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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국가폭력을 얘기하고 싶다
"돌 속에 갇힌 말" 울산상영회 준비돼
87년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사건을 기록하고 그 투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기억을 되새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돌 속에 갇힌 말’ 울산상영회가 준비되고 있다.

▲사진 : 박용수 사진집 [민중의 길] / 출처 : 나루 감독 블로그 http://blog.jinbo.net/hyunhyun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울산상영회에 참석해 관객들과의 대화시간을 함께 했던 나루 감독의 작품인 이 영화는 87년 당시 현장에 있었던 나루 감독의 개인적 기억의 연장 속에서 당시 영상과 관련자들의 인터뷰 등을 중심으로 제작됐다.

99년 기획을 시작해 5년 동안 관련자들을 수소문하고 입을 열기까지 무수한 대화를 나누면서 힘겹게 만들어진 이 영화는 2004년 완성된 이후 40여 차례 크고 작은 영화제 등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나루 감독은 99년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비디오저널리스트과정을 배우며 첫 작품으로 구로구청사건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87년 12월 17일~18일 동안 공정선거감시단의 일원으로 현장에 있었던 것이 주요한 계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워낙 오랜 기간이 지난 사건이어서 당시 농성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99년에 오마이뉴스를 통해 영화제작에 대한 의견이 공식적으로 나가고, 프리첼 커뮤니티를 만들어 제작일지를 공개적으로 작성해나가면서 조금씩 관련된 사람들과 연락이 닿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서 촬영된 비디오를 입수하게 되면서 영화제작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오래된 상처를 끄집어내면서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이 쉽지 나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가서 만나고 설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상처가 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고, 더욱 그 상처를 얘기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남아 있는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당시 기록을 확보하고 얘기들을 나누면서 좀 더 당시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시 화면이 편집과정에서 많이 들어가게 됐어요.”

2004년 10월 한국독립영화협회 다큐멘타리분과에서 주최하는 인티다큐페스티발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후 인권영화제, 인디포럼영화제,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등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그리고 구로를 비롯해 수원, 인천, 대전 등 지역에서도 상영회가 계속 이어졌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고 한다.

“인터뷰에 응했던 분들은 그 사건의 진상을 밝히거나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없는 것에 대해 불편함이 있었어요. 힘든 기억들이었기 때문에 인터뷰에는 응했지만 상영장에 오시는 분들은 많지 않았어요. 반면 집단적 폭력상황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경험했던 관객분들은 공감대를 표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었어요.”

얼마 전에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서 진행된 상영회에서는 극도의 공포상황에서 조직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고 한다.

울산에서의 상영회를 통해 나루 감독은 변하지 않는 국가폭력의 문제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울산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운동이 활발히 진행됐고, 그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이 사건에 대해서도 연관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87년 이후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의 본질은 바뀌지 않은 점에 대해서 같이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이번 ‘돌 속에 갇힌 말’ 울산상영회는 9월 19일(화)에 진행되는데 특별한 단체나 주최모임이 없이 영화를 보고 함께 얘기를 나누고자 하는 이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게 된다.


나루 감독의 글

주춤거리는 객관성, 혹은 경계에 선 다큐멘터리, 돌 속에 갇힌 말
다큐멘터리는 흔히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모호하다.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 강요한 자와 순종한 자, 능동적인 사람들과 수동적인 사람들, 그 사이 어디쯤에 객관성이 존재하는가. 나는, 당신은, 우리는 언제나 그 경계 어디쯤에 서성대거나 양쪽을 모두 밟고 선 채 당황하는 존재는 아닌가. 이 작품은 개인적인 감상과 기억을 ‘활자’로 중얼거리는 화자, 즉 목소리를 감춘 감독의 나레이션과 1987년 12월 16일에서 18일까지 농성에 참여했던 여러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인터뷰, 그리고 감독의 인터뷰가 서로 조금씩 엇갈린 채로 조립된 기록이며 모호한 것에 대해 모호하게 말하는, ‘객관성’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다.

1987년 12월 16일, 우리는 괴물과 동거하기 시작했다
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얻어낸 대통령 직선제, 그리고 우리 손으로 선출한 위대한 보통사람 노태우, 그러나 그 과정이 민주적이었는가에 대해 나는 회의한다. 87년 당시 국민운동본부 산하 공정선거감시단의 활동으로 전국적인 불법적인 선거운동 사례가 집계되었고 투.개표 과정의 부정 비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어이없는 상황의 단면이 서울 구로구에서 ‘부정투표함 누출사건’으로 표출되었으며 꾹꾹 눌러참아왔던 국민들의 분노가 ‘구로구청 점거’를 통한 항의농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농성 과정에서 당시 재야 운동권 세력의 내부 갈등이 심화되었고, 입장의 차이는 진압에 대한 대안없는 철수로 이어진다. 부정의 현장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은 힘없는 민중이었고 증거물은 사라졌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정권을 장악한 세력도, 비극적인 현장에서 급히 등을 돌려버린 재야도 나에겐 괴물로 다가온다. 17년동안 농성참가자들의 꿈자리까지 지배해온 괴물과의 동거, 우리는 지금 누구를 어떻게 지지하거나 비판해야하는가. 해소할 수 없었던 분노와 좌절이 가위눌린 신음으로 남은 그 해 겨울...







사진 : 박용수 사진집 [민중의 길] (1988/분도출판사)
(출처 : 나루 감독 블로그 http://blog.jinbo.net/hyunhyun)

김성민 기자 / 2006-09-05 오후 9:13:57
 

2006/09/06 16:39 2006/09/06 1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