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면담했어요

from 돌속에갇힌말 2006/07/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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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독립영화관, '돌속에갇힌말'  방영취소 1주년(1)]

[방영취소 1주년(2) 이제 어떻게 할까요?]

[방영취소 1주년(3) 전화가 중요하구나] 

[방영취소 1주년(4) 공식적인 사과를 원한다]

[방영취소 1주년(5) 관련일지와 성명서]

[방영취소 1주년(6) 사과촉구 성명에 동참하신 분들]

[방영취소 1주년(7) KBS 현 제작진의 입장]

[방영취소 1주년(8) 담당PD와 통화했습니다]

[방영취소 1주년(9) 면담을 위한 사전점검]

[방영취소 1주년(10) 오늘 면담합니다] 에 관련된 글

 

 

2006년 7월 20일(목) 오후 3시

참석자 : KBS 측 서병철 PD, 송현주 PD, 나중에 오신 한 분(성함을 몰라요)

           나루, 이마리오 감독(한독협 배급위원장)

 

출발하기 전에 카메라를 가져갈까 말까, 촬영할 친구를 부를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작년에 이관형 PD의 황당한 발언을 녹음하지 못했던 게 두고 두고 후회가 되어서

이번에는 면담 자리를 촬영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그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약해졌다

 

한번만 더 믿어보자, 고 생각하고 그냥 나갔다

녹음된 말소리나 화면에 담긴 얼굴보다는 내 느낌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상대방이 보여주는 표정이나 눈빛이나 움직임, 태도의 문제는

그 어떤 기계적 장치들 보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당사자의 오감을 통해

가장 확실하게 전해진다, 고 믿기로 했다

하루 지난 지금, 잘했다고 생각한다



KBS 독립영화관이라는 정규프로그램에서 <돌 속에 갇힌 말>을 방영취소하게 되기까지

그 과정에서 발생했던 여러 가지 문제를 다시 한번 짚어볼 수 있었다

 

첫번째 문제는, 김 모 PD의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

 

당시 '독립영화관'에서 다큐멘터리 특집을 기획했고

서병철 PD에게 '<돌 속에 갇힌 말>을 틀자고 제안했던 김 모 PD는

2005년 5월말에서 6월초에 이르는 기간동안, 그러니까 방영준비가 진행되던 그 시기에

KBS 노조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자신의 업무를 정리하게 된다

자리를 떠나기 전에 방영이 결정된 작품의 연출자(나루)에게 계약서를 발송하고

확인, 작성하는 일까지 했더라면 좋았을텐데(아니, 해야하는 게 맞는데)

무슨 일이 얼마나 급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미루다가 그냥 떠났다

 

두번째 문제는, 임시 책임자의 빈약한 책임감

 

그리하여 후배를 대신해서 며칠 후배의 일을 처리하게 된 이관형 PD,

'독립영화관' 초창기 3년동안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관련업무를 처리한 탓에

다른 부서에서 다른 업무로 한창 바쁜데도 불구하고 하는 수 없이 파견되긴 했으나

와보니 후배는 계약서 발송도 안하고 사라진 상태라 자신이 발송을 해야했고

감독(나루)은 방송 전날 계약서를 받아서 그제서야 VOD 서비스를 문제삼는다

주변 동료들은 그 영화에 여당 국회의원도 나오고 제목 자체가 좀 거시기한데

꼭 틀어야하냐는 부정적인 말을 흘린다

게다가 이 분, 예전에 '독립영화관' 업무를 진행하던 때에 이미

다른 독립영화 감독과 계약문제로 갈등을 빚어서 무지하게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니 이 감독도 혹시 예전에 그 감독한테 무슨 언질을 받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중에 다른 분을 통해서 이관형 PD가 그렇게 오해했다는 말을 들었다

 다시 한번 명확하게 밝히지만, 나는 누가 은밀히 언질을 준다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잖아도 불편하고 난감한 상황에서 편성부에서는 축구중계가 급하다고 하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89년에 이미 대법원 판례를 통해 부정선거의 증거가 없다고 결론났으니

그 영화를 방영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내온다

골치아팠겠지, 빨리 정리하고 싶었겠지, 그런 심정으로 일을 진행하면 이렇게 된다.

