대목을 읽고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 그는 진정 "꾼"인것 같았다. 오~ 하종강아저씨 생긴 것보다 더 멋져요~!

 

참, 사회자 김갑수는 재미있게 강연과 Q&A를 이끌었다는 느낌이 들긴 했으나, 가끔씩 너무 뻘타(?)를 날리는 모습이 퍽 좋지는 않아 보였다. 쇼맨쉽의 과잉인가? 아니면 생각이 조금 짧은건가? 아님 후까시를 너무 잡았나? 암튼 그런 느낌이 복합적으로 들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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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가면의 제국 - 박노자(2003)

 

이 책은 박노자 교수가 "서구중심의 역사를 넘어"라는 주제로 한겨레21에 쓴 글들을 엮은 책이다. 박노자 교수는 이 책에서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서구를 무조건 합리적이고 자유롭고 우월한 체제로 보는 우리의 시각을 뒤집어 버리고, 알게 모르게 스며든 우리의 하얀가면(서구중심적인 시각)을 통렬히 비판한다.

 

사실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과 서양의 문제가 아닌, 근대를 보는 하나의 시각이다. 그리고 이는 근대화라는 자본주의화과정을 먼저 거침으로써 강고한 물질적 힘을 소유한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을 효율적으로 관리,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리고 그 기반을 이루는 것은 인종주의, 우생학, 쇼비니즘과 같은 일견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시각은 반주변부에 속하는 우리에게도 스며들어 있는데, 아류제국주의국가가 제국모국보다 더욱 심한 제국주의적 통치를 자행하는 경향을 놓고 볼 때, 큰 문제라고 할 것이다. 앉은뱅이병에 걸린 태국노동자들, 해일참사뉴스를 보면서 "저 못사는 것들은 뻑하면 몇만명씩 죽어나가지..."라고 웃어넘기던 옆테이블 아저씨들, 이슬람에 대한 터무니없는 편견들...

 

다시 한번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덧)멀치아 엘리아데가 그런 놈인지 몰랐다. 대학때 '聖과 俗' 재미나게 읽었었는데,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이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암에 대해서도 그렇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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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기전

뻐근한 몸을 추스려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조금 일하다 점심먹고

또 조금 일하다 고개를 드니

창문밖에는 어느새 검은 커튼이 내려져 있다

허무하리만치 잘도 흘러가버린 시간들

 

어차피 월급받기 위해

하수도구멍으로 내려가는 물처럼

흘려보내야할 시간이긴 하지만,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찾아서 하며

보람을 얻고싶은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처음 회사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그래 딱 5년만 일하자'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10년'이 되고... 지금은 기억조차 안난다

 

대신에 하나둘씩 늘어가는 것은 책들과 음반

그리고 나의 허위의식이 늘어붙은 청구서들 청구서들...

 

하지만...

퇴근길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너무나도 배부른 욕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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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김규항의 예수이야기

*출처:김규항씨블로그(gyuhang.net)

예수 이야기 1

예수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동시에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잘못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다. 누구나 예수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예수가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건 무엇보다 예수와 (예수를 창시자로 하는 종교인) 기독교의 거리에서 나온다. 사실 예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 한 적은 없다. 그가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하느님의 뜻’을 놓고 사사건건 갈등을 빚고 그 때문에 죽임까지 당했지만, 바로 그 점에서 보듯 그의 활동은 ‘유대교 갱신운동’의 하나였다. 그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 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종교를 허물어 다시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의 뜻이 무엇이었든 그가 죽은 후 그를 창시자로 하는 종교인 기독교가 생겼다. 처음에 기독교는 예수가 그랬듯 하층계급 인민들을 위한 종교였고 그런 계급성에 걸맞게 가혹한 탄압도 받았지만 조금씩 성장해가면서 그 정체성을 잃어갔다. 기독교는 예수를 처형했던 로마의 국교가 되고부터 지배계급의 종교가 되어 세계를 점령해갔다. 점령은 예수가 죽은 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보듯, 인류가 겪는 가장 악랄한 사건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저질러진다.

 

한국에서 사정도 그리 나을 게 없다. 근래 몇몇 대형교회의 불거진 행태가 말썽을 빚고 있지만 그런 경향은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신앙관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한국엔 교회가 많다. 밤이면 온 세상이 붉은 네온 십자가들로 넘쳐 난다. 한국에 이렇게 교회가 많아진 건 박정희 군사 파시즘 이후의 일이다. 물론 그건 시간상의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군사 파시즘의 홍위병이자 가장 충직한 선교사였으며 인민들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공간이었다.

