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26호>선거, 하지만 멈출 수 없는 이집트 혁명

1월 5일 이집트 검찰은 무고한 시민 800명을 살해한 혐의로 무바라크 전 대통령과 그 일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그 즈음 하원 선거 3차 투표 결과, 이슬람주의자가 압승했다. 이 와중 1년 전 민중봉기가 일어난 카이로의 타흐리르광장에서는 임시정부와 환상에 불과한 선거를 규탄하는 청년들이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30년 독재 무바라크 대통령을 몰아낸 후 첫 자유선거를 치루는 이집트의 기나긴 총선 과정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의 복잡한 정치 일정은 아직 한참 남아 있다. 작년 11월 28일에 시작된 하원의원 선거는 세 단계로 나눠진 투표와 1월 10일~11일 결선투표를 거쳐 끝나고, 그 이후 2월 말까지는 상원 선거를 하게 된다. 새로 구성된 의회는 제헌의원 100명을 선출하여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 돌입하고, 6월에는 사상 첫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선거는 이집트에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작년 2월 11일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하면서 ‘혁명’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노동자·민중에 대한 착취와 빈곤, 정치적 무능과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집트의 구체제는 여전히 존속되고 있고, 거의 1년에 걸친 복잡한 선거 과정은 ‘신체제’로의 이행을 전혀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피로 얼룩진 총선
 

이런 사실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이집트 노동자·민중은 예전만큼이나 폭압적인 임시정부(군부최고위원회)와 착취하는 자본가계급에 맞선 투쟁을 지금 이 순간에도 전개하고 있다.
소위 ‘2차’ 민중봉기라 일컬어지는 11월 중순 이후 일련의 시위는 선거가 시작되면서 확산되었으며, 임시정부의 폭력성과 비민주성이 여실히 들어났다. 임시정부는 표현 또는 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을 원천 봉쇄한 상태이며, 지난 10월 콥트기독인 집회에 군이 발포하여 하루에 26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해 이집트인들의 공분을 샀다. 게다가 무바라크 시절 총리를 지낸 엘간주리(el-Ganzouri)가 다시 총리로 임명되자, 시위대는 타흐리르광장과 거리로 쏟아져 나와 다시 한 번 ‘정권퇴진’을 외쳤다.
총선 일주일 전인 11월 18일, 군 발포로 3~4일 사이 38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부상당하는 비극이 벌어졌고, 2차 투표 직후인 12월 16일에도 10여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또한 경찰과 군이 연행된 여성들을 성희롱·성추행하거나 군홧발로 짓밟은 사진이 공개되자 12월 20일에는 1만 명의 여성이 대규모 시위를 개최했다. 12월 29일에는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로 (미국 공화당 혹은 민주당 계열, 또는 프리덤하우스 등) 17개 NGO 사무실을 침탈했다.
11월 중순 이후 지금까지 60명 가까이 추가 살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30년 만에 첫 민주적 선거를 치른다는 이집트의 정세는 사실상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하며, 비민주적이며 반혁명적 세력이 여전히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총선을 통해 급부상하는 이슬람주의
 