 

세번째 문제는, 담당PD들의 독립영화 일반 및 <돌 속에 갇힌 말>에 대한 이해부족

 

면담자리에서 서병철 PD의 이야기를 30분 이상 경청하다가 결론이 났는데

아무도 <돌 속에 갇힌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사람이 없다

김 모 PD도, 계약직이긴 해도 실무를 거의 전담했던 서병철 PD도, 나중에 온 이관형 PD도

모두 꼼꼼하게 70분동안 앉아서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중에 한분은 빠르게 돌리기로 대충 장면들만 확인했고,

한 분은 3004년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홍보용으로 제작한 예고편 CD만 봤고

한 분은 테잎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안봤다

결국 이 영화를 꼼꼼하게 본 사람은 KBS 심의실에서 일하는 분들 뿐이다

그러니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공문이 왔을 때 신속하게 '취소'를 결정할 수 있었다고 본다

 

더 안타까운 것은 <돌 속에 갇힌 말> 이전에 계약서 문제로 다른 갈등이 생겼을 때

그 감독이 왜 그렇게나 계약서의 조항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문제제기를 했는지

그 이유를 담당 PD들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기 전에 먼저 감독들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받는다

해결하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자기들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좌절부터 한다

그건 곤란하다

 

방송을 통해 독립영화를 소개하게 될 때 감독들이 깐깐해지고 긴장하는 이유를

힘들게 만든 작품에 대한 애정/독점욕, 방송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

혹은 감독의 권한을 보장받기 위한 고집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그런 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으나

방송 PD들이 독립영화감독, 혹은 독립영화 일반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독립영화를 시청자에게 소개하는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상상력과 고민의 폭을 넓혀야 한다

 

모든 독립영화 작품이 방송가능하지도 않고

모든 독립영화 감독들이 방영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기획할 때부터 '열린 채널'이나 '독립영화관'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는 작품도 있지만

애초에 방송이나 인터넷은 배급방식에서 배제하고 제작하는 작품도 있다

특히 <돌 속에 갇힌 말>은 출연한 분들과 긴밀한 유대관계 속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고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얼굴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 사전승인을 받지 못했기에

방송을 하게 될 경우, 음성을 변조하거나 얼굴을 가려야하는 장면도 있다 

또한 <돌 속에 갇힌 말>은 '반드시 관객과의 대화를 한다'는 게 배급원칙이다

영화속에는 87년 상황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고, 당시 농성 현장에 있었던 분들이라고 해도

이 영화에서 주장하는 감독의 의견에 공감할 수 없거나 다양한 반론이 가능하기 때문에

독립영화에 관심있는 관객들, 80년대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사람들에게 소개하더라도

여러 가지 오해와 갈등이 생길 수 있어서 상영할 때 마다 부담이 되는 작품이다

 

그런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텔레비젼을 통해서 소개할 경우

게다가 인터넷으로 동영상 다시 보기를 일주일이나 진행할 경우

만일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감독에게 있다

때문에 비록 '계약서'라는 문서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미처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에

감독들은 그 문장 하나 하나에 예민할 수 밖에 없다,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그런 부담은 방송사에서 나름대로 고심해서 배려했다고 하는 상영료만으로

상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번째 문제는, 방송만 막으면 된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태도다

 

방영취소 이후 '구로타임즈'라는 지역언론과 '인권운동사랑방'의 인권하루소식을 통해

기사회되면서 밝혀진 사실인데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방영이 예고되기 이전에 이미 <돌 속에 갇힌 말>이라는 영화가

87년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004년 10월 이후 몇 달 동안 각종 영화제와 지역 상영회를 통해 관객에게 소개되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전혀 문제삼지 않다가 KBS를 통해 방영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시청자들에게 사실을 오인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공정한 선거관리를 생명으로 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킬 수 있음'을 알린다며 신속하게 공문을 보낸다

 