 

“믿으면 받는다” 라는 한국 교회의 신앙관은 “하면 된다” 라는 군사 파시즘의 구호에 봉사했다. 한국 교회의 철저한 빨갱이 콤플렉스는 군사 파시즘의 존립 기반이던 반공주의에 봉사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관제 행사가 아니라면 여럿이 모이는 일조차 불편하던 시절, 인민들(특히 파시즘과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이중적 억압에 시달리던 여성들)이 마음껏 소리치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른바 ‘한국 교회의 놀라운 부흥사’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결국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저급한 신앙관을 자랑하게 되었고 그 저급한 신앙관은 다시 가장 반동적인 사회의식으로 작동한다. 오늘 한국 인민들의 반동적인 사회의식을 생산하는 가장 결정적인 도구는 ‘수구신문’이 아니라 교회다. 오늘 한국에서 교회 문제는 더 이상 ‘종교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진지한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에게 교회문제는 ‘운동과 별개의, 교회에 안 나가는 자식을 염려하는 어머니와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 문제는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단지 ‘교회문제를 비판하는 것’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 비판은 결국 교회 체제의 내부에 기생하게 마련이다. 해결은 “성전을 허물고 다시 짓겠다”던 예수의 선언처럼 좀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그건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 질문만이 오늘 대개의 한국 교회가 교회가 아니라는 것, 교회를 빙자한 상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 있다.

(노동자의 힘 기관지 연재. 이 글은 예수전은 아닙니다.)

 
예수이야기 2

 

당연한 말이지만, “예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선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건 예수를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닌가와 무관하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떠받드는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선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고 나서 그리스도로서 예수가 있는 것이지 어떻게 살았는지 누구인지조차 모르면서 무작정 예수를 ‘내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라 떠받는 건 우스꽝스런 일이다. ‘사람의 아들’ 예수가 없다면 ‘신의 아들’ 예수도 없다.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가장 유력한 자료는 역시 신약성서의 맨 앞에 실린 네 개의 복음서들(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다. 그 가운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 셋을 ‘비슷한 관점’에서 씌어졌다고 해서 ‘공관(共觀)복음’이라 부른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보다 훨씬 더 종교적으로 채색된 것이다. 공관복음 가운데 가장 일찍 씌어진 건 마가복음이다. 마가복음은 70년경에 씌어졌다. 마태와 누가복음은 마가복음보다 늦게, 마가복음을 기본 자료로 씌어진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이 ‘공관’을 갖게 된 것도 마가복음이 먼저 씌어지고 나머지 둘이 그것을 기본 자료로 해서 씌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같은 관점을 가진 복음서가 세 개나 존재하는 걸까? 그것은 복음서가 씌어진 목적 때문이다. 복음서는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려는 것보다는 그것을 쓴 작가가 소속된 교회공동체의 ‘신앙 고백’의 차원에서 씌어졌다. 각각의 교회공동체들은 저마다 조금씩 처지와 사명이 달랐고 그에 걸맞게 신앙관도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같은 관점이지만 조금씩 다른’ 자신들의 복음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복음서의 그런 성격을 둘러싸고 신학자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논쟁이 있어왔다. 아예 복음서를 통해 ‘예수의 생애’를 파악하려는 게 잘못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복음서가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려고 씌어진 게 아니라고 해서 곧 그 내용이 전적으로 역사적 허구라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복음서는 예수에 대한 각 교회공동체의 신앙고백이며 그것은 무엇보다 예수의 생애를 근거로 한다. 복음서는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서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언하는 가장 진솔한 기록인 것이다.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서의 배경이나 맥락을 함께 읽는다면 우리는 2천 년 전 집도 절도 없이 팔레스타인 땅을 유랑하다 초라하게 죽어간 한 사내의 모습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일자무오설’이니 ‘축자영감설’이니 해서 성서에 씌어진 한자 한자 그대로가 하느님의 영감에 의한 것이니 사람이 그것을 분석하려 드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얼핏 경건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그런 주장은 실은 ‘하느님의 영감’을 ‘인간의 영감’으로 재단하려는 태도일 뿐이다.

 

생각해보라. 한낱 사적인 대화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의 말과 그 말이 갖는 배경이나 맥락을 동시에 들으려 노력한다. 그런 노력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의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상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성서처럼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가장 최근에 씌어진 부분이 2천여 년 전에 씌어진 텍스트를 ‘글자 그대로’만 읽는다는 건 그 안에 담긴 뜻을 읽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동자의힘 기관지, 계속)

 

예수이야기 3

 

연대를 표기하는 방법은 한 사회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북한은 김일성이 태어난 해를 기원으로 하며 남한에서도 민족애가 강한 사람들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새운 해를 기원으로 하는 ‘단기’를 쓴다. 올해는 주체 94년이자 단기 4338년이다. 그러나 오늘 일반적으로 쓰는 연대표기 방법은 서력기원, 즉 ‘서기’다. 서기는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원으로 한다. 재미있는 건 예수가 태어난 해는 서기 1년이 아니라 기원전 4년 경이라는 것이다. 525년 교황의 명을 받아 서기를 계산해낸 수도사(디오니시우스엑시구스라는 긴 이름을 가진)의 실수로 그렇게 되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인 성과를 얻기 시작한 건 현대에 들어와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해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별 진척이 없었던 첫번째 이유는 기독교를 국제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울이 역사적 예수보다는 그리스도 예수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죽음을 당할 만큼 험악했던 당시의 사회적 정황에서 정치범으로 죽은 예수를 ‘탈현실화’하는 그의 방식은 이해할 만한 것이지만 그 덕에 기독교(카톨릭이든 개신교든)는 역사적 예수를 소홀히 하는 전통을 갖게 되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로다.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가 신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좋든 싫든 이 글을 읽는 상당수의 동지들이 외울 수 있을 ‘사도신경’의 전문(개신교판)이다. 여기엔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해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야기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정작 예수의 삶에 대해선 아무 언급이 없다. 예수는 시종일관 머리 뒤편에 둥그런 불이 켜진 신인 것이다.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일찍 죽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대식구를 건사해야 했던 평범한 팔레스타인 청년의 30여 년은 흔적조차 없다.