하원의원 총 498명과 주지사가 선출되는 이번 하원 선거는 대단히 복잡하다. 약 40개 정당과 정치조직에서 총 6,700명의 후보가 출마하는 등 선거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27개 주를 세 그룹으로 나눠 3개월 간 순차적으로 선거를 진행한다. 첫 번째 그룹은 작년 11월 28일, 두 번째 그룹은 12월 14일, 그리고 세 번째 그룹은 올해 1월 3일에 투표를 했다. 그리고 1월 중순 결선 투표를 거쳐 마무리된다.
아직 최종 결과가 안 나온 상황이지만,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자유정의당(Freedom & Justice Party)이 과반수 이상을 획득할 것으로 예상되며, 극보수 이슬람주의 정당인 알누르(al-Nour)도 20%대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자유이집트당(Free Egyptians Party) 등 기독계열 혹은 자유주의자들은 10%도 얻지 못하는 등, 이슬람주의자들이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즉, 올해 초 처절한 빈곤과 숨 막히는 독재에 항거하면서 민중봉기를 일으켰던 노동자·민중, 청년의 혁명적 열기가 선거를 거치면서 ‘이슬람주의’로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1928년에 설립된 무슬림형제단이 비록 상대적으로 ‘온건한’ 것으로 평가되곤 하나, 이집트 노동자·민중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무바라크 시절, 탄압받는 속에서 빈민지역에서의 무상 교육과 의료 활동을 펼쳐 민심을 얻고 세를 확대하였으며, 反무바라크 시위가 발발하자 이에 적극 가담했다. 그러나 무바라크 퇴진 이후 임시정부와 가깝게 지내면서 최근 시위를 비난하는 등, 기회주의적이며 반동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노동자·민중은 여전히 투쟁 중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민중봉기는 계속되고 있다. 어찌 보면, 민중봉기가 끝난 적이 없으며 1년 째 지속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무바라크 시절 노동착취에 맞서 민주노조 건설 투쟁을 해온 노동자들은 작년 1월과 2월 민중봉기에 적극 참여하면서 총 60차례 크고 작은 파업을 벌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또 6월에는 수에즈운하관리공사 자회사 소속 노동자 18,000명이 5주 동안 파업했고, 8월과 9월에는 공공부문 노동자 10만 명 이상 참가하는 대규모 전국 파업과 시위가 연일 계속 벌어지면서 투쟁이 전국화, 대규모화되었다. 12월에도 카이로, 룩소 등 이집트 주요 도시에서 여러 건의 파업이 벌어졌다. 물론,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는 경제적 파업도 있었으나, 정치적 성격을 띤 파업도 급증하면서 민중봉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사실 민중봉기를 지속시킨 핵심 주역은 청년이다. 급증하는 청년실업으로 ‘신프롤레타리아트’라고 일컬어지는 젊은이들은 특히 2000년대에 들어 反무바라크·민주화 투쟁을 벌여왔다.
특히 2008년 4월 6일 섬유노동자 파업 연대투쟁을 계기로 조직된 ‘4.6 운동’이라는 네트워크는 작년 민중봉기를 일으킨 직접적인 당사자이며, 무바라크 퇴진 이후에도 타흐리르광장과 의회, 정부 건물 앞에서 총알을 맞아가며 농성을 하는 등 민중봉기의 불씨를 살리고 있는 핵심 주체이다.
‘4.6 운동’을 비롯한 청년 조직들은 군부가 집권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선거가 진행될 리 만무하다면서 선거를 연기하고 민간으로 권력을 우선 이양할 것을 요구했다.
엘간주리 총리는 최근 시위대가 “혁명의 청년이 아니”라며 ‘반혁명’ 세력이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혁명’ 세력은 임시정부와 임시정부 편에서 서서 선거를 통해 기득권을 챙기려 하는 이슬람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이며, ‘혁명’ 세력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 요구를 가지고 투쟁하는 청년과 노동자들이다.

 

혁명은 지속된다
 

1년 전 민중봉기를 함께 일으켰던 무슬림형제단이나 자유주의자들은 진정한 변혁을 원하는 청년과 노동자들에 대해 등을 돌리고, ‘민주적 절차’를 운운하고 선거에만 몰두하면서 자신의 본질을 드러냈다. 반면, 청년과 노동자들의 투쟁은 무바라크 정권 퇴진 이후 마치 민주주의가 도래한 양 선전한 임시정부를 비롯한 이슬람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약속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총선이 시작되면서 다시 불이 붙은 이집트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하원·상원·대통령 선거와 제헌 과정이 이집트에 민주주의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을 알리고 있다. 오히려, 대단히 복잡하고 기나긴 선거 과정과 이를 통한 이슬람주의자의 득세, 진정한 변혁을 원하는 노동자·민중과 청년의 끈질긴 투쟁, 살인을 통해서라도 저항을 잠재우려는 임시정부의 탄압 등 - 현재 이집트의 정세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달성할 때까지 갈 길이 매우 멀고, 혁명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소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