그들이 사실을 전달해야할 책임을 가진 대상은,

자신이 속한 기관의 명예를 지키고

자신들의 활동을 공정한 것으로 보장받고 싶은 대상은 '시청자'다

그 영화를 만들고 그 영화에 출연하고 그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은

모두 '사실을 오인하거나 선관위 명예를 실추해도'상관없는 사람들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사고하는 방식은

이렇게 편협되어 있다

 

그들이 누구를 국민으로 사고하는가, 도 문제거니와

그들이 어떤 매체에 가장 예민한가, 라는 것도 문제다

방송은 국민에게 영향력이 있는 매체이지만

독립영화는 (아무리 해마다  전국 도처에서 다양한 영화제가 열려도)고려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런 태도로 일을 하니까 17년 전에 그런 엄청난 일이 생긴 것이다

어제 나는 제작진과의 면담을 통해

선거관리위원회의 공문내용과 공문을 보낸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중간결론: 사과문 발표와 방영계획에 관해

 

면담 과정에서 서병철, 송현주 두 담당PD는

내가 전달한 문서내용에 대해 대체로 공감했고

다음주 중으로 제작진 내부의 논의를 거쳐 사과문을 작성하기로 했다

과거에 공지했다가 현재 삭제된 글의 경우. 원문이 저장되어 있지 않아 복구는 어려우며

어차피 사과문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공지를 하게 되었으므로

과거 공지게시판에 올렸던 글에 대한 복구 자체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제작진이 사과문을 발표하기 전에 그 내용을 내가 미리 보고 사전논의를 할 예정이므로

이제 그 결과만 기다리면 될 듯 하다

 

앞으로 <돌 속에 갇힌 말>을 방영할 수 있는지 그 계획은 여전히 불투명하며

선거관리위원회의 예민한 반응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아야

구체적인 계획을 잡을 수 있다는 PD들의 입장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한다

2005년 6월 당시,

'독립영화관' 제작진 내부에서는 '선관위에 대해 같이 항의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왔고

한독협 원승환 사무국장을 통해 빨리 대응방법을 정하자는 이야기도 전했으나

당시 면담주선자이자 대책회의의 대표역할을 맡았던 사무국장의 입장에서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무척 아쉬운 대목이지만 중간자 역할의 특성상

양쪽의 입장을 들어가며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보면

이쪽 저쪽의 입장을 각각에게 정확하게 전달, 정리하기보다는

양쪽에 대한 자신의 직관이나 판단이 개입되었을 수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무국장을 따로 만나서 좀 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고

서병철 PD나 내가 사무국장에 대해 오해한 것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푸는 것이 좋겠다

그 분도 나름대로 돕겠다고 나섰다가 억울하게 상처받은 점이 있다고 판단되는데

감정적인 문제는 하루빨리 해소하고 같이 해결책을 찾는 일에 동참하는 게 맞다고 본다

다음주에 한번 만나자고 연락을 취했으니 원 국장은 어서 날을 잡으시길

 

그리고 개인적인 단상과 감사의 인사를

 

면담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안타깝고 아프고 씁쓸한 이야기가 솔직하게 많이 쏟아져 나왔다

양쪽 모두 진작에 만났어야 한다, 왜 서로 직접 연락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었다

 

오늘은 음악이나 실컷 들으면서 쉬고 싶은데

강좌도 들어야 하고 밀린 편집도 해야하고 재원이도 만나야하고

서명에 동참하신 분들께 중간보고도 해야해서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

며칠동안 같이 고민하고 문서내용을 미리 검토하고 면담에 참석해서 적절한 의견을 제시해준

이마리오 감독에게 깊이 감사한다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큰 어려움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즉각 항의서명에 동참하고 메일로 지지글을 보내주고 블로그에 찾아와 덧글을 남겨준

167명의 지지자들과 (...라고 적고나서 메일과 방명록을 확인하니 170명으로 늘어남)

다산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씨네 오딧세이, 충북민예총 영화위원회라는 단체 덕분이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으므로 앞으로도 계속 조언과 관심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

항의서명은 계속 받고 있으니 더 널리 알려주시고 계속 동참해주실 것도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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