 

만일 바울이 좀 더 역사적 예수에 집중했다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을까? 꼭 그랬을 것 같진 않다. 예수는 2천년 전, 우리로 말하면 바야흐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생겨나던 무렵의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의 말이나 행적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사고방식은 그런 고대사회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것이다. 예수의 사상과 행적엔 사회주의, 페미니즘, 아동인권, 생태주의 같은 인류가 이룬 가장 최근의 정신적 진척들이 이미 가장 조화로운 형태로 들어 있다. 그를 직접 보았다 해도 그런 개념의 씨앗조차 없던 사람들이 그를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예수와 같은 경우는 역사 속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을 통틀어 봐도 찾기 어렵다. 사람이란 자기가 속한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을 근본적으로 거스를 수 없다. 어느 한 부분에 매우 급진적인 사람이라 해도 다른 부분에서는 여전히 지배적인 정신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사상과 행적의 면에서 예수와 비교해서 말할 만한 수운 최제우가 1824년생이라는 걸 생각한다면(수운은 예수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예수는 참 놀라운 사람이다. 이제 하나씩 짚어보기로 하자. (노동자의힘 기관지, 계속)

 

예수이야기 4

 

‘주일성수’(主日聖守)라는 말이 있다. 한번이라도 교회에 나가본 사람들은 들어본 말일 게다.(하긴, 이 극성스런 기독교 국가에 살면서 교회에 한 번도 안 나간 사람이 있을까만.)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일요일에 다른 일 말고 꼭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주일성수는 특히 보수적인 교회에서 매우 강조한다. 그런 교회에선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는가 안 나오는가를 신앙의 척도로 삼는다. 교회에 나오면 구원받은 사람이고 안 나오면 지옥불에 떨어질 죄인인 것이다.

 

주일성수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규범이라 할 십계명 가운데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을 근거로 한다. 십계명은 기독교에서 만든 게 아니라 예수 이전, 즉 구약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탈출한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받는다. 그 후 유대인들은 십계명을 자신들의 사회와 일상생활에 적용해가면서 세세하게 발전시켰다. 예수 당시에 이르러 율법(십계명)은 어떤 법이나 윤리와도 견줄 수 없는 유대 사회의 유일한 생활규범이 되었다.

 

율법을 지키며 사회에 적용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었다. ‘바리새’는 ‘분리하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그들은 율법을 엄격하게 지켜서 자신들을 거룩하게 분리시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을 세분화하여 6백여 개의 세부 조항을 만들었는데 그 조항들은 대부분 ‘금지하는 것’이었다. 안식일에 대한 조항만도 39개나 되었다.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엔 노동을 하거나 농사도 짓는 건 물론 여행을 하거나 짐을 운반할 수도 없었다. 안식일엔 심지어 의료 행위도 할 수 없었다.

 

39개의 조항엔 다시 수백 가지의 ‘사례집’이 달렸다. 이를테면 안식일에 사람이 무너진 담벼락에 깔렸을 경우에 대한 답은 이렇다. “1.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아 볼 만큼만 무너진 담을 헤쳐 본다. 2. 그 사람이 살아있다면 구할 수 있으나 죽었다면 안식일이 지난 다음 시체를 꺼낼 수 있다.” 우리로선 웃음이 나올 만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이런 조항을 목숨처럼 진지하게 지키며 살았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걸핏하면 안식일을 어기곤 했다. 예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면서 예사롭게 밀 이삭을 따먹었다. 그것은 율법적으로 추수, 타작, 키질, 음식 장만의 네 가지 조항을 한꺼번에 어기는 행동이었다. 예수의 제자들이 다 노동하던 청년들인데 고작 밀 이삭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겠는가. 그건 거룩한 사람들을 엿 먹이는 시위였다. 그들의 스승 예수는 한 술 더 떴다. 예수는 안식일에 버젓이 환자를 치료했다. 그 환자들은 당장 목숨이 위급한 환자들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앓아온 만성병환자들이었다.

 

불한당 같은(예수의 별명 가운데 하나는 ‘먹고 마시길 즐겨하는 자’였다.), 그러나 매우 빠른 속도로 인민들의 호감을 얻어가는 예수에게서 뭔가 꼬투리 잡을 기회만을 노리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에게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느냐” 따졌다. 예수는 그들에게 대꾸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기지 않았습니다.”(마가 2:27) 예수는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사회적 스캔들에 대해 설명하거나 타협하기는커녕 ‘할 테면 해봐라’ 식의 태도를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 비판이란 체제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안전한 것이다. 물론 예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동자의힘 기관